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

느긋한 80년대를 설계하는 건축가

가수, 음반 프로듀서, 대중음악 평론가에 현직 건축설계사. 양진석(31)씨 가 갖고 있는 직업이다. 그만큼 그는 바쁘다. 그러나 양씨를 만나본 사람 은 누구나 편안함을 느낀다. 그는 얼마 전 2집 <Summer Dream>을 내놓았 다. 같은 이름의 타이틀곡을 비롯해 <이룰 수 없는 사랑이 아름답다> <국 민학교 동창회> 등 제목만 들어도 어떤 노래인지 대충 감이 잡힌다. 자신 의 음악을 ‘30대들을 위한’ 것으로 규정하는 그는 ‘몰이문화’ 식의 우리 대중음악계에 이런 음악도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성균관대 건축공학과 84학번인 그는 대학시절 각 대학의 가요제를 쫓아다 니는 낭만파 학생이었다. 그러다 한동준, 지근식 등을 만나 86년엔 ‘노 래그림’을 결성했고, 88년 ‘노래그림’ 1집을 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그냥 음악이 좋을 뿐 꼭 가수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다”며 88년 일본 유학을 떠난다. 그리고 94년까지 교토대학 건축공학과 석사·박사과 정을 마치고 돌아와 건축설계 사무소에 들어갔다. 건축일을 하며 짬짬이 음악친구들을 만났던 그는 95년 1집 음반을 냈다. 하지만 음반을 만들어 놓기만 했을 뿐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아 아까운 음반 하나가 그냥 사라 지고 말았다. 그러다 96년 개인사무소를 내고 프리랜서로 독립하면서, 그 는 자신의 삶에서 음악에 조금 더 많은 비중을 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 밤의 디스크쇼>(MBC-FM), <살며 생각하며>(BBS-FM)의 고정코너를 맡게 됐 고, <서세원의 가요산책>(KBS-FM), <이영현의 가요토피아>(SBS-FM) 로고 송을 제작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건축설계일을 그만둔 건 물론 아니다. 그의 작품으로 유명한 건 올해 완공된, H.O.T가 소속된 일산 SM레코딩 스튜디오다. 건축과 음악에 대해 그는 “둘 다 예술이고 창작이며, 인간이 즐기고 이용하는 것이고, 인간이 죽은 뒤에도 남아있는 것”이라며 “두 존재가 서로 방해하는 것 이 아니라, 서로 보완하고 상대방의 상상력을 자극해 주기 때문에 끝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꿈은 레코딩 스튜디오, 건 축사무소, 집, 바를 모두 갖춘 자신의 빌딩을 직접 설계하는 것.

하지만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안절부절하진 않는다. 타고난 로맨 티스트인 그는 언제나 바쁘지만, 또 언제나 느긋한 자유인이다.

권태호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