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보모를 믿을 수 있는가”

(사진/영국의 부모들은 시간을 얻기 위해 보모를 채용하고, 평화를 얻기 위해 사립형사 고용에 폐쇄회로 카메라까지 동원하고 있다.)

햇빛 좋은 공원에서 한 보모가 유모차를 끌면서 산책을 하고 있다. 그 뒤 를 한 사람이 미행한다. 그의 손에는 카메라와 녹음기가 들려 있다. 바로 보모를 감시하는 민완 사립형사다.

“도무지 안심할 수 없다”

이는 어느 첩보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최근 영국 사회에서 흔히 일어 나는 일이다. 아이를 맡기고 직장에 나가는 부모들은 자신들이 채용한 보 모들을 감시하기 위해 사립형사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일이 빈번해진 것 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앞으로는 누구든지 원하면 집안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해 보모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언제든지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나만큼 아이들을 잘 봐줄까. 혹시 아이에게 해코지나 하지 않을까?” 보모에게 아이를 맡기고 직장에 나왔지만 부모들은 이렇게 언제나 마음을 졸인다. 이런 부모의 불안감을 급격히 확산시키고 ‘보모 감시체계’까지 거론된 데는 한 여자어린이 살인사건이 결정적 구실을 했다.

지난 7월 말 영국 웨스트요크시의 한 법정에서 검찰은 보모 안젤라 리(46 )에게 ‘다루기 까다로운’ 생후 4개월된 여아 다니엘라를 살해한 죄로 징역 5년을 구형했다. 애초 안젤라는 순전히 실수였다고 주장했다. 아이 를 안아서 얼르던 중 플라스틱 장난감과 부딪혀 아이를 떨어뜨렸고 그래 서 아이가 죽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거짓말은 곧 들통났다. 죽은 아이의 얼굴에 멍든 자국과 상처를 부검한 결과 보모 안젤라가 고의로 죽인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안젤라 리는 자격증이 있는 8년 경력의 베테랑 보모로 평소 주위에서도 좋은 평판을 받아왔다. 그래서 키클리스 지방 보모알선기관에서 추천을 받아 안젤라를 채용한 다니엘라의 부모는 “보모에게 아이를 맡겼다고 안 심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라며 전국의 부모들에게 경고했다. 사건은 안 젤라가 다니엘라를 본 지 불과 열흘 만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현재 영국에서 보모로 등록하기 위한 제도는 여러 가지가 있다. 유아교육 전공자에서부터 경험위주로 능력을 인정받은 자, 혹은 무자격 일반 주부 들까지 다양하다. 그중에서 외국유학생으로 온 오페어(거저 숙식제공을 받으면서 가사일을 돕는 외국여자·Au Pair)에게 보모일을 맡길 수도 있 지만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다는 난점이 있다. 몇달 전 오페어로 미국으로 갔다가 보모일을 하던 영국 여학생이 9개월 된 젖먹이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중에 있다는 사실도 보모를 둔 부모들을 경악하게 하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자격증을 갖추고 적절한 경로를 거쳐 채용된 보모라도 도 무지 안심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맞벌이 부모들 사이에 팽배해 있다. 이 런 현안을 풀기 위한 단체 ‘플레이 팬’은 보모들의 등록 의무화와 보모 소속기관의 단속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 단체의 주장은 일하 는 부모들이 마음의 평화를 가질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관련 단체 와 지방의회에서는 감시카메라 등을 통해 보모들을 정기적으로 체크하도 록 하는 규정을 정해놓은 상태다.

감시카메라 설치는 사생활 침해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 지만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권리’가 있음을 주장하는 부 모들은 목소리를 높인다. “학대당하는 아이와 사생활 침해 중 어느 것이 우선입니까.”

“모욕적 처사” 보모 항의도 만만찮아

물론 보모들의 항의도 만만치 않다. 대학을 졸업하고 보모로 일하고 있는 크리스틴은 이를 상당히 모욕적인 처사라고 하면서 “아이들과 보모의 노 는 모습을 보면 누구든지 그 관계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반박하 고 있다. ‘런던 오페어와 보모 알선기관’의 메기 다이어 소장도 보모를 감시하는 처사에 유감을 표시한다. 그는 “누구든지 보모를 확신하지 못 한다면 감시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해고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충고 하고 있다. 메기 소장 역시 보모를 체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들을 통해서라고 말한다. 매일 아침 보모를 대하는 아이들의 표정이나 태도가 가장 효과적이고 정확한 방법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최근 한 연구 결과는 일하는 여성 중에서 아이를 가진 여성이 아이가 없 는 여성보다 스트레스로 인한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훨씬 더 높다고 발표 했다. 시간을 얻기 위해 보모를 채용하고 평화를 얻기 위해 이제는 사립 형사 고용에 폐쇄회로 카메라까지 동원되고 있다. 그러나 누구도 이런 방 법이 부모와 보모간의 믿음과 신뢰보다 더 낫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런던=권은정 통신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