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서울! 방독면을 준비하라

(사진/연무현상으로 잔뜩 찌푸린 서울의 하늘. 6,7월 들어 15회의 오존경보가 내릴 정도로 서울의 대기오염은 심각하다.)

서울의 대기가 이상 징후를 보이고 있다. 지난 7월28일부터 5일째 공해물 질을 포함한 먼지가 다량으로 떠다니는 연무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가시 거리 1.5km 이하. 한남대교에서도 남산이 보이지 않는다. 구름 한점 없는 맑은 날씨지만 세상은 마치 안개에 휩싸인 듯 온통 희부옇다. 7월30일 오 후 2시. 한차례 소나기가 퍼부은 뒤 잠시 맑아졌던 서울 하늘은 채 한 시 간을 못버티고 다시 을씨년스런 모습으로 돌아왔다.

환경부 “역전층이 일으킨 일시적 현상”

기상청은 “서울 상공에 고기압이 장기간 머물러 대기가 안정되면서 공기 중의 미세먼지가 수증기 입자와 결합해 연무현상을 일으키고 있다”며 “ 비가 예상되는 다음달 4일까지는 이런 현상이 계속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 하루가 멀다 하고 오존주의보가 발령되고 있다. 오존경보제가 도입된 지난 95년 두차례, 지난해 7월말까지 5차례에 불과했던 오존주의보는 올 들어 6월14일 첫 발령 뒤 불과 40여일 만에 그 3배인 15차례나 잇따랐다. 일부에서는 ‘오존파동’을 우려하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여기에 에 어컨이나 콘크리트 아스팔트가 내뿜는 복사열에 따른 온실효과로 밤만 되 면 열대야를 동반한 찜통더위로 시민들은 괴롭다.

도대체 서울의 대기는 어떤 상황인가. 과연 제대로 숨쉬고 살 만한가.

환경부 대기정책과의 한 관계자는 현재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서울 상공 2km에 역전층이 생겨 대기가 정체돼 있고 여기에 연무현상까지 가세 해서 발생한 일시적 현상이다. 오히려 대기 오염도는 더욱 낮아졌다.” 대기 온도는 고도가 1백m 높아질 때마다 0.56℃의 비율로 낮아지는 게 정 상이지만 요즘 밤사이 냉각된 지표면의 공기가 태양열을 간직한 상층부 공기보다 낮아져 기온역전 현상이 발생했다.그 결과 지표면의 오염된 공 기와 상층부의 맑은 공기가 순환되지 않아 대기오염물질이 정체돼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기상청은 “예년보다 올 7월 서울의 기온이 1.4도 가량 높았는데 이는 15년 만에 발생한 최대의 엘니뇨(해수온도상승)의 영향도 있다”고 덧붙인다. 페루 앞바다에서 하와이 남쪽까지의 해수면 온도가 올라가면서 상승기류가 발생했고 이 기류의 영향으로 불볕더위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 이다.

그러나 환경전문가들은 이런 조건으로 현 상황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 고 반박한다. 환경운동연합 이태일 환경조사팀장은 “기온 역전 현상 등 기상의 일시적 변화는 과거에도 있었던 것으로 새로운 변수는 아니다. 그 런데 과거와 달리 역전현상이 곧바로 오존주의보 발령으로 이어지고 연무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이미 대기중에 오염을 유발하는 물질들이 포화상태 를 이루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주장한다. 대기오염 수치가 바람 햇빛 습 도 등 기상조건에 따라 변화폭이 크기는 하지만 현재 서울의 대기는 일사 량만 많고(30℃ 이상) 바람이 적어(2m/sec 이하) 공기가 정체되는 기상조 건만 갖춰지면 언제든지 오존주의보가 발령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

미세먼지 오염 기준치 초과도 96회

이런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먼저 각종 수치들이 서울의 대기오염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지 난 90년 서울의 오존오염도는 연평균 0.009ppm이었다. 이것이 96년엔 0.0 16ppm으로 90년보다 2배 가까이 높아졌다. 월평균 수치도 계속 증가해 지 난해 6월 평균 0.021ppm에서 올해 6월은 0.024ppm으로 나타났다.

자동차 배기가스 등 화석연료의 연소 과정에서 발생해 폐 깊숙이 침투, 각종 심폐질환을 일으키는 미세먼지(지름 10㎛ 이하)의 오염도 심각하기 는 마찬가지. 지난 96년 서울시의 미세먼지 평균농도는 72㎍/㎥로 나타나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49㎍이나 도쿄의 57㎍보다 훨씬 높았다. 하루평균 환경기준치(1㎥당 150㎍)를 넘어선 경우도 무려 96회에 이르렀다. 이밖에 이산화질소 황산화물 등도 계속적인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오염 심화에 따라 올해 서울의 대기상태도 예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먼저 해가 뜨면 곧 사라지던 일시적인 기온 역전현상과는 달리 하 루종일 역전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역전현상과 함께 공기중 에 정체된 오염물질의 미세한 알갱이들이 계속적으로 하강하면서 햇살이 비쳐도 사라지지 않는 이른바 희뿌연 산성안개가 수반되고 있다.

그리고 심각한 오염지표로 주목받는 오존주의보의 경우도 단순히 발령 회 수의 증가에 머무르지 않고 그 위험 시간대가 계속 길어지고 있다. 지난 해 모두 10차례 있은 오존주의보는 보통 오후 2∼4시 사이에 발령돼 3∼6 시에 해제되는 게 일반적인 특징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오후 1∼7시에 발 령되고 해제 시간도 2∼9시로 늘어났다. 지난 6월15일 서울 강서,양천,영 등포 등 남서지역에서는 오후 5시에 발령돼 저녁 9시까지 무려 4시간 동 안 오존주의보가 계속되기도 했다. 특히 오존농도가 높아지려면 강한 햇 빛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해진 뒤엔 오존농도가 낮아지는 게 일반적인데 도 올해는 오후 7시 이후까지 오존주의보가 계속된 경우도 모두 5차례나 됐다. 환경부는 “해가 진 뒤에도 고온,무풍현상이 계속돼 오존이 정체됐 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지난해는 이런 일이 단 한차례도 없었다.

이런 서울의 대기오염 문제는 각종 인명 피해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을 정 도로 심각해졌다. 물론 현재의 대기오염이 시민 건강에 어느 정도 직접적 인 영향을 미치는지 구체적인 연구가 이루어진 적은 없다. 대기오염은 순 식간에 대규모 인명피해를 가져올 수 있지만 수질오염처럼 피해상태가 즉 시 드러나지 않아 그 피해를 단기간에 예측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피 해의 단면을 살펴 볼 수 있는 몇가지 지표가 있다.

만성호흡기질환 발생 서울이 청주의 3.6배

(사진/대기오염이 심각해지면서 등장한 산소 캔. 대기오염을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심각한 인명피해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전문가들의 우려가 높다. )

먼저 국립환경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91년의 경우 만성호흡기질환 가운데 특히 대기오염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기관지 천식 환자의 병원외래 진찰 률이 서울 구로구의 경우 인구 1만명당 76명으로 청주시의 21명보다 3.6 배나 많았다. 또 만성호흡기질환으로 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10세 미 만의 어린이 환자수는 1만명당 구로구가 4백53명으로 청주의 5.8배(78명) 에 달했다. 수원대 환경공학과 장영기 교수는 “오염물질의 배출량은 증 가하고 도시는 확장되며 이상 기후가 자주 나타나는 등 위험요인이 계속 늘고 있는 추세”라며 “최악의 기상 조건과 맞물릴 경우 큰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렇다면 서울 하늘을 이런 위험천만한 오염 상태로 몰아넣은 원인은 무 엇인가.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자동차를 그 주범으로 지목한다. 사단법인 녹색교통운동본부 민만기 기획실장은 “공장매연이나 난방연료 등이 주 오염원이던 과거와는 달리 서울시 전체 오염배출 물질 대부분이 자동차에 서 나온다”며 “이를 해결하지 않고는 대기상태가 나아지리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환경부의 지난 4월 조사에 따르더라도 이런 사실은 확인된다. 이 조사에 따르면 지난 96년 한햇동안 서울지역에서 자동차가 배출한 오염물질 총량 은 모두 31만4천t으로 서울지역 전체 대기오염물질의 81%를 차지한 것으 로 나타났다. 자동차가 1백만대였던 85년 서울시 전체 대기오염물질 가운 데 27.4%에 불과했던 자동차 배출가스는 90년 49%, 94년 77%로 계속 상승 해 결국 서울시 대기오염의 최대 원인이 된 것이다. 더욱이 햇볕과 반응 해 오존을 발생시키는 원인물질인 질소산화물과 탄화수소의 거의 대부분 이 자동차 배기가스에서 발생한다.

대기오염 주범은 자동차

결국 끝없이 늘어나는 자동차 배기가스에 대한 규제 없는 대기오염 해결 노력은 공염불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환경단체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경우처럼 오존농도 등 도심환경 변화와 연동해 자동 차 운행을 전면 중단시키는 등의 규정을 하루빨리 법제화 할 것을 호소하 고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차량의 총량을 규제하는 등 오염원을 줄일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동차 1천만대 시대를 구가하는 우리가 해결하기에는 버거운 문제인지 모르나 그것은 이미 생사의 문제로 떠올랐다.

신승근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