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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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감시의 눈길을 피해 산속에 은신해 있는 탈북자.
비닐한장에 의지해 추위와 허기를 이겨내야 한다.)
박성식씨 부부에겐 정말 남한행밖에 달리 탈출로가 없는 것일까? 아니 남 한행 결심은 최선의 선택일까?
현재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자들에 대한 각종 조사를 살펴보면 당연히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특히 지난 5월12일 연세대 통일문제연구소에서 열린 ‘통일 한국에서 예상되는 사회갈등과 그 대책’이란 제목의 세미나 에서는 “탈북자들의 취업률이 62% 정도에 그치고, 주택보급률도 전체 국 민 평균치의 절반 수준인 26.7%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됐다. 남한에 정 착한 탈북자들의 상황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라는 것이다.
안전만 보장된다면 인도라도 좋다
이에 따라 지난 7월 중순 내몽고를 탈출한 박씨 부부와 연변의 쉰들러들 도 박씨 부부의 피난처 문제로 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이들이 내린 결론 은 선양의 조선족 김영수씨 집이었다. 이 결정도 박씨 부부와 쉰들러들이 다양한 탈출로를 모두 모색한 뒤 나온 것이었다. 이들은 피난처 후보지로 내몽고와 가까운 몽골을 떠올려봤고, 러시아를 생각하기도 했다. 아니 저 멀리 인도까지도 탈출 대상지로 꼽아볼 정도였다. 그러나 여러 정보들을 모아본 결과, 결론은 어느 곳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중 몽골은 내몽고와 바로 이어져 있다는 점에서 후보지로 꼽혔다. 그러 나 몽골은 중국보다 더 통제가 심하다는 말에 포기해야 했다. 몽골에선 외국인이 농촌에서 살 수 없을 뿐더러 도시에서도 ‘이틀이면 잡힌다’는 게 몽골 소식에 밝은 이들의 말이었다. 러시아로의 이동도 깊이 고려해봤 다. 그러나 러시아에는 북한 특무들이 중국보다 더 많다는 정보에 이곳도 탈출지 목록에서 제외했다. 그래서 떠올린 곳이 인도였다. 하지만 인도로 가기 위해서는 히말라야산맥을 넘어야 한다. 계속되는 탈출로 약해질 대 로 약해진 박씨 부부의 체력으로 산맥을 넘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 다.
그래서 결정한 곳이 선양이었다. 하지만 이곳에도 오래 있을 수는 없다. 최근 들어 탈북자들을 대하는 조선족들의 태도가 상당히 경색돼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연변 등지에서는 조선족들이 탈북자를 숨겨주기를 꺼린다. 오히려 신고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현상들은 조선족들이 올해 초 강을 건너는 북한 주민들에게 먹을 것과 옷가지 등을 아낌없이 주던 때와 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얼마 전 연변의 한 마을에서는 북한 여성 3명이 조교들에 의해 수갑이 채 워진 채 끌려가는 것이 발견됐다고 한다. 또 중국 정부가 두만강을 넘다 익사한 북한 주민들의 주검을 한구당 몇백원씩 주는 정책에 따라 일부 조 선족들이 주검들을 적극 수거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박성식씨 부부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박씨 부부가 지난 4월 말부터 약 3개월간 노예같은 생활을 하고 살인 위협을 받았던 곳이 바로 내몽고의 ‘조선족’ 마을이 었다.
탈북 난민을 대하는 조선족 태도 변화의 가장 큰 요인은 중국 당국의 엄 격한 단속 의지다. 최근 중국 정부는 탈북자들을 보호하는 것이 발각되는 조선족에게 2천~5천위안의 높은 벌금을 물리고 있다. 연변지역의 평균임 금이 5백위안 정도임을 감안할 때, 벌금액은 많게는 1년치 임금에 해당되 는 큰 돈이다.
북 사회안전부와 공조로 쉰들러 색출
실제로 지난 연변지역 한 마을에 사는 최용성(42)씨는 최근 중국 공안으 로부터 5천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최씨는 얼마전 열살 남짓한 어린이와 함께 두만강을 건넌 북한 여인을 자기 집에서 쉬게 한 적이 있다. 이때 남한 민간단체의 한 관계자가 어린이에게 얼마간의 돈을 건네주면서 “이 돈은 남한 어린이들이 너희들을 위해 한푼두푼 모은 거야”라는 말을 들 려줬다. 이 소년은 북한에 돌아가 자기 친구들에게 남한 민간단체 관계자 가 전해준 말을 들려주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그 말이 그만 북한 사회 안전부 요원의 귀에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사회안전부 요원은 그 어린이 에게 최씨의 집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 뒤 사회안전부는 중국 공안에 연락했고, 중국 공안은 최씨를 찾아내 ‘국경관리법’에 따라 벌금을 물 린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탈북자를 우호적으로 대하는 조선족은 갈수 록 드물어지고 있다. 결국 중국 땅도 이들에게 ‘빨리 떠나야 할 곳’이 돼가고 있는 셈이다.
박씨 부부는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봐도 갈 곳은 남한밖에 없다 ”고 결론을 내렸다. 최선의 선택인지는 모르되 모든 탈출구가 막힌 상태 에서 피할 수 없는 선택인 것만은 분명하다.
연변 선양=이상민/북한문제 전문 자유기고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28일 제 17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