한겨레21 영화

페이스 오프

영웅은 결코 죽지 않는다! 더이상 주윤발만을 위한 말이 아니다. 5년 전 미국으로 건너가 잠시 주춤거렸지만, 결국 <페이스 오프>를 들고 멋지게 할리우드를 정복한 오우삼 감독(미국명 존 우)을 위한 말이다. 오우삼 감 독은 장철, 타란티노를 연상시키는 핏빛 격전 속에서도 인간적인 감수성 과 낭만성을 잃지 않는 자신의 스타일을 살려냈다.

그리고 할리우드 편입 을 우려하던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고, 홍콩 감수성을 미국에 이식시키며 명실공히 영웅감독이 됐다. 따라서 홍콩누아르의 부활을 기도했던 컬트팬 들은, 이제 할리우드를 새로운 성지로 받들어야 할 것 같다. 8천만달러라 는 거대 자본과 할리우드 스타들 속에서도, <페이스 오프>는 확실히 홍콩 누아르의 옛 전성기를 떠올리게 한다. 고요한 성모상, 비둘기, 촛불의 이 미지 속에서 펼쳐지는 총격장면의 미장센은 홍콩누아르의 정점에 있었던 <첩혈쌍웅> 그대로이다.

또 발레를 연상시키는 동작과 슬로 모션 그리고 형사와 킬러라는 주인공의 설정도 여전하다. 그러나 <페이스 오프>는 자 가표절을 넘어선다. 일단 비밀임무상 형사 숀(존 트라볼타)과 악당 캐스 터(니콜라스 케이지)의 얼굴이 바뀌는 시나리오가 독특하다. 특히 거울을 볼 때마다 적의 얼굴이 보이는 극적인 상황은 오우삼의 감각이 진일보했 음을 알려준다. 또 감미로운 노래 <오버 더 레인보>가 흐르는 동안 펼쳐 지는 총격장면은 평화와 전쟁의 간극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결국 폭 력과 아름다움을 어색하지 않게 버무리면서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해준다. 이러한 감독의 재능은 다소 현실감이 떨어지는 시나리오에 인간적인 얼굴 을 입혀 더욱 빛을 발한다. 따라서 <다이하드3>처럼 숨겨진 폭발물 찾기 라는 할리우드의 고전적 스토리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둔갑한다. 선인과 악인을 동시에 소화해낼 수 있는 두 배우는 감독과 어우려저 느낌있는 삼 중주를 절묘하게 연주해 낸다.

홍콩반환 이후 보금자리를 마련해준 미국 에 대한 보은(報恩)인가? 선악의 경계를 허물고 우정을 주제로 삼았던 홍 콩시절과는 달리, <페이스 오프>는 선악의 구분이 명확하고 가족의 복원 이라는 미국의 가치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오우삼 감독은 교묘하게 할 리우드의 단물을 빨아먹는다. 할리우드만이 가능한 폭발적인 비행기 전투 장면, 스펙터클한 보트 추격장면 등 이용해 먹을 것은 모두 이용하면서도 홍콩영화의 감수성을 잃지 않는 주도면밀한 작전을 펼친다. 따라서 액션 영화로는 보기 드물게 전세계의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필요충분 조건으로 꽉 차있다. 이 점이 오우삼 감독의 할리우드에서 살아남는 방식 이고, 결과적으로 이 전략은 딱 맞아 떨어지고 있다. 이젠 주윤발과 힘을 합쳐, 할리우드를 무정부 상태가 된 홍콩영화의 신(新)식민지로 건설하는 일만 남은 듯 보인다.

김의수/ 영화평론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28일 제 1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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