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부정과 부패를 파는 구리농수산물도매시장

(사진/서울 동북권의 상권을 분산시킬 목적으로 세워진 구리 농수산물 도매시장. 개장 두달도 채 지나지 않아 온갖 의혹이 터져나오는 화근덩어리가 되고 있다.)

총투자사업비 1136억원. 5만6천평에 이르는 대규모 부지. 가락동 농수산 물도매시장에 버금가는 제2의 대규모 도매시장, 도·소매를 완전분리한 선진국형 도매시장…. 개장 전만 해도 구리 농수산물도매시장 앞에는 으 레 이런 화려한 수식어가 붙어 있었다.

하지만 지난 6월9일 개장한 지 두달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구리 농수산 물시장에는 ‘동네시장’‘화근 덩어리’‘복마전’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칭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청소업체 선정과정에 대한 특혜의혹, 나눠먹 기식 인사, 시장건물의 부실공사 따위의 문제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기본시설도 없는 청소업체와 계약 강요

현재 구리 농수산물시장에서 배출되는 쓰레기 처리는 구리환경개발(주)에 서 전담하고 있다. 그런데 이 회사가 청소업체로 선정되는 과정에 관리공 사가 직접 개입한 흔적이 여기저기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공사쪽에 서는 이런 사실을 완강하게 부인한다. 청소업체와 계약을 하는 것은 쓰레 기 배출자인 도매법인이다. 따라서 관리공사와 청소업체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도매법인의 말은 다르다. 공사쪽이 구리환경개발과의 계약을 사실 상 강요했다는 것이다. 한 도매법인 관계자는 “안병철 관리공사 사장이 올 1월부터 4월까지 실무자회의나 법인대표자 회의가 있을 때마다 구리환 경개발과 가계약이라도 하라고 말했다. 내가 들은 것만 해도 5~6차례가 넘는다. 많이 한 정도가 아니라, 참석할 때마다 이 회사와 계약을 하라고 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다른 청소업체와 계약을 하려다 결 국 구리환경개발과 계약을 하게 됐다”고 말한다. 이는 안 사장이 무언의 압력을 가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게다가 안 사장이 도매법인들에 가계약이라도 맺으라고 요구한 시점인 1~ 4월은 구리환경개발이 정식으로 허가를 받기도 전이다. 이 회사가 구리시 로부터 폐기물처리업 허가를 받은 것은 지난 4월26일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ㄱ도매법인은 구리환경개발이 정식허가도 나기 전인 지난 3월15일 가계약을 맺었다. 또한 일부 도매법인이 “법인등기만 돼 있고 기본장비 와 조직도 없는 업체와 가계약을 맺기가 곤란하다”고 말하자 안 사장은 “그냥 (계약)해주면 준비한단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당시 구리도매시장의 쓰레기 처리에 참여하려 한 회사는 구리환경개발 이 외에도 2개 업체가 더 있었다. 이들 업체는 이미 지난해부터 구리환경개 발이 사실상 도매시장 청소업체로 선정됐다고 주장한다. 한 청소업체의 관계자는 “작년 10월에 이미 청소업체가 결정이 됐다는 이야기를 관리공 사 직원들로부터 들었다. 공사 직원들은 ‘윗선에서 결정한 문제이기 때 문에 우리는 잘 모른다. 다음 기회를 기대하라’고 말했다”고 밝히고 있 다. 이 관계자는 “당연히 공개입찰을 할 줄 알았으나, 공사 직원들이나 도매법인쪽에서 다음 기회를 기대하라고 말해 사업 참여를 포기했다”고 말한다.

이것만이 아니다. 폐기물처리업의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청소차량 등을 보관할 차고지가 준비돼 있어야 한다. 하지만 차고지를 구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혐오시설에 속하기 때문에 민원이 발생할 소지가 높고 관련법규도 그만큼 까다롭다.

그런데 관리공사는 도매시장 안에 있는 주차장을 구리환경개발의 청소차 량 차고지로 임대해 주는 특혜를 베풀었다. 공사가 “사업장폐기물 수집 ·운반을 위한 운반차량 주차장 및 차고지 시설에 대하여 도매시장 안에 설치된 주차장 사용을 승낙한다”는 공문을 구리환경개발에 보낸 것이다. 구리환경개발은 공사쪽의 차고지 승낙서를 바탕으로 4월26일 구리시로부 터 정식으로 폐기물처리업 허가를 받았다. 반면 다른 경쟁업체들은 구리 시내에서 차고지를 구하기 위해 애쓰다가 결국 적절한 부지를 찾지 못하 고 허가를 받지 못한다. 이에 앞서 4월12일, 공사는 폐기물처리업 허가 조건 가운데 하나인 샤워장 시설에 대해서도 사용허가를 내준다.

차고지 못 구하자 주차장에 샤워장까지 내줘

청소업이 상당한 이권사업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현재 5개법 인이 구리환경개발에 지불하는 쓰레기 처리비용은 매월 1억5천만원 정도 이다. 현재의 구리시장 정상화율이 애초 목표치의 절반 정도에 불과한 점 을 감안하면 구리환경개발의 매출은 현재보다 2배인 3억원 정도까지 늘어 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또한 업계에서는 인건비와 감가상각비를 제 하더라도 45%의 순수익이 남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누구나 군침을 흘 릴 만한 이권인 것이다.

지역사회에서는 이같은 특혜가 지난 지자체 선거와 4·11 총선에 대한 논 공행상의 흔적이 짙다고 말한다. 지난 3월까지 구리환경개발의 설립을 주 도했던 유 아무개씨는 지자체 선거 당시 현 구리시장의 진영에서 선거활 동을 했다. 유 씨는 4·11총선 때도 신한국당 구리시지구당의 조직책으로 활동했다.

또한 이 회사 한 아무개 상무도 현 시장의 절친한 친구로 알려져 있으며, 같은 회사 이 아무개 이사와 함께 지자체 선거 당시 현 구리시장의 진영 에서 선거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사회에서는 이같은 인맥을 들 어 관리공사 사장 이상의 ‘윗선’이 청소업체 선정에 관여했을 개연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구리환경개발 한 아무개 상무는 ‘말도 안 되는 소 리’라며 억울해 하고 있다. 한 씨는 “시장 내의 주차장 사용을 승인받 은 것은 이미 지난 1월 내인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또 현재 적자를 내고 있는데도 청소업체를 계속 운영하고 있는 것은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겠 다는 생각 때문이다. 또 친구가 구리시장으로 있다고 해서 내가 아무일도 안하고 가만히 있어야 되냐. 이것은 구리환경개발에 대한 모함이다”며 항의하고 있다.

한 씨는 ‘내인가’를 받았기 때문에 공사로부터 주차장 사용을 승인받은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의 설명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내 인가라는 것 자체가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사업계획서에 불과하다. 또 한 이미 지난해 8월 다른 청소업체도 구리시로부터 내인가를 받은 상태였 다. 왜 구리환경개발에만 주차장 사용 허가를 내주었냐는 형평성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다.

유통 관련없는 공무원출신으로 특채

청소업체 선정에 대한 특혜시비는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이 초기에 겪었던 파행을 붕어빵 찍어내듯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가락동의 경우도 85년 설립 당시 특정업체와 청소용역 계약을 맺었다가 특혜시비가 불거지면서 89년께부터는 완전 공개경쟁 입찰을 했다. 구리농수산물시장도 애시당초 부터 완전 공개경쟁 입찰을 유도했어야 옳았다.

가락동시장의 전철을 그대로 되밟고 있는 게 하나 더 있다. 가락동시장 관리공사는 설립초기 유통업무와 관련이 없는 전직 경찰관이나 정당 출신 인사, 공무원 출신을 대거 특채해 인사비리 시비가 불거졌다. 구리농수산 물시장 관리공사도 전직 신한국당 간부나 유통업무와 전혀 관련이 없는 구리시청 공무원 출신들이 공사의 핵심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구리농수산물 시장이 파행운영을 겪고 있는 것에 대해 이러한 비전 문가들의 채용에 원인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먼저 관리공사의 제2인자라고 할 수 있는 이 아무개 전무는 구리시청 공 무원으로 있다가 14대 총선 때 신한국당 구리지구당 조직부장을 지낸 사 람이다. 그는 유통문제 전문가가 아니면서도 전무이사가 된 것에 대해 자 격시비가 일자 “공기업 이사는 특별히 정해진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자격시비는 다른 정부투자기관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다. 공무원 생활을 3 0년 이상 했기 때문에 충분히 자격이 있다고 본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는 “당신이 조직부장으로 있던 이 지역 국회의원의 추천이 작용하지 않 았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렇다, 안 그렇다고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며 정확한 답변을 꺼렸다.

이 아무개 감사실장은 15대 총선 당시 신한국당 구리지구당 조직부장으로 활동했다. 이씨는 학력과 경력면에서 관리공사 직급별 채용기준에 적합하 지 않은데도 2급 중책에 해당하는 감사실장에 파격적으로 임용됐다. 채용 기준을 보면 감사실장은 △공무원 5급 이상 자격소지자 △정부투자기관의 동일직급에서 1년 이상 경력 소지자 △대학 전임강사 이상으로 1년 이상 경력 소지자 △또는 앞의 기준에 준하는 경력이 있다고 인정되는 자로 돼 있다. 하지만 이씨는 이 가운데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 났다. 관리공사 안병철 사장은 “한참 뒤에야 이씨의 채용에 문제가 있다 는 것을 알게 됐다”고 사실상 잘못을 시인했다. 그러나 안 사장은 “본 인이 사퇴의사를 표명했으나 성격이 거친 상인들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이 씨처럼 적극적인 인물이 꼭 필요해 만류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밖에도 공사의 성격상 가장 중요한 직책인 유통관리부장은 유통쪽에 전 혀 경험이 없는 구리시 문화공보실장 출신의 김아무개 씨가 맡고 있다. 안 사장은 이에 대해서도 “유통과장이 유통의 전문가이기 때문에 부장까 지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해명하고 있다. 과장급 이상 10명의 임직원 가운데 벌써 3명이나 입도마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이다. 또 이들 임직원 가운데 구리시 공무원 출신이 8명이나 된다. 사실상 핵심자리들을 이들 구리시 공무원 출신 인사들이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인사문제가 불거진 데는 지난 2월 직원을 채용하면서 전체 정규직 원 71명을 모두 추천 형태의 특채로 선발한 데 있다. 실제로 직원 71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37명 가량이 구리시 공무원 출신으로 채워졌다. 이 가운데 유통쪽의 경험이 있는 공무원은 극히 일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 졌다. 결국 관리공사가 구리시 공무원들의 자리 만들어주는 곳으로 전락 해 버린 것이다.

부실인사만큼이나 건물의 부실공사 문제도 심각하다. 완공된 지 2개월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도 벌써부터 경매장이나 사무실 천정 곳곳에서 물이 조금씩 새고 있다. 상인들은 현재 15군데 정도에서 물이 새고 있는 것으 로 파악하고 있다.

건물도 총체적 부실 전기용량도 모자라

구리도매시장 건물의 부실문제는 이미 건설과정에서 불거져 나왔다. 95년 9월 청과물동 2층이 붕괴돼 6명이 중경상을 입었고, 96년 3월에는 수산물 동 슬라브 공사중 콘크리트가 무너졌다. 애시당초부터 골격만 멀쩡했지, 속은 골병이 든 상태였던 것이다. 게다가 전기사용용량을 적게 잡아놔 현 재 대형 환풍기조차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환풍기를 틀 면 용량부족으로 전기가 나간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상인들은 푹푹 찌는 여름더위 속에 야채가 썩어나가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구리농수산물 도매시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서울대 김 완배(농경제학) 교수는 차라리 시행착오의 경험이 있는 서울시 가락동 시 장 관리공사 직원들을 파견하는 편이 훨씬 나을 뻔했다고 말한다. 김 교 수는 “애초 구리도매시장을 건립할 당시 공사설립을 반대했다. 공사가 만들어지면 직원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구리시 공무원 출신 등으로) 뻔 하지 않느냐. 전혀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들어와 복덩어리가 화근 덩어리 로 바뀔 것이라고 경고했었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또 근복적인 문제의 치유를 위해서는 중도매인-도매법인-공사( 관리사무소)로 이어지는 옥상옥 구조의 도매시장 체계를 바꾸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는 “현재의 경매체계는 일본의 상행위를 그대로 모방한 것 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유통체계에서는 아무런 기능도 발휘하지 못하는 도매법인을 중간에 둠으로써 부작용만 유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건설될 20여개 공영도매시장도 답습할 것”

김 교수는 이와 함께 유통분야에 전혀 경험이 없는 공무원(출신)이 공사 나 관리사무소로 파견되는 도매시장의 관리·운영체계에 대해서도 근본적 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유통의 중추라 할 수 있는 도매시장은 고도의 관리운영체계를 요구하는 데도 비전문가들이 운영하면서 시행착오 를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만약 도매시장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와 수정이 이뤄 지지 않는다면 기존의 14개의 공영도매시장뿐만 아니라, 앞으로 1조원의 예산을 들여 건설되는 20여개의 공영도매시장에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해 서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모든 공영도매시장은 똑같은 유통체계와 관리체계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이용인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