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격동하는 재벌/한화그룹

김 회장의 발걸음이 밝다



(사진/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왼쪽)과 동생 김호연 빙그레 회장.)

지난 6월 말 한화그룹 비서실의 이경재 문화담당 상무는 김승연(45) 회장 한테서 예기치 않은 전화를 받았다. 개고기를 좋아하는 직원들이 있으면 함께 서울 구기동 싸리집에서 저녁이나 먹자는 내용이었다. 갑작스레 이 루어진 이날 회식에는 개고기를 좋아하는 2명의 여직원까지 합세해 그룹 총수와 말단 직원들 사이에 격의없는 대화가 오고 갔다. 평소 김 회장을 어렵게만 여겼던 직원들로서는 김 회장의 다른 일면을 볼 수 있었던 자리 였다고 한다.

올해로 취임 16년째를 맞는 김 회장은 40대 중반의 나이에도 근엄하고 차 가운 인상을 준다. 앞머리카락을 뒤쪽으로 바로 빗어넘긴 올백의 머리모 양과 거의 더블 정장 일색인 평소 옷차림, 하얀 금테안경 등이 그런 이미 지를 더욱 튀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 듯하다. 측근들이 김 회장의 스타 일에 대한 주변의 수근거림을 직접 보고까지 했지만 그는 그냥 웃어넘긴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지난 81년 창업자이자 부친인 김종희 회장이 갑자 기 타계하면서 예상을 훨씬 앞지른 29세의 젊은 나이에 그룹 총수직을 물 려받았다. 그룹 관계자들은 20대에 재계순위 9위의 재벌그룹 회장직에 오 른 김 회장이 그룹총수로는 너무 어린 것 아니냐는 외부의 시선을 의식적 으로 불식시키기 위해 일부러 자신의 독특한 스타일을 추구했던 것으로 이해한다.

김 회장은 김영삼 정권 초기 개인적으로 시련을 겪으면서 경영활동도 적 지 않게 위축됐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그룹 원로들의 숲에 둘러싸여 있는 듯한 모습에서 벗어나 친정체제를 강화하는 등 그룹 총수로서 활발 한 발걸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주)한화 여수공장, 한화종 합화학 여천공장 직원들과 지리산을 종주하는 패기를 보여주었다. 6월 말 에는 상반기 경영실적이 크게 나아진 것을 격려하면서 30여명의 대표이사 들에게 꽁치를 선물로 보내기도 했다. 해외출장도 활발해 지난 6월에는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를 예방해 의약, 통신 부문에 대한 협력방안을 협의한 데 이어 7월에는 미국 샌호제이에서 열린 전자 관련 박람회장을 직접 찾아 반도체, 전자, 의약 등 그룹의 신규전략사업을 직접 챙기겠다 는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그의 활발해진 발걸음에는 지난 95년 말 재산문제로 불편했던 동생 호연( 42)씨와 화해하면서 집안의 우환을 걷어낸 것도 큰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 호연씨는 지금 형인 김 회장으로부터 사실상 떨어져 나와 종합식품회사 인 (주)빙그레를 경영하고 있다. 김 회장 형제는 지난해 9월에는 칠순을 맞은 모친이 잔치보다는 무엇인가 뜻깊은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 히자 공동으로 충북 음성의 무의탁노인 복지시설인 꽃동네에 성금 1억원 을 전달하기도 했다. 또 최근에는 김호연 회장의 개인 회사 가운데 경영 난을 겪고 있는 편의점업체 서클K와 물류도매회사 콜롬버스코퍼레이션에 한화그룹이 경영지원을 하기로 했다. ‘비온 뒤 땅이 더 굳어진다’는 속 담을 상기시키는 일이었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14일 제 1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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