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정성 큰 기쁨

‘애정 듬뿍’ 독자편지 찜통더위야 가라

김수영(27)씨는 출판사에서 일한다. 어떤 책을 낼지 궁리하고, 필자를 만 나고, 원고도 받아내, 실제 책 만드는 일까지 도맡아 한다. 찜통더위 속 에서 책과 씨름하던 그는 며칠 전 한 독자로부터 편지를 받고 더위를 말 끔히 날려버렸다. 깔끔하게 정리된 편지에는 김씨가 기획한 책에 대한 느 낌이 진솔하게 담겨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오페라 <카르멘>에 빠져 어디를 가도 오페라를 좋아한다고 얘기하면서도 늘 마음 한구석엔 ‘내가 도대체 오페라에 대해 아는 게 뭐가 있지?’라는 의문을 품곤 했다.” 대학생 독자는 김씨가 기 획한 책 <오페라감상법>을 읽은 뒤에야 오페라를 전반적으로 이해하게 되 었다고 고마워했다. 편지는 이렇게 끝맺고 있다. “책의 홍수시대에, 그 것도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는 요즘 같은 때 <오페라감상법>은 오 페라를 사랑하고 탐구하는 한 사람에게 앞길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었습니 다.”

본인이 책을 만들기는 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 편지는커녕 엽서 한 장 보 낸 적이 없던 김씨에게 이 편지는 감동 이상의 것이었다. “가격, 표지, 내용, 편집까지 세세하게 언급해주는 독자의 관심이 너무 고마웠어요. 보 통 애정이 아니면 그렇게 할 수 없잖아요. 또 무엇보다 내가 만든 책이 한 사람의 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을 줬다는 점이 가장 기뻤어요.”

편지를 읽으면서 김씨는 그 책을 만들던 과정이 떠올랐다. 토씨 하나하나 꼼꼼히 살피는 필자 덕분에 94년에 시작해 꼬박 3년이 걸렸다. 당시엔 편 집을 컴퓨터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거운 교정지를 들고 시내를 누비는 것도 김씨의 몫이었다.

<오페라감상법>은 김씨가 일하는 대원사에서 발간하는 ‘빛깔있는 책들’ 시리즈 가운데 179권째 책이다. 두달만 지나면 드디어 2백권째가 나온다. 164권째부터 이 시리즈물을 담당해온 김씨의 꿈은 5백권째 빛깔있는 책을 보는 것이다. 전통문화, 고미술, 생활, 건강, 음식, 한국의 자연 등을 소 담하고 깔끔한 형식으로 다루는 이 대형 시리즈물은 얄팍한 상업주의로만 치닫는 출판계 풍토를 되돌아보게 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그는 출판 기획을 좀더 전문적으로 해내기 위해 퇴근 뒤에는 동국대 언론 정보대학원(출판잡지 전공)을 다니고 있다. 더 많은 독자들로부터 편지를 받기 위해서일까.

김창석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