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초점

병역의혹 풀수록 꼬인다

(사진/이회창 후보의 가족 사진. 뒷줄 맨 왼쪽이 큰 아들 정연씨. 맨 오른쪽이 둘째 수연씨다.)

신한국당 이회창 대표의 아들 정연(35·대외경제연구원 근무)씨와 수연(3 2·유학준비중)씨의 병역면제를 둘러싼 의혹과 정치권의 논란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 등 두 야당은 ‘두 아들이 병역의무를 기 피하기 위해 고의로 체중을 뺐을 가능성이 크다’며 연일 의혹을 제기하 고 있고 각종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70%가 여기에 공감을 표시하는 것으 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모략과 중상의 정치가 반드시 없어지도록 뿌리 를 뽑을 것을 다짐한다”고 맞받아치던 이 대표가 8월3일 '유감 표명'으 로 돌아서긴 했지만 이로 인한 시비는 투표일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입영 당시에만 체중감소 가능한가?

과연 누구의 주장이 진실일까. 현재 병무청에 보관중인 병적기록표를 토 대로 본다면 이 대표의 두 아들이 체중미달로 병역면제 판정을 받은 데 따른 하자는 아무 것도 없다.

맏아들 정연씨는 91년 2월 입대해 신체검사를 받을 때 키 179cm에 몸무게 45kg(면제기준 49kg)으로 면제를 받았고, 둘째 아들 수연씨는 89년 7월 입대 때 키 165cm에 몸무게 41kg(면제기준 42kg)으로 귀향조처된 뒤 90년 1월 방위병으로 입대했으나 다시 체중미달로 면제를 받은 것으로 지난달 31일 병무청이 공개한 병적기록표에 나타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군에 입대했을 때 두 사람의 몸무게가 1차 징병검사 때와 크게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정연씨의 경우 83년 징병검사 때 179cm의 키 에 몸무게가 55kg이었으며 수연씨도 85년 신체검사 때 키 165cm에 몸무게 51kg으로 현역입영대상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입영한 뒤 받은 신체검사에서 공교롭게도 1차신검 때의 몸무게보다 정확히 10kg이 줄어들어 병역을 면제 받은 것으로 드러 났다. 국민회의가 두 사람의 병역면제 과정에 의혹이 있다며 문제를 제기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두 사람의 몸무게가 급격히 준 이유는 세 가지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 체중이 저절로 빠졌거나 의도적으로 체중을 뺐거나 아니면 신체검사 때 병적기록표에 실제체중보다 낮게 적었을 가능성이다.

어느 항목이 진실이냐에 따라 이 사건은 ‘모략과 중상의 정치’를 일삼 는 야당의 ‘정치공세’일 수도 있고 여당 대통령 후보의 사퇴까지 거론 될 수 있는 충격적인 ‘조작사건’일 수도 있다. 특히 이 대표의 두 아들 이 고의로 체중을 뺐거나 면제판정을 받는 데 당시 대법관이었던 아버지 의 지위를 이용한 사실이 드러나면 그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을 것으로 보 인다.

우선 이 대표쪽이 주장하는 ‘자연감량설’을 살펴보자. 이 대표쪽은 “ 정연씨의 경우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매우 야위었고 수연씨는 당시 신경성 위염으로 고생해 몸무게가 줄어들었 다”고 해명했다.

정연씨도 최근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여지껏 몸무게가 55kg을 넘은 적이 없었다”며 “87년 대학원에 들어갔을 때 50∼51kg으로 준 적도 있 다”고 주장했다. 또 90년 12월 유학생 병역연기 만기 연령이 돼서 귀국 했을 때는 47kg으로 몸무게가 줄어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필드시험과 논문을 준비하느라 4시간 이상 잔 적이 없다”고 몸무게가 급감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자신이 어릴 때부터 지나치게 말라 별명이 멸치, 양초, 뼈다귀 등이었다고도 말했다.


키 173cm 최고 야윈체중은 53kg

그러나 정연씨의 해명에는 납득이 가지 않는 점이 있다. 정연씨는 자신의 몸무게가 55kg을 넘긴 적이 없었다고 밝혔으나 그가 근무하는 대외경제정 책연구소가 올해 6월 실시한 정기신체검사 기록에는 그의 몸무게가 58kg 으로 나타나 53kg 정도라는 그의 주장과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밝혀 졌다. 그는 이와 관련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옷을 입고 몸무게를 쟀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직장 신체검사의 경우 옷을 입고 재 더라도 옷 무게를 뺀 체중을 적는 게 보통이고 특히 날씨가 더운 6월에 더구나 신체검사를 위해 간편한 복장을 했을 그의 옷무게가 4∼5kg이나 나갔을지는 의문이다. 국민회의 한 인사는 “에스키모 복장을 하고 다닌 다면 모를까 여름옷 무게가 1kg이 넘는 사람이 있겠는가”라고 의문을 제 기했다.

이에 대해 국민회의쪽은 두 사람의 체중이 입대 때 갑자기 10kg이나 줄어 든 것은 의도적으로 몸무게를 빼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성재 의원은 지난 7월27일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의학적으로 신장과 체중을 비교해 최악의 상태를 표시하는 ‘최고 야윈체중’이라는 지표가 있는데 키 179cm인 정연씨의 최고 야윈체중은 53kg으로 심각한 질 병을 앓고 있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과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주 장했다. 이런 이유로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는 “179cm의 키에 체중이 45k g일 경우 직립보행이 불가능하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나돌고 있다.

의사들도 이런 급격한 감량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의료계 관계자들은 “키가 179cm인 남자가 특별한 병력도 없이 몸무게가 45kg밖에 안된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평소 체중에서 10kg이 줄어들기 위해서는 특별한 질병에 걸리거나 강도높은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고개를 갸웃 거리고 있다. 정연씨의 경우 특별한 병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심 한 위염을 앓았다는 수연씨의 경우도 지금까지 질병을 치료했던 기록을 제출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고의적인 살빼기 의혹과 함께 국민회의쪽에서는 징병검사 때 담당 자가 실제 체중보다 낮은 수치를 병적기록부에 적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 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병무청이 천용택 이성재(국민회의) 이재선(자민련) 의원에게 제시한 정연씨와 수연씨의 병적기록부는 의혹투성이다. 우선 수연씨의 병적기록 부는 가족관계란에 백부와 백모인 이회정씨와 김경희씨를 부모로 적었는 데, 부와 모 앞에 ‘백’자를 가필한 흔적이 있다. 이에 대해 신용욱 병 무청 차장은 “당시에는 병적기록표를 동사무소 직원이 호적등본을 보고 작성했다”며 “업무상의 착오로 보인다”고 밝혔다. 신 차장은 이어 가 필해 수정한 부분에 대해서 “징병검사를 받을 때 본인의 가족사항을 확 인하는 과정에서 이를 알고 바로잡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그 러나 동사무소 직원이 호적등본을 잘못 보고 아버지와 큰아버지를 혼동해 서류를 작성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공개한 병적기록표가 의혹 증폭

(사진/지난 8월3일 이회창 후보는 국민들 앞에 머리를 숙였지만 `잘못 없다는 사과'를 국민들이 받아들여 줄지는 미지수다. )

병적기록부의 수정 과정도 의문이다. 수연씨 병적기록부의 가족사항은 서 로 다른 필체에 의해 두 차례에 걸쳐 수정됐다. 첫번째 수정은 백부와 백 모를 부모로 착각해 적은 것과 같은 필체로 가족사항에 형 정연씨의 이름 을 올려놓은 것이고 두번째 수정은 이와는 다른 필체로 이회창 대표를 아 버지로 가필한 것이다. 가족관계를 수정하면서도 어머니 한인옥씨의 이름 은 빠져 있다. 이에 대해 병무청 관계자들은 “가족사항은 병역판정과 아 무런 관계가 없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지만 이처럼 틀리는 경우는 드물다 ”며 “우리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두 사람의 병적기록부에 부모의 직업이 공무원일 경우 보통 공 직자라고 적는 것과 달리 대법원 판사라고 구체적인 직함을 적은 이유도 이상하다. 병무청 관계자들은 부모의 직업이 공무원일 경우 직책은 적지 않고 단지 공무원이라고만 표시한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 신 병무청 차장 도 “직책은 적지 않는 게 원칙”이라고 이를 확인했으나 “직책이 확인 되면 적는 경우도 가끔 있다”고 말했다.

이로 미뤄 정연씨와 수연씨는 신체검사를 받는 과정에 아버지인 이 대표 의 신분을 말했고 담당자들은 이를 병적기록부에 적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 이에 대해 야당쪽에서는 대법원 판사의 지위가 면제판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정연씨 에게 5급판정을 내린 백일서(당시 육군대위)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야 당 일부에서 제기하는 병적기록부 조작가능성을 강하게 부인했다.

이와 함께 야당은 면제판정 과정에서 병역법과 국방부령을 어긴 의혹이 있다며 정부의 해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천용택 의원은 “정연씨의 경우 91년 당시의 국방부령에 따르면 무종판정을 내려 체중변화를 관찰하도록 돼 있으나 이를 어기고 곧바로 면제판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또 수연 씨에 대해서도 “85년 첫 신체검사 당시에 비해 10kg나 줄어든 것은 의혹 이 큰데도 체중관찰 절차없이 면제 판정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 다.

끝으로 야당의 문제제기에 대한 국방부 장관의 거짓말도 의혹을 증가시키 는 데 일조했다. 김동진 장관은 국회 답변에서 이 대표 아들의 병역기록 을 제출해달라는 야당 의원의 요구에 대해 기록이 파기돼 없다고 답변했 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고건 총리가 “병적기록표를 보관중”이라고 말 해 김 장관의 답변은 곧 허위임이 드러났고 국방부는 실무자의 착오로 인 한 것이라고 둘러댔다. 그러나 천용택 의원이 이 대표의 아들이 체중미달 로 병역면제 판정을 받은 사실을 알아내 3개월 전부터 국방부쪽에 병역자 료 제출을 요구한 점으로 미뤄 실무자가 그렇게 오랜 기간 국회의원의 집 요한 요구를 받으면서 자료가 있는지 없는지를 몰랐다는 점은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다는 게 야당의 시각이다.


대통령후보에 대한 최초의 검증작업

어쨌든 아직은 이 대표의 두 아들이 ‘고의로’ 또는 ‘외부 작용’에 의 해서 병역을 면제받았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그러한 증거는 앞으로 도 나오지 않거나, 어쩌면 아예 없을 가능성도 물론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대표의 아들 병역문제 논란은 특정후보에 대한 ‘마녀사냥’식 흠집내기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 후보에 대한 실질적이고 구체 적인 검증이 처음으로 시작됐다는 점에서 정치권에 던지는 메시지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권복기 기자/한겨레 정치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14일 제 170호


커버스토리 포커스 문화시대 특집 지난호 전체보기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