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표지이야기

현대·대우는 두마음 없나

(사진/현대가 기아주식을 사들인 주요 창구로 지목되고 있는 현대증권. 이미 지난 4월 초부터 7월 말까지 모두 1백81만7천여주의 순매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

“우리가 기아를 잡아먹으려 한다고 하도 항의전화들을 해서 이젠 포기했 다.”

현대-대우가 기아를 공동인수하기로 했다는 언론보도가 나간 지난달 31일 , 현대자동차 정세영 회장은 기아 김선홍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농담조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정 회장의 말은 과연 어디까지가 농담이고, 어디 서부터가 진담일까?


현대, 기아 해외전환사채 매입도 추진

현대와 대우는 “어떤 경우에도 기아가 삼성에 넘어가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돼 있다. 현대의 한 관계자는 “기아의 부품공급 업체 가운데 상당수가 우리에게도 부품을 납품하고 있어 부품업체의 부도 는 우리에게도 엄청난 타격을 줄 것”이라며 “무엇보다 기아의 회생을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문제는 기아가 자력회생하지 못하고 결국 제3자 인수로 나가게 되 는 경우다. “채권단이나 정부의 뜻은 이미 삼성에 넘기는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 있다”고 현대와 대우는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두 재벌은 삼성의 기아 인수에 대한 방어차원을 넘어, 기아를 직접 인수하기 위한 준비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현대-대우의 기아자동차 주식매집설이 근거있게 나돌고 있다.

현대가 주식을 사들인 창구로 지목되고 있는 곳은 현대증권·동원증권과 동서증권. 이들 세 증권회사에서는 기아에 부도유예협약이 적용된 지난 7 월15일부터 30일까지 기아차 주식 130여만주가 순매수됐다. 증권관계자들 은 그러나 현대의 기아 주식매집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됐다고 말한다. 실제로 동원증권은 지난 6월23일까지 매도우위를 계속 보이다가 그 이후 집중적인 사들이기에 나서 7월 말까지 모두 63만1천여주의 순매수를 기록 했다. 특히 현대증권은 이미 지난 4월초부터 7월말까지 모두 181만7천여 주의 순매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정확한 집계는 어렵지만, 현재 기아차 지분을 10% 조금 넘게 갖고 있다”고 말해 주식매집설이 사실임을 일부 시인했다 . 현대가 갖고 있는 기아주식지분은 공식적으로 6.5%다. 이 관계자의 말 이 사실이라면 현대는 그동안 최소 4% 정도의 지분을 매집한 셈이다.

현대는 주식 외에도 지난달 기아자동차가 발행한 사모전환사채 5백억원어 치를 이미 매입했고, 지난해 기아가 발행한 1천억대 규모의 해외전환사채 에 대한 매입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쪽은 이와 관련해 “현대는 이미 우호적인 지분을 포함해 20% 정도의 지분을 확보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기아는 오히려 현대의 인수 시나리오대로 가고 있는 것 아니냐”고 역공을 펴고 있다.


포드, 어느쪽 손을 들 것인가

대우와 삼성쪽은 공식적으로는 매집설을 부인하고 있다. 대우의 경우, 교 보생명이 갖고 있는 지분 5.16%가 대우지분으로 계산될 뿐 지분은 없다. 하지만 지난달 말 아시아차와 기산의 주식이 대우증권을 통해 대량 매수 된 점으로 미루어, 대우도 간접적인 방식으로 기아 주식을 상당량 확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삼성 역시 “기아를 인수할 능력도 뜻도 없다”며 주식매집설을 부인하기 는 마찬가지다. 삼성의 한 고위관계자는 “주식을 매집한다고 해서 기아 를 인수할 수 있겠느냐”면서 “삼성은 공식적으로 갖고 있는 6.3% 외에 기아주식을 결코 사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삼성의 또다른 관 계자는 “많아야 10% 정도”라고 말해, 어떻든 주식을 사들였다는 사실을 간접시인하고 있다.

기아의 제3자 인수 문제는 그러나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어느 쪽이 든 주식을 매집하는 것만으로는 단독으로 기아를 인수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기아 주식은 현재 포드가 자체지분 9.39%와 사실상 자회사인 일본 마쓰다 명의로 7.52%를 소유하고 있어 합계 16.91%로 최대주주다. 다음으로 (주)기산과 기아 임직원들로 구성된 경영발전위원회가 15.91%를 갖고 있다. 결국 포드와 경영발전위원회의 뜻이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우선 김선홍 회장이나 기아 노조쪽은 “제3자 인수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회생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내려질 경우 삼성이 아닌, 다른 우호세력에 지분을 넘길 것은 뻔하다. 기아로서는 기 아 위기가 삼성의 공작에 의해 빚어진 것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는 만큼 결코 기아가 삼성에 넘어가는 것을 방치하지는 않겠다는 뜻이 워낙 강하 기 때문이다. 삼성의 무노조정책도 기아노조의 위기감을 부추기고 있다. 포드사의 경우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앞으로 어떤 결정을 내릴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기아-포드사의 폴 드 랜코 이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포드는 김 회장을 중심으로 한 경영 정상화가 우선이며, 이를 적극 지원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포드사가 기아를 인수하지는 않겠다”고 말해 제3자 인수가 추진될 경 우 지분을 매각할 방침임을 밝혔다. 포드사의 지분은 매각할 경우 기아와 사전협의하도록 이면계약이 체결돼 있기는 하지만, 협의가 시작된 때부터 3개월이 지나도록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자유처분할 수 있도록 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럴 경우 포드는 과연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 것 인가?


LG가 적극 나설 경우…

업계에서는 현대나 대우에 지분을 넘길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무엇보다도 현대나 대우가 기아를 인수해 국제 자동차시장에서 막 강한 힘을 갖게 되는 것을 포드가 바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항간에 나돌고 있는 삼성 시나리오에, 마지막 단계로 포드사 지분의 인수가 포함 돼 있는 것도 이런 판단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그러나 삼성과 현대-대우의 지분전쟁 와중에,기아가 결국 LG쪽으로 넘어 갈 가능성도 조심스레 거론되고 있다. LG쪽은 한때 거론되던 기아와 LG의 전략적 제휴설에 대해서는 일단 부인하고 있다. 한해 매출액이 12조원이 나 되는 기아의 영업망을 인수할 경우 요즘같은 출혈경쟁상황에서 1∼2년 간 판매대금 회수가 늦어지는 데 따른 부담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그러 나 LG관계자는 “생산도 함께 한다면…”이라며 여운을 남겼다. LG는 기 아가 내부분위기가 가장 기울어 있는 상대인 데다가, 현대-대우의 공룡화 에 대한 포드사의 우려도 씻을 수 있는 대상이어서 만약 LG가 적극적으로 나설 경우 인수경쟁의 다크호스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정남구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14일 제 1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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