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표지이야기

마지막 카드는 공동경영?



(사진/정세영 현대자동차 명예회장과 김우중 대우회장, 김선홍 기아 회장(왼쪽부터).
기아의 자력회생이 불가능한 경우 공동경영이라는 대안이 나오고 있다.)

기아의 자력 회생은 가능한가?

정부와 채권단이 지난 8월4일 김선홍 회장 등 기아 최고경영진의 개인 명 의 사표 및 노조의 인원감축 동의서 제출을 거부하는 기아에 대해 운영자 금 지원없이 두달간의 부도유예 기간을 인정해 주기로 결정함에 따라 일 단 기아사태는 기아 부도→법정관리→제3자인수라는 최악의 수순은 벗어 나게 됐다. 그러나 금융기관들의 기아에 대한 채권행사가 금지되는 부도 유예 기간이 불과 두달이라는 점에서 채권단의 결정은 사실상 시한부 조 처의 성격이 짙다고 할 수 있다.


인력 감축·부동산 매각, 성과는 미지수

기아는 일단 지난 7월 실시한 자동차 할인특별판매로 9월까지 3천5백억원 정도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고, 수출 등 내수판매에 따른 할부원금도 매 달 6천억원 정도씩 들어오고 있어 자금회전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또 지난 2일 현재 기산의 안중현화지구 부지 등 1천2백억원대의 자산매각 계 약이 이루어졌고 이 가운데 248억원의 자금이 회수됐다. 기아자동차 노조 가 벌이고 있는 모금운동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노조는 최근 전환사 채 신청금 210억원, 차량 할부금 일시납부금 338억원 등 554억원을 모아 회사에 전달했다.

기아그룹의 한 고위 관계자는 “최근 회사살리기 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자 동차공장의 생산성이 20∼30% 높아졌다”면서 “자산매각을 통한 부채규 모 축소와 금융비용 축소, 인건비 및 재료비 축소 등을 감안하면 앞으로 차량 가격을 지난 7월의 할인특판 때와 마찬가지로 30% 정도 깎아 팔아도 될 정도”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현대, 대우가 공동경영하기로 한 기아특수강의 경영 정상화 가능성도 기 대감을 높여주고 있다. 기아특수강의 한 임원은 “현대, 대우와 기아가 공동경영을 통해 지분 및 부채를 함께 떠안으면 자금부담이 덜어지고 판 매량도 늘게 돼 공장가동률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며 “당장 이익이 나 는 수준은 아니더라도 경영정상화 시일이 상당히 앞당겨질 것”이라고 말 했다.

그러나 기아가 넘어야 할 산은 아직도 한둘이 아니다. 당장 진성어음조차 금융기관 할인을 받지 못하고 이는 1만7천여 협력업체들의 생존 여부가 관건이다. 자동차의 특성상 협력업체의 부도로 2만여 부품 중 일부라도 제대로 공급이 안 되면 생산이 중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아 협력 업체들은 벌써 정부와 채권단의 기아 회생 의지가 분명히 제시되지 않는 한 연쇄부도가 불가피하고 기아차의 정상경영도 어렵다며 지난 4일 채권 단의 결정은 “또다른 기아 죽이기에 불과한 조처”라는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또 기아가 이미 약속한 인력감축(8835명), 부동산매각(3조1 천36억원) 등 자구노력의 핵심사항들이 짧은 기간 안에 가시적 성과를 거 둘 수 있을지도 미지수라고 할 수 있다. 당장 부동산 매각만 하더라도 대 기업들의 잇단 부실과 연쇄부도로 매물이 대규모로 쏟아져 나와 있는 상 태지만 거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기아 새 회장은 정세영?

기아가 부도유예 기간 중 자구계획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거나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위기에 몰릴 경우 채권단은 시한이 끝나는 9월30일 직후 즉각 부도유예 적용을 배제할 가능성이 높다. 솔직히 정부와 채권단 에서는 기아 자력회생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 주식포기각서를 제출하지 않아 금융권의 자금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주)진로가 부도위기를 겪고 있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대와 대우가 기아지원을 어느 정도까지 확대할 것이냐도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현대, 대우가 삼성의 기아인수 저지라는 큰 원칙에는 흔들 림이 없지만 무한정으로 기아를 지원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아가 2개월 안에 경영정상화의 토대를 마련하지 못하는 최악의 경우 현 대-대우-기아 연합군의 다음 수순은 무엇이 될 것인가? 현대, 대우, 기아 주변에서는 아예 기아자동차를 현대-대우-기아가 공동경영하는 방안이 나 오고 있다. 기아 관계자는 “아직 그런 문제를 거론할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지만 이미 3개 그룹 고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의견교환이 있었던 것 으로 알려진다. 김 회장은 정세영 현대자동차 명예회장과 20년 이상 맺어 온 친분을 토대로 기아사태 뒤 수시로 전화를 주고 받으며 의견을 조율해 왔다. 김 회장과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도 올해초 김 회장이 폴란드의 대 우자동차 공장을 방문할 때 김우중 회장이 직접 극빈대접을 하도록 현지 관계자들에게 특별지시를 할 정도로 최근 2∼3년 전부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기아 관계자들은 세 회장간에 이런 친분이 없었다면 현대와 대우의 기아 전환사채 인수, 협력업체 지원, 기아특수강 공동경영은 불가 능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기아 안에서는 벌써 기아차의 3자 공동경영이 이루어질 경우 정 명예회장이 기아차 회장 자리를 맡을 것이라는 예상까 지 나오고 있다. 실제 김 회장은 그룹 임원들에게 “자리에 연연할 생각 이 전혀 없으며 회사가 정상화되는 것과 관계없이 부도유예 기간이 끝나 면 물러날 것”이라는 입장을 밝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그룹은 아직 검 토한 적이 없다는 반응이지만 정 명예회장이 김 회장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자동차 전문경영인이라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는 분위기다.


“본격적 구조조정 계기로 삼아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기아사태를 아예 한국 자동차산업의 본격적인 구조 조정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현대-대우-기아 등 3개 자동차 회사의 대규 모 전략적 제휴안에 대한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들의 논거는 간단하다. 한국 자동차산업이 현재와 같은 판매부진 상황에서 과잉 생산설비를 그대 로 떠안고 갈 경우 2000년 초까지 세계 10대 자동차메이커로 살아남을 회 사는 거의 없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대우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해말 현재 우리나라 자동차업체들의 총 생산능력은 347만2천대에 이르지 만 실제 내수 및 수출로 판매된 자동차는 285만5천대에 불과하다. 공급과 잉이 무려 17.7%인 61만7천대에 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격경쟁력 확보를 위해 업체 당 최소 2백만대 이상의 생산능력을 확보해야 하는 자 동차업체들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지속적으로 생산능력을 늘려가 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대우경제연구소의 김경엽 자동차팀장은 “ 오는 2000년에는 국내 자동차업체들의 공급과잉규모가 108만6천대에 달하 고 2002년에는 116만7천대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미 E IU 등 세계적인 자동차산업 관련 예측기관들은 오는 2000년대까지 전세계 적으로 살아남을 8∼10개의 자동차업체 가운데 한국은 1개 정도 포함될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공급과잉과 판매부진 상황을 돌파하려면 국내업체들도 선진국업체들처럼 부품개발, 판매, 애프터서비스 등에서 좀더 적극적인 전략적 제휴를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선진국 자동차업체들의 경우 국경 을 넘어 다른 나라 경쟁업체들과 지분과 부품회사, 마케팅, 기술 등을 공 유하는가 하면 OEM(주문자상표부착방식)을 통한 조립생산 등 다양한 형태 의 전략적 제휴를 하고 있다. 한 예로 기아차의 해외 파트너인 미국 포드 자동차의 경우 △지분공유 및 조인트벤처는 기아, 마쓰다, 피아트, GM, 볼보, 폭스바겐과 △부품회사 공유는 피아트, 마쓰다, 닛산, 폭스바겐과 △마케팅은 기아와 △기술공유는 크라이슬러, GM, 미쓰다, 닛산과 △조립 생산은 BMW, 기아, 마스다, 닛산, 스즈끼와 각각 제휴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나라 자동차업체들도 각각 일본과 미국업체들과 기술제휴를 맺고 있 지만 국내 업체들끼리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일부에서는 국내 자동차 업체들이 각 그룹들의 주력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고 외국 제휴선이 다 른 데 따른 기술적 차이도 커 전략적 제휴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기아사태를 계기로 국내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이 애초의 예상을 뛰어넘는 규모로 이루어질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곽정수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14일 제 1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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