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대중음악

동포애 전하는 `북녘연가'

(사진/안치환씨는 이번 공연의 수익금을 굶주림에
죽어가는 북녘 어린이들에게 전할 예정이다.)

자유로를 타고 임진각쪽으로 달리다보면 어느 순간 ‘개성 00㎞’라는 도 로표지판을 만나게 된다. 잠시 가슴이 뻐근해지면서 차의 속도가 더 빨라 진다. 시원하게 훤히 뚫린 길은 그대로 끝없이 내지를 것 같다. 그러나 그게 끝이다. 임진각이 불쑥 솟으며 도로는 갑자기 우뚝 멎는다. 브레이 크를 지그시 밟는 순간쯤이면 ‘통일’을 별로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이 라도 가슴 한 구석에 매단 납덩이 하나가 묵직해짐을 느낀다. 전망대에 올라가 언덕 너머로 숨은 북녘 땅 대신 북녘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옥수수죽 곡기(穀氣)가 겨우 남은 빈 숟가락을 쭉쭉 빠는 아이들의 앙상 한 팔다리와 퀭한 눈이 금세 떠올려진다. 가슴의 납덩이는 숫제 숯으로 변한다. 가수 안치환씨의 가슴도 그러했나보다.


통일노래 신곡 불러…11월까지 전국 공연

“늘 외로웠다고 늘 생각했다고 솔직히 왜 말을 못하는 거니?/ 거절당할 까봐 상처입을까봐 함부로 손 내밀지 못하는 거니?/ 걱정은 하지마, 모두 가 원하는 걸/ 하지만 누구도 우릴 대신할 순 없어./ 마음을 열어줘 한 걸음 다가와 봐/ 조금씩 조금씩 만들어 가는거야./ 달려가 너를 꼭 안고 싶어./ 뜨거운 입맞춤, 그 짜릿함까지 느끼고 싶어./ 이젠 하나로 느끼고 싶어.”(안치환의 <하나를 위한 연가> 중)

통일을 남녀의 사랑에 빚대 노래한 안치환의 새 노래다. 그는 8월20일부 터 31일까지 서울 정동문화예술회관에서 ‘만하(晩夏) 콘서트’(남북어린 이 어깨동무 주최)를 갖는다. ‘북녘 어린이에게 생명을’이라는 부제를 단 이번 콘서트는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콘서트장 입구에 모금함을 설치하고, 본인도 수익금 중 일부를 ‘남북어린이 어깨 동무’ 사무국에 기탁할 예정이다. 서울 공연 이후에는 오는 11월 말까지 대구, 제주, 수원, 인천, 창원, 울산, 부산, 대전, 충주, 광주, 전주 등 전국 투어가 계속된다.(공연문의:02-335-7513)

안치환씨는 지난 6월 ‘노스탤지어’ 공연 때도 이번처럼 모금함을 설치 하고 수익금 일부를 내놓은 적이 있지만 이번 콘서트에선 공연의 성격을 분명히 했다. 음악외적인 행사뿐 아니라 <38선은 38선에만 있는 것은 아 니다>(김남주 시), <하나를 위한 연가>, <바람>, <바램> 등 한창 작업중 인, 통일을 주제로 한 5집 음반 수록곡들을 미리 들려주는 등 관객들과 통일을 함께 이야기해보자는 것이다. 그는 지난 7월 용산 가족공원에서 열린 남북어린이 어깨동무 행사에서도 윤석중 시인의 시에 곡을 붙여 <되 었다, 통일>이란 노래를 지어 어린이들과 함께 부르기도 했다.

“3년 전 어느 집회장에서 공연을 마치고 내려오는데 재야 운동권의 한 어른이 제 손을 꼭잡고 ‘앞으로는 통일을 대비한 노래를 해야한다’는 당부를 하셨습니다. 그간 통일노래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식의 당위적 이거나 몽상류의 가사들이 많았습니다. 나쁘게 얘기하자면 역설적으로 그 런 노래들은 통일이란 ‘가당치 않은 것’이라는 느낌을 주었다고도 보여 집니다. 그래서 ‘통일’, ‘통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보단 분단상황 을 인식하고 북녘의 고통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런 마음들이 중요하 다고 생각해 이번 공연을 계획했던 겁니다.” 이번 공연에 대한 그의 설 명이다.


동포의 고통 가슴으로 느끼는 자리

북녘 아이들에 대한 관심에 대해 뭔가 멋진 말을 해줄 것을 기대했으나, 그는 겸연쩍게 웃으며 “이유는 없죠. 이 땅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으로 북녘을, 특히 북녘 아이들에게 더운 밥 한그릇 먹이자는 데 ‘이의 있습 니다’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저는 거대한 북녘돕기의 물길 가운데 그저 발 담근 정도일 뿐이죠”라고만 말했다. 그러나 그는 ‘통일 98’ 등 국내와 해외동포 뮤지션들이 함께 무대에 서서 통일을 이야기하 는 그런 공연이 하루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도 비쳤다.

안치환의 노래에는 무언가 곧고 바른 ‘의’(義)가 느껴진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마른 잎 다시 살아나> <당당하게> 등 그의 노래는 우리 가 슴 깊숙한 곳에 두레박 하나를 드리워 잊고 있었던, 또는 애써 외면했던 무언가를 끄집어 내보이는 기술이 있다. 그의 콘서트장은 열어젖힌 우리 가슴을 확인해보는 장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또 그 가슴 속에는 작은 ‘ 사랑’이 들어있을지도.

“노는 아이 그 맑은 눈빛으로/ 우는 아이 그 마음으로/ 달려가세 이 더 운 가슴 열어/ 뛰어가세, 맘껏 안아보세”(5집 <바람> 중)

권태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28일 제 1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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