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하는 재벌/한화그룹

대대적 세대교체 ‘폭풍’

한화그룹의 혁명적 개혁은 대대적인 세대교체에서 먼저 시작됐다.

김승연 회장은 지난해 10월 오재덕, 박용식, 허주욱, 가갑손, 오수인 등 5명의 부회장을 한꺼번에 일선에서 퇴진시켰다. 그룹의 원로들이 일시에 물러나는 대규모 물갈이는 그룹 내부에 큰 충격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연말에는 김 회장 해외출장시 총수를 대신했던 석낙정 그룹 총괄부회장마 저 2선으로 물러세웠다.

김 회장은 이어 그룹 회장과 각 계열사 사이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그룹 비서실을 대폭 개편했다. 비서실은 기존 8개팀 1백71명에서 8개 부 문 92명으로 바뀌어 외형상으로는 힘이 축소된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기 도 했다. 그러나 인사 내용을 들여다보면 김 회장이 비서실 개편을 통해 친정체제 강화와 세대교체를 시도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김 회장의 신 임이 두터운 박원배 회장이 비서실 회장으로 임명됐다. 박 회장은 김 회 장의 오른팔로 불리는 전문경영인으로 한화그룹 5개 소그룹 가운데 화약 ·무역·건설·통신 부문, 기계 부문, 화학·에너지 부문 등 3개 소그룹 의 책임까지 맡고 있다. 그동안 소그룹제를 도입해 전문경영인에게 더 많 은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노력해온 김 회장의 스타일에 모종 의 변화가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세대교체도 두드러진다. 기존의 팀장 대신 전문성을 강화한 담당제를 도 입하면서 30∼40대 젊은 부장과 이사들을 담당 책임자에 임명하는 파격을 보였다. 과거 비서실 팀장들이 부사장, 전무급에서 임명돼온 것과 비교하 면 혁명적 변화다. 비서실 해외영업팀 이재무(37) 부장이 전략기획 담당 으로, 역시 해외영업팀에 근무하던 이신효(43) 부장이 인력개발 담당으로 발탁됐다. 차남규(43) 경영지원 담당과 홍원기(46) 감사 담당도 이사급이 다.

능력만 있으면 직급에 관계없이 자리를 맡기겠다는 김 회장의 말 속에는 혁명적 개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조직과 사람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뜻이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한화가 상대적으로 다른 그룹들에 비해 조직의 관 료화가 덜하고 김호연 (주)빙그레 회장을 제외하고는 경영에 참여하는 오 너의 친인척이 없어 김 회장을 중심으로 한 단일한 권력구조를 갖고 있지 만, 김 회장은 개혁에 대한 내부의 저항과 타성이 아직도 적지 않다는 판 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 회장이 지난 7월 초 그룹 경영전략 회의에서 자사 이기주의에 대해 강하게 경고한 것도 맥락을 같이하는 대 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