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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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서울시가 운영하는 강원도 철원의 은혜 요양원 모습. 철망으로 둘러싸인 모습이 외부와 단절된 수용시설의 현실을 말해준다.)
올해 6월 강원도 철원의 은혜요양원에서는 원장과 운전기사 등 3명이 돈 을 훔친 요양원생 최아무개(22)씨를 때려죽인 사건이 있었다. 그것도 양 손을 전깃줄로 침대에 묶은 뒤 각목으로 온몸을 때렸다. 요양원에서는 사 실 은폐를 위해 시체를 1주일 동안 병원에 숨겼다 결국 화장해버렸다. 시 설에 수용된 장애아동은 사망진단서 한장으로 화장이 가능했던 것이다. 내부 제보가 없었다면 영원히 묻혀질 사건이었다.
형제복지원, ‘욥의 마을’로 부활하다
서울 신아원에서는 수용된 정신지체아동이 벌방에서 죽었다. 정신지체인 의 특성은 자신이 처한 부당한 상황을 이해하거나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보통 몽둥이로 맞는 것보다 벌방에 갇히는 것을 더 두려 워한다. 아이가 발견되자 신아원쪽에서는 오래 전부터 앓고 있던 치질로 인한 과다출혈이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일반 사망으로 처리됐다. 그 러나 그 죽음은 명백히 벌을 주는 과정에서 받은 충격으로 인한 사고사였 다.
수용시설의 장애아동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해도 죽음의 진짜 원인을 밝히 기란 쉽지 않다. 무연고 아동일 경우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아무도 관 심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위험뿐 아니라 각종 폭력에 대해 서도 무방비 상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수용시설의 여성장애인들은 주로 성폭행과 성추행의 위협에 일상적으로 노출돼 있다. 남성장애인 역시 구 타와 노역에 시달린다. 육체적 체벌과 고문도 일상적이다.
이런 문제들은 기본적으로 수용시설이 외부와 격리돼 존재하는 데서 비롯 한다. 많은 장애인 시설에는 창문에 철망이 쳐져 있다. 안에서는 문을 열 수 없고 밖에서 열어야 열리는 곳도 있다. 사회와의 격리감은 자칫 수용 자들에게 징역을 산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 많은 수용자들이 나가기를 바라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시설 내의 비리와 부정이 바깥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 비리를 저지른 재단 내부에서 자기들끼리 갈등이 빚어지거 나, 직원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이상 밖으로 알 려지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게다가 자기표현력과 상황판단력이 현격히 떨어지는 장애인들이 합법적인 방법을 통해 비리를 고발하기란 거의 불가 능하다.
문제는 이런 비리가 가능하도록 하는 장애인시설 사업자들의 사고방식과 정부당국의 무원칙한 정책운용에도 있다. 현재 정부의 장애인 시설 정책 은 돈만 주고 나머지 모든 문제는 전적으로 민간에 맡겨버리는 방식이다. 이러다 보니 사업운영 주체에 대한 검증장치가 없다. 또 엉뚱한 사람에게 시설사업을 맡기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예컨대 장애인 시설문 제에 대해 눈꼽만치도 관심이 없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도 다 기억하는 것 이 87년 형제복지원 사건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주범인 박인근이 현재 형제복지원의 이름을 ‘욥의마을’로 바꿔 시설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국민들은 거의 없다. 한 시설관계자는 “정부지원금을 아껴서 시설 대표에게 한달에 천만원 갖다주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고 고백했다. 돈 에만 관심이 있고 장애인 문제에 대해서는 티끌만큼의 철학도 없는 이들 마저도 시설사업에 접근할 수 있게 한 구조적인 허점부터 없애야 하는 것 이다.
시설 운영 투명성 확보가 열쇠
이를 위해서는 시설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다. 시설의 모든 관리와 운영실태를 전산화시켜 관련 감독관청이 항상 관리할 수 있는 시 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투명성이 확보되면 이중주민등록을 만들거나 허위 로 무연고자를 만들어 거짓으로 국가예산을 타는 등의 비리는 깨끗이 사 라지게 할 수 있다. 또 대신 시설에 대한 평가제도를 도입해 경쟁력 있는 시설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설 운영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지 표와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사회통합이 거의 불가능한 중증장애인들을 위한 30∼40명 규모의 소형 시설을 늘리고, 대형시설물들은 차츰 없애는 정책도 필요하 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와 함께 시설수용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 는 대신 장애인이 사회에 통합돼 살아갈 수 있는 환경과 구조를 만들어나 가는 데 정책의 주안점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김창석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14일 제 17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