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과학읽기

복잡한 사회를 이끄는 단순한 규칙

얼마 전에 있었던 신한국당의 후보 경선 과정과 경선이 끝난 뒤 패배한 후보들의 자유분방한 움직임은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 잘 알려진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a)라는 게임을 연상케 한다. 1950년대에 처음 등장한 이 게임의 규칙은 아주 간단해서, 두 경기자는 상대와 협동하든지 배반하든지 두가지 결정밖에 할 수 없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한 경기 자가 협동하고 다른 경기자가 배반했을 때, 배반한 쪽이 가장 높은 점수 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80년대에 미국의 정치학 교수인 로버트 액슬 로드는 이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 했다. 그는 “중앙 지휘소도 없는 이기적인 경기자들 사이에서 협동이 창 발(創發)되는 과정”을 연구하기 위해 여러 연구자들이 개발한 전략을 시 험했다. 그 결과 TIT FOR TAT(즉각 보복)이라는 전략이 가장 우수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것은 먼저 배반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협동하라. 그 리고 이전에 상대가 사용했던 전략을 그대로 사용하라”였다.

흔히 자연계는 먹고 먹히는(tooth and claw) 냉혹한 세계로 비유된다. 그 러나 생물학자들은 지극히 단순한 이기적 규칙, 즉 먹느냐 먹히느냐라는 간단한 규칙에서 협동과 공생, 협조라는 복잡한 과정이 창발된다고 지적 한다. ‘창발’(emergence)이란 애초에 어떤 계획이나 통제자가 없이도 상호작용의 과정에서 지극히 단순한 규칙에서 복잡한 규칙이 나타나는 것 을 말한다. 오늘날 일부 과학자들은 진화, 종(種)의 존속과 소멸과 같은 자연적 과정뿐 아니라 정치, 전쟁, 국가와 국가간의 국제 관계 등에서도 얼핏 보기에는 이기주의와 냉혹한 배반만이 판을 치고 있는 것처럼 보이 지만 그 속에서도 협동과 협조가 중요한 메커니즘으로 등장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물론 자연계의 과정과 사회의 과정을 단순 비교하는 데에는 많은 위험이 따른다. 특히 진화와 같은 과정은 장구한 시간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 척도라는 한가지 측면에서도 자연과 사회를 직접 연결짓는 것은 대 단히 위험하다. 그러나 자연이나 인간사회를 모두 수많은 단위들로 구성 된 계(system)로 보고, 거기에서 나타나는 움직임을 그 계들 사이의 복잡 한 상호작용으로 파악하는 관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즉, 한 집단은 무 수한 개인이라는 단위로 구성된 하나의 계이고, 사회는 무수한 집단들을 단위로 삼는 계이다. 그리고 세계는 무수한 국가를 단위로 삼는 커다란 계라는 것이다.

흔히 정치나 선거를 게임에 비유하곤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선거에 깊은 관심을 갖는 이유도 그것이 게임과 흡사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무 릇 모든 게임이 갖는 보편적 특성은 규칙의 단순성이다. 가령 컴퓨터 게 임의 경우를 예로 들더라도, 테트리스나 겔라그처럼 공전의 인기를 누린 컴퓨터 게임은 지극히 단순한 규칙을 가지고 있다. 선거과정은 후보들과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행태를 단순화시킬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대 응도 지극히 단순화시킨다. 즉, 많은 사람들은 선거라는 게임에 가담하고 ,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그 게임의 규칙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 게임에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리는 결정은 무척 단순한 것처럼 보 인다.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결정은 “투표에 참석할 것인가, 말 것인가”, “누구를 찍을 것인가”이다. 투표가 이루 어지기 전까지 숱한 논의와 토론이 벌어지지만, 일단 게임의 규칙이 결정 되고 선거가 가까워지면 현실적으로 이런 단순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것 이다. 그렇지만 얼핏 보기에 단순하고 하찮은 것처럼 보이는 수많은 사람 들의 선택과 결정이 상호작용을 통해 중요한 결정을 창발하며, 게임의 규 칙 자체도 바꾸어낸다. 우리가 선거나 정치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는 진 짜 이유는 이런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김동광/과학세대 대표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14일 제 1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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