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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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식씨의 부인 조순분(24)씨는 탈북 뒤 생활이 어떠했는가를 묻는 말에 자신의 쌍꺼풀을 가리켰다. “오죽하면 얼굴마저 바꿔 인신매매범이나 북 한 특무의 추적의 손길을 따돌리려 했겠느냐”는 것이다. 조씨는 또 “여 러차례 팔려 다니는 과정에서 죽고싶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고 말했다 . 그는 “지난 7개월간 중국에서는 어떤 곳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 았다”며 한국행을 강하게 희망했다.
-왜 쌍꺼풀 수술을 했나.
=이건 내가 하고 싶어 한 것도 아니고, 곱게 보이고 싶어서 한 것도 아니 다. 여기저기서 잡자고 사진 내걸고 돌아다녀서 얼굴수술하면 몰라보겠거 니 하는 생각에 얼굴을 고친 것이다.
-남편보다 2달 정도 먼저 두만강을 건넜는데.
=여자가 강을 건너온다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냥 앉 아죽을 수는 없었다. 현재 북조선 사람들이 다 그렇듯 당시 우리들은 매 우 바빴다(어려웠다). 영양상태가 나빠 아이도 잃었고, 또 남편은 파라티 프스라는 열병에까지 걸렸다. 정말 뼈에다 가죽만 씌워 놓은 꼴이었다. 그래서 남편을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중국행을 결심했다. 그러나 중국에 와서 이리저리 팔려다니면서 정말 죽고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팔려간 마을로 남편이 나를 찾아왔다.
-내몽고에서의 도피생활은 어떠했나.
=우리는 내몽고로 들어갈 때 같은 조선민족이 사는 마을이라 한가닥 희망 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3개월 가량의 생활은 우리에게 더이 상 중국에 숨을 곳이 없다는 것만을 깨닫게 했다. 같은 민족이지만 중국 의 조선족은 우선 중국 인민이었고, 중국법이 그들을 철통같이 옭아매고 있었다. 중국에서 우리는 어디를 가나 ‘불법’ 딱지를 달고 살아야 한다 .
-남한은 안전하다고 생각하나.
=지난 7개월의 경험에 비춰 우리를 받아줄 데는 남한밖에 없다고 결론내 렸다. 남쪽의 시아버님 친지들도 뵙고 싶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28일 제 17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