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말문이 막힌다, 에바다!

(사진/농성학생과 교사, 학부모들이 장기농성을 벌이고 있는 평택시 `해아래집'.)

지난 7월9일 오후 5시 경기도 평택시 진위천에서 회사원 조두성(36)씨는 동료들과 함께 그물로 고기를 잡고 있었다. 오랜만에 나선 천렵이였다. 장마비가 그치고 오랜만에 맑게 갠 여름하늘을 즐기던 그들은 물 위에 떠 있는 이상한 물체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마네킹인 줄 알았다. 그것이 아 이의 시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시체 주변에 떠 있는 기름과 머리카 락을 본 뒤였다.

‘실종신고’도 내지 않은 농아원

발견된 여자아이는 근처 에바다농아원생인 최미선(9)양이었다. 최양은 발 견 당시 알몸이었고 몸이 많이 부풀어 있고 부패 정도도 심했다. 조씨는 하천 주변을 돌아다녔지만 옷을 찾지는 못했다. 조씨는 경찰 진술에서 “ 발견 당시 최양의 목과 가슴 주변에 피멍자국이 있었다”고 말했다.

미선이는 청각장애, 언어장애에 자폐증상까지 겹친 중복장애아였다. 농아 원쪽에 따르면, 미선이는 고아였다. 통닭과 비트가 강한 음악을 유난히 좋아했던 아이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언어장애로 생전에 자신의 의사 를 표현하지 못했던 미선이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수사를 담당한 평택경찰서는 이 사건을 단순 익사사고로 추정하고 있다. 아이가 농아원 밖으로 자주 나돌아다녔고, 또 옷을 벗고 돌아다닌 적이 있다는 게 이같은 판단의 근거다. 경찰은 이와 관련해 농아원 밖에서 미 선이를 본 택시기가와 알몸인 상태의 미선이를 발견한 적이 있는 가게 주 인의 진술과 함께 농아원 총무의 진술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농아원 선생님과 원생들은 이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말못하는 아 이를 누군가가 추행한 뒤 강물에 버렸다는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의 경찰의 사인규명 의지는 빈약하다. 예컨대 농아원쪽에서 확보하고 있는 사망 직전의 목격자 진술은 아예 무시했다. 에바다 초등학 교 5학년생인 김선영양은 미선이가 숨진 채 발견되기 3일 전인 7월6일 근 처 봉남리에서 미선이를 봤다고 증언하고 있다. 당시 김양은 미선이에게 같이 가자고 했지만 미선이는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한다. 경찰은 그러나 미선이가 실종되고 난 이후의 행적 등에 대해 거의 조사하지 않았으며 이 사건이 보도되고 나서야 실종 이후 목격자의 진술을 받는 등 부산을 떨었 을 뿐이다. 그리고 예단, 즉 단순 익사라는 자신의 판단을 방증하는 자료 만 수집했을 뿐이다.

그래 미선이의 주검은 부검에 맡겨졌다. 생전이나 사후나 아무런 말도 없 었던 미선이 대신 그 '주검이 전하는 말'을 들어보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경찰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미선이의 보호 관리의무가 있는 에바 다농아원의 직무유기는 그보다 더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다. 농아 원쪽은 미선이가 며칠째 돌아오지 않았지만 경찰에 실종자 발생신고를 하 지 않았다. 근처 파출소에 구두로 전했을 뿐이다. 사인에 대한 숱한 의혹 이 제기됨에도 농아원은 사인규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오히 려 재단비리와 관련해 농성하고 있는 교사 학부모 원생들쪽에 실종의 책 임을 미루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변태’미군에 3명이나 당해

(사진/에바다농아원 건물 내부. 국고보조금에 포함된 시설수리비를 유용한 결과 시설은 엉망이다. )

에바다농아원의 이런 모습은 미선이 사건 이전에도 여러번 있었다. 올해 초에는 초등학교 3학년 최아무개군이 실종되어 반년이 지나도록 생사 여 부조차 모르다가 최근에야 서울의 한 장애아시설에 있다는 소식을 들을 정도로 원생들에 대해 무심했다. 지난해 6월에는 평택 공군기지에 근무하 는 주한미군 윌리엄스 약 에스(33·미 제7공군 소속 일병)가 농아원생을 미군기지로 데리고 가 성폭행을 당하도록 결과적으로 방치하기도 했다. 피해 원생은 3명이나 됐다. 농아원쪽은 아이들의 출입이나 외박 등을 전 혀 관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 사건을 문제화하려던 선생님들과 원생 들의 노력을 가로막기도 했다. 93년 9월에는 보호자없이 농아원을 빠져나 와 철로를 걷던 농아원생 3명이 달리는 새마을열차에 치여 숨지기도 했다 .

에바다농아원에서 잇따르는 이런 사건은 친인척으로 이루어진 재단, 특히 그동안 보조금 유용 등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재단 구성원들에 의해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는 데서 비롯됐다는 여론이 높다. 에바다복지회는 지난 1982년 최성창(전 재단이사장)씨에 의해 청각장애자들을 위한 사회 복지법인으로 창립됐다. 이후 복지원은 농아학교, 농아원(기숙사), 사회 복지관으로 나뉘어 운영되어 왔다.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 6차례 정도 교 사 학부모 원생들에 의해 보조금 횡령, 원생 인권유린 등을 고발하는 농 성이 있어왔으며 지난해 11월27일부터는 결국 비리재단 퇴진 요구하는 장 기농성으로 발전했다. 이 농성은 지금까지 계속돼 8월1일로 2백50일째가 되고있다. 농성에는 교사 21명 가운데 11명이 합류해 있다. 농성학생들과 교사들은 농아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빈집에서 장기농성을 벌이고 있다. 지난 7월26일에는 평택시 사회운동단체와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모 인 가운데 현판식을 갖고 ‘해아래집’이라는 이름도 얻었다.

장애아들 시켜 여교사 구타

학생들의 농성직후 이뤄진 검찰의 수사와 언론보도로 드러난 최 이사장을 중심으로 한 최씨 일가의 비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다양하다. 에바다 복지회는 같은 시설에서 농아학교와 농아원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어 감독 관청이 경기도교육청과 평택시청으로 이원화되어 있는 상황을 이용해 학 교와 농아원 운영에 관한 정부지원을 이중으로 받아 가로챘다. 또 졸업생 이나 퇴사학생, 사망 학생을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방법으로 보조금 을 계속받거나, 장애아동의 주민등록증을 이중으로 만들어 정부보조금을 더 많이 타내기도 했다. 이에 따라 어떤 학생들은 이름을 두개씩이나 갖 고 있어 자기이름을 돌려달라고 애원하기까지 한다. 사망한 미선이도 주 변사람들은 모두 열두살이라고 말하지만 주민등록에는 88년도 출생으로 돼 있다. 최씨 등은 근무하지도 않은 친인척들이 근무한 것처럼 서류를 조작해 임금명목으로 정부지원금을 가로챘다. 유령직원과 실제 근무한 직 원을 합쳐 10여명이 넘는다. 이들은 모두 이사장의 형제자매이거나 그 형 제자매들과 결혼관계로 맺어진 친인척들이다. 또 기업이나 개인이 전달하 는 기부금과 후원금을 장부에 기재하지 않고 가로챘다. 재활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원생들을 재활작업장에서 근무하도록 한 뒤 그에 대한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횡령하기도 했다. 재단쪽은 또 인가도 받지 않은 채 새 학원을 시설 안에서 운영하느라 장애아의 기숙사를 불법 전용하기 도 했다.

교사들이 증언하는 파행운영의 사례 또한 심각하다. 농아원쪽은 독단적이 고 비밀스런 운영을 위해 교사들에게조차 아이들의 신상을 가르쳐주지 않 아 학생이 결석을 하거나 사고가 나도 교사가 연락처를 몰라 발을 동동 구르는 웃지 못할 일이 흔히 벌어졌다고 한다. 고향에 누나와 형이 있는 데도 10년 이상 연락처를 가르쳐주지 않다가, 이번 농성사태를 통해 누나 와 형을 만난 학생도 있다. 재단쪽은 청각장애아들을 시켜 농성에 합류한 교사들의 수업을 방해하는가 하면, 농성합류 교사들을 구타하게 했다고 한다. 사주받은 장애아들은 여교사들의 머리채를 흔드는가 하면, 풀을 쑤 어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뿌리기도 했다. 교사의 뺨까지 때리는 등 극도 의 비교육적인 모습이 벌어지고 있다. 이렇다보니 해코지를 피하기 위해 여자선생님들은 아예 치마 입을 생각조차 못한다.

원장의 ‘성추행 의혹’

재단쪽은 아이들이 교사들을 폭행하는 데 대해 “아이들이 알아서 스스로 하는 것”이라고 변명한다. 이는 30여년 동안 청각장애아들만을 다뤄온 재단쪽 인사들이 장애아들의 특성을 교묘하게 이용한 결과라는 게 교사들 의 설명이다. 어쨌든 파행이 오래 지속될수록 아이들의 심성은 망가져만 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게다가 최실자 원장(53)이 잘생긴 원 생들을 양자로 삼아 성추행을 일삼았다는 주장이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제 기되기도 해 이에 대한 규명도 남겨두고 있다.

재단 창립자 최성창씨의 여동생이며 농아원 원장 겸 학교 서무과장을 맡 았던 최씨가 현재 사기와 업무상 횡령 혐의로 1심에서 2년 실형을 선고받 고 항소중이다. 그러나 학교와 농아원에는 최씨 일가가 여전히 버티고 복 권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유령직원이었으면서 지금은 학교 서 무과장을 맡고 있는 양봉애씨는 “형제 하나가 도둑질했다고 동생도 똑같 이 그렇다고 볼 수는 없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최씨 일가의 지속적인 지배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재단쪽은 현재 양씨의 남편이자 구속된 최실 자의 남동생인 최성도를 이사장으로 내세우려 하고 있다.

2백50여일째 농성이 계속되고 있지만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그 배경에는 최씨 일가의 문제에 대해 수수방관하는 평택시청과 경기도, 그리고 보건복지부 등이 있다. 담당관청인 평택시청은 최성창씨가 도의적 책임을 지고 지난 3월 말 이사장직에서 물러났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법 인 등기부등본에는 최씨가 여전히 대표이사로 기록돼 있었다. 언제라도 대표로서 법적인 권리 행사가 가능한 셈이다. 또 최씨는 학교와 농아원에 수시로 드나들면서 시설 운영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무관청인 평택시청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 실질적인 운영은 제대로 되고 있는 상태이며 따라서 에바다복지회는 현재 정상화로 가는 마무리 단계”라며 “다만 보건복지부의 행정지시 사항인 관선이사장의 선임을 재단쪽이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 어려움이 많다”는 식으로 팔짱을 끼고 있다. 경기도 사회복지과도 “평택시에서 최선의 노 력을 기울이고 있으니 올해안으로 해결될 것”이라며 평택시에 떠넘기고 있다. 보건복지부 역시 지난 4월23일 “법인이사장에 관계공무원을 선임 하고 사태악화의 원인이 되고 있는 일부 이사에 대한 승인을 취소하라” 는 지시를 내린 뒤에는 별다른 후속조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농성학생들 “정상화 안되면 집단자살하겠다”

현행 사회복지사업법 제20조에 따르면, 주무관청은 법인의 설립허가 취소 나 임원의 취임승인을 취소할 수 있다. 또 이에 따르면 취소의 이유가 될 수 있는 사례로 “목적달성이 불가능하게 된 때”나 “다른 방법으로 감 독목적을 달성할 수 없거나 시정을 명한 후 1년이 지날 때까지 법인이 이 를 이행하지 아니한 경우”라고 규정하고 있다. 에바다복지회의 경우, 비 리를 저지른 친인척들이 있는 한 장애인시설 운영의 본래 목적을 이룰 수 없다. 또 평택시의 주장대로라면 현재 재단에 대한 감독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된 것이므로 당장에라도 법인의 설립허가나 임원의 취임승인을 취소 할 수 있는 것이다. 1년에 한번씩 정기감사를 하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수시로 지도를 할 수 있고 이사회의 모든 결정사항에 대해 승인할 수 있 는, 그런 막강한 권한을 가진 평택시청이 이렇게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것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재단과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 아니 냐는 의혹을 눈길을 보내고 있다.

현재 농성학생들 가운데는 “복지회가 정상화되지 않으면 모두가 철길에 누워 집단자살하겠다”는 섬뜩한 얘기를 하는 학생도 있다. 이들은 “그 렇게라도 해야 우리 후배들이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절규한다. 이들은 경기여상 사건을 보면서 “왜 우리들은 그렇게 싸워도 언론에 잘 안 나오고 그 아이들은 그 정도 싸우는데 크게 사회문제화되는 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병신이라서 그런 것 아니냐”는 울 먹임 앞에선 말문이 막힌다.

어른들은 진정 이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고갈 것인가. 예수가 청각장애아 의 입을 열 때 “열려라!” 라는 뜻으로 외쳤던 것이 “에바다!”라고 한 다. 누가 막힌 아이들의 입을 열게 할 것인가.

김창석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