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인터뷰

탈북자 박성식씨

박성식(30)씨는 지난 몇 개월의 탈북생활을 통해 “중국에서는 어디에도 갈 곳이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또하나의 조국인 한국에 가는 것만 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아버지가 한국전쟁 당시 국군포 로였다며 “아버지의 고향 충청도로 가 할아버지와 큰아버지를 뵙고 쉽다 ”는 소망을 전했다.

-북한을 탈출한 뒤 어떠했나.

=우리 부부는 지난 몇달간 너무도 많은 일을 겪었다. 그러나 결국 얻은 결론은 중국에서는 아무 데서도 살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갈라져 살지만 하나의 조국인 한국에 가는 길이 유일한 탈출구라는 결론 을 얻었다. 우리 부부는 앞길이 장천이다. 앞으로 두번째 조국에 가서 살 았으면 좋겠다. 또 우리는 그나마 좋은 분들의 도움으로 많은 위기를 피 했지만, 하루에 수백명씩 굶어죽는 북조선을 생각하면 밥술이 입에 안 넘 어간다.

-아이는 어떻게 됐는지.

=둘을 나았다. 그러나 둘다 1년을 채 못넘기고 숨졌다. 둘다 약하게 태어 났다. 집사람이 못먹어서 그런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낳은 뒤 에도 잘 먹이지 못했다. 둘째아이가 숨진 것은 지난 96년 11월, 내가 파 라티푸스 열병을 앓기 바로 전이다. 아이들 얘기를 하면 가슴이 아프다. -북조선에서 직업은.

=함경북도 회령시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세천고등중학교를 나와 청진시의 한 군관학교 노동자로 있었다. 고등중학교를 나온 뒤 군대에 들어가려 했 으나 아버지 때문에 거절됐다. 또 이후 노동당 입당도 아버지 탓에 거부 됐다.

-아버지의 무엇이 문제였는지.

=아버지는 6·25 때 인민군에 잡힌 국군포로 출신이다. 충청북도가 고향 이셨다. 아버지의 북조선 생활은 참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우리 자식들에게 너무 많은 족쇄를 가져왔다. 우선 자식들이 군대를 가거 나 간부 등용문인 당에 입당하는 것이 아버지의 출신 때문에 안 됐다. 성 분이 나쁘다는 것이다. 외삼촌 등 외가쪽 친척도 출세길이 막히는 등 아 버지 탓에 고생을 많이 하셨다.

-아버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외로운 분이셨다. 전쟁포로로 고향 친지들과 만나시지도 못했고, 또 아 버지 때문에 불이익을 많이 당한 외가쪽 친척들도 알게 모르게 아버지를 따돌렸다. 나는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들려주시는 고향이야기와 충청도에 계시는 할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아버지께선 꼭 한번은 할아버지 를 봬야 하는데 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다.

-충청북도에 남아 있다는 친척은 누구인지.

=한국으로 간다면 친척들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하 도 많이 말씀하셔서 할아버지와 삼촌들의 이름, 그리고 주소를 기억하고 있다.

-한국 정부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지금 생각이 하도 많아 머릿속이 복잡하다. 한국에 있는 나의 할아버지 와 삼촌들을 만나는 것이 현재 나의 소원이다. 한국 정부에서 우리가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도록 간곡히 부탁한다. 우리는 북조선도 남한도 하나 의 조국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를 받아줄 데는 남한밖에 없다 고 생각한다. 많이 힘써주시기 바란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28일 제 1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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