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명문대 보증수표 부도위기

(사진/특수목적고 학부모들이 교육부의 비교내신제 폐지에 항의해 뙤약볕 아래 모였다. 본래 설립목적에 맞게 특수목적고 선발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영재를 조기 육성한다는 ‘특수한 목적’ 아래 설립된 특수목적고가 위기 를 맞고 있다. 외국어고와 과학고 등 특목고 학생들이 일반계 고교로의 집단 전학 결의를 굽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태는 전국의 비평준 화 지역 선발고교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조변석개 대입제도가 불질러

‘명문대 진학의 보증수표’로 불렸던 특목고의 이런 사태의 근본적 원인 은 대학입시라는 우리나라 교육의 ‘원죄’ 때문이다. 그러나 좀더 직접 적인 원인은 조변석개와 같은 대입제도와 함께 특목고가 설립취지에 맞지 않게 ‘입시목적고’로 전락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대원외고·서울외고 등 전국외국어고 학부모연합회는 “비교내신제 폐지 로 내신성적 산출에 불이익을 당하게 됐다”며 내신제도의 개선을 요구하 고 있다. 이들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8월중에 일반계 고교로 의 전학원을 집단 제출하기로 했다. 외국어고의 경우 이미 학기 초부터 재학생들의 자퇴 및 전학을 통한 이탈이 계속돼왔다. 서울과학고 등 전국 15개 과학고 2학년 학부모들도 내신성적 산출방식과 관련한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춘천고 안양고 부천고 등 비평준화지역 선발고교 학부 모연합회쪽도 일반계 고교로의 전학원을 집단 제출키로 한 상태이다.

특목고와 선발고교 학부모들의 주장은 “교육부의 행정편의적 발상으로 유예기간없이 대입제도를 변경하는 바람에 선발고교 학생들이 입시에서 불이익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학교내신과 수능시험 석차 백분 율에 따른 비교내신 가운데 한가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내신제도를 개선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비교내신제란 과학고 외국어고 등 특수목 적고 학생의 경우 자신들끼리 내신성적을 매기면 불이익이 있기 때문에 수능점수가 같은 일반고 학생이 전국석차 몇 %에 해당하는지를 비교해 동 일한 내신등급을 부여하는 것이다. 현재 외국어고와 과학고 3학년 학생들 은 동일계열로 대학을 진학할 경우 수능점수에 따른 비교내신제를 인정받 을 수 있지만 현재 2학년 학생부터는 모든 선발 방식이 대학자율에 맡겨 져 있다.

여기에 98학년도부터 국공립대의 학생생활부 반영률이 자율화되고 주요대 학들의 학생부 반영률이 높아질 것으로 보여 내신성적이 주요변수로 작용 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국공립대의 대학별 본고사가 폐지되면서 내신산 정의 불리함을 본고사로 만회할 수 있는 기회마저도 박탈당했다는 생각도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런 일련의 사태는 결국 특목고가 입시목적고로 변질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특목고는 교육의 수월성 추구와 영재 육성이라는 목적 아래 설립돼 일반고교의 학생배정에 앞서 자체 시험을 통해 우수학생을 골라 선발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특목고 학생들은 서울대 등 입시에서 돌풍을 일으켜 왔으며 명문대학 진학의 보증수표로 불리기까지 했다. 서울 ㄷ외고와 ㅎ 외국어고의 경우 재수생을 제외한 97학년도 서울대 진학자만 각각 1백20 명과 76명에 달할 정도로 입시성적이 좋았다. 그러나 이들을 포함해 서울 지역 6개 외국어고 재학생들의 50% 이상이 외국어와 관계없는 비동일계 학과로 진학했다. 비교내신제 적용을 받을 수 있는 동일계 진학을 마다하 고 타계열로 진학하는 학생들이 많은 것은 결국 특목고에 진학하는 상당 수가 외국어나 과학에 뜻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명문대 진학에 유리하다고 판단해 입학했기 때문이다. 결국 특정분야의 영재를 육성한다는 특목고의 취지는 사라지고 일류대 진학을 위한 목적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부인할 수 없다.

교육부 전학원 받아주겠다

교육부도 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교육부는 비평준화 고교나 특목고 에 입학한 학생들은 이미 자신들이 적용받게 될 입시제도를 알고 선택한 것이므로, 뒤늦게 우월한 학력을 내세워 특별대우를 요구하는 것은 이치 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내신제도의 불이익을 본고사로 만회하려 했 는데 본고사가 폐지되는 바람에 손해를 입게 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본 고사 폐지의 유불리를 유독 이들만 입게 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도 지난 7월16일 서울시내 외국어고 학부모와 비평준화 고교생 학부모들이 각각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교육부의 손을 들어줬다. 헌재는 절대평가에 의한 종합생활기록부(현 학생부) 시행을 오 는 2000학년도 이후로 미루고 그 이전까지는 상대평가를 적용해 고교내신 을 산정토록 한 교육부의 조처는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또 교육부가 대학별 본고사를 일방적으로 폐지해 불이익을 받았다며 비평준 화고교 학부모들이 낸 헌법소원 사건도 “정당한 공권력 행사에 대한 것 으로 심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각하했다.

교육부는 이들 선발고 학생들이 일반계 고교로의 전학원을 집단 제출할 경우 이들의 전학을 받아들인다는 방침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생들이 전학을 희망한다면 전학을 시켜줘야 한다는 것이 교육부의 방침”이라며 “주변 학교의 학생정원 등을 고려해 전학 절차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 혔다.

학부모들은 그러나 “교육부가 97학년도부터 내신성적 반영비율, 사립대 의 본고사 실시여부, 고교간 학력격차 인정여부 등 학생선발방법을 각 대 학 자율에 맡겼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학부모들 은 또 “선발고교생의 일반계 고교의 전학원도 각 일선 교육청에서 받아 주지 않아 전학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줄다리기가 계속되면서 일선 대학들도 교육부의 내신성적 반영비 율 확대 방침과 고교간 학력격차에 대한 객관적 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학 생선발방법을 놓고 고심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목고와 비평준화 고교 등 일선 고교에서도 고충을 겪고 있다. 이미 학기초부터 많은 학생들이 자퇴 또는 전학으로 학교를 이탈한 일부 외국어고교는 학생들의 전학을 막기 위해 기말고사 과목 가운데 국어 영어 수학 등 중요과목 시험을 2학년의 전학 시한인 8월 말을 넘긴 여름방학 이후로 연기하는 등 학생들의 전학 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특수목적고 선발방식부터 바꿔야

전문가들은 결국 특목고의 위기를 해소하려면 특목고 선발방식부터 바꿔 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의 선발방식은 고입선발고사와 중학교 내신성적 을 토대로 하기 때문에 특정분야의 소질보다는 전과목의 성적이 고루 뛰 어난 최상위 학생들만 입학할 수 있도록 돼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에 따 라 98학년도 서울시내 특수목적고 입시에는 외국어고의 경우 영어듣기 평 가등을 도입하고 외국어 우수자 특별전형 등을 실시하며 과학고는 학교장 추천제를 통한 특별전형과 경시대회 가산점 등을 도입하기로 했다. 전문 가들은 또 “특목고의 입시학원화를 예방하려면 선발방식의 개선과 함께 이들 학교에 대한 엄격한 학사관리를 병행해 특수분야의 영재 육성이라는 설립의 취지를 살려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지창은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