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
|
삼성그룹의 기아 인수 의혹이 일고 있는 가운데 삼성의 기아 인수 시나리 오를 담은 괴문서가 흘러나와 파문이 일고 있다. ‘삼성 시나리오’라는 제목의 이 괴문서는 삼성 회장비서실의 지승림 전무와 삼성차의 홍종만 사장이 지난 7월6일 당시 미국에 머물러 있던 이건희 회장을 만나 보고한 내용을 정리한 형식으로 돼 있다.
시나리오는 모두 4단계로 짜여 있다. 1단계는 기아그룹의 자금난을 퍼뜨 리고 대출금을 회수해 부실화를 유도함으로써 부도유예협약의 적용을 받 도록 한다는 것이다. 5월까지 아시아자동차에 대한 자금난 소문을 유포하 고, 삼성생명이 기아 대출금을 회수한다는 구체적인 실천방안까지 나와 있다. 실제 기아에 대한 제2금융권의 자금회수가 본격 시작된 것은 지난 4월이다. 4∼5월 두달간 제2금융권의 요구로 상환한 돈만 5천억원에 이른 다. 2단계는 부도유예협약 적용기간 중 기아 경영진의 퇴진 여론을 조성 해 보유주식 포기각서를 받고, 구조조정 필요성을 강조해 제3자 인수가 불가피하다는 여론을 확산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채권단이 김선홍 회 장의 퇴진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있는 것과 맥을 같이해 정부-채권단 -삼성의 ‘3자연대’ 의혹을 부채질하고 있다. 3단계는 기산 인수. 기산 은 막대한 부채와 적자로 기아특수강, 아시아자동차와 함께 기아의 3대 불효자로 눈총을 받고 있지만 임직원 보유분까지 합하면 기아자동차 주식 을 9.87%나 갖고 있어 기아 인수를 꿈꾸고 있는 세력이 가장 먼저 눈독을 들일 만한 대상이다. 마지막 4단계는 기아자동차의 해외 파트너로 9.4%( 마쓰다까지 포함하면 16.91%)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포드의 주식을 시가 의 3배 안에서 사들인다는 것이다. 지난 7월16일 이건희 회장이 포드 회 장을 직접 만난 것으로 돼 있다.
삼성은 이 시나리오에 대해 음해세력의 공작이라며 전면 부인하고 있다. 오히려 괴문서의 출처로 현대그룹을 지목하고 있다. 삼성의 도덕성에 상 처를 입히고 여론을 악화시키려는 의도에서 삼성 시나리오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건에는 출처를 알 수 있는 단서가 전혀 없다. 출처 공 방도 관심거리지만 더욱 흥미로운 것은 최근 돌아가는 상황이 시나리오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는 점이다. 재계에서는 시나리오 2단계가 김선홍 회 장의 퇴진을 선결과제로 꼽고 있다는 점에서 기아와 김 회장이 계속 즉각 퇴진 불가 입장을 고수할 경우 곧 김 회장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 가해 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김 회장의 목을 노릴 비수로 가장 유력 하게 꼽히고 있는 것은 그의 ‘개인 비리’. 벌써 정부 관계자들은 “김 회장이 하청업체로부터 돈을 챙겼다는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는 말을 흘 리고 있다. 김 회장의 개인 비리 소문은 설비 도입 등 업무 관련에서부터 사생활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14일 제 17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