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경의 맛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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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경의 맛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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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처럼 맑은 샘이 넘쳐나는 나라도 드물다. 수백미터의 산정에서 외딴 섬에 이르기까지 어디서나 투명한 생수가 솟는 것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불과 몇십년 전만 해도 도심에서 웬만큼 떨어진 시골에서는 개울물을 그 대로 받아다 먹었고, 빨래며 목욕까지 자연수를 그대로 썼다. 미개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물이 깨끗했기 때문이었다.
차(茶) 전문가들은 이처럼 좋은 물 때문에 뚜렷한 차문화가 형성되지 못 했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는 전혀 다르다. 맑은 물뿐만 아 니라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 산과 들에는 각종 열매와 약초들로 찻거리 또 한 풍성했다. 이런 자연환경 덕에 일찍부터 차 마시는 풍습이 폭넓게 뿌 리를 내려왔다. 그래서 우리는 물과 차(茶)에 관한 한 신의 은총을 듬뿍 받은 민족이라고 할 만하다.
중국의 진시황제가 불로초를 구하러 사람을 보냈다는 것도 실은 좋은 차 를 채집하러 보낸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아무튼 수로왕의 비(妃) 허씨가 봉차(封茶)로 가지고 온 차 씨앗이 기원 이 됐다는 녹차는 이후 신라시대에는 왕명으로 재배하기에 이르렀다. 고 려때는 고려청자가 차문화의 소산이라고 할 정도로 극성스럽게 차를 마신 적도 있다. 그러나 절과 궁을 중심으로 양반들이 지나치게 차를 즐긴 나 머지 공물과 조공품목으로 차 채집에 부과되는 서민들의 노역이 극심했고 , 게다가 불교적인 것이라면 무조건 금기시했던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크게 위축됐다.
하지만 녹차 이외에도 다양하게 음용되던 차는 수백 종류에 이르러 이들 중 민방에 의한 민속차는 차(茶)냐, 탕(湯)이냐의 시비는 있었지만 활발 하게 그 맥을 이어왔다.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는 인삼차·쌍화차(탕)·영 지차·어성초(탕)·삼지구엽차 등 약재와 구기자·결명자·모과·대추· 유차 같은 열매류들은 녹차를 대신해 훌륭한 민방차로 계층에 관계없이, 계절과 지역의 특성까지 살려내며 폭넓게 애용되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들어 서양의 코카콜라와 사이다 등 청량음료의 소비 가 현저하게 줄어들면서, 반대로 우리 고유의 이름이 붙은 식혜와 수정과 , 생과일주스 따위의 판매량이 크게 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턱없이 비싸 긴 하지만, 우리 국산 녹차의 소비량도 연간 국민 1인당 20g수준까지 이 르고 있다. 커피는 좀더 줄이고, 일찌감치 한두가지 정도 자신에 맞는 차 를 구해 우리 고유의 차로 건강과 운치있는 삶을 꾀해 볼 때가 된 것 같 다.
서울 청진동에 자리잡은 한방 찻집 의전방(738-2559)에서는 쌍화차와 함 께 어성초와 삼백초를 직접 위탁재배해 차를 끓여 낸다. 또 말린 잎은 찻 거리로, 끓여 놓은 차는 플라스틱 통에 담아 실비로 팔고 있다. 특히 염 증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어성초는 과음으로 인한 위염과 위장 장 애로 설사가 잦은 사람에게 그만이고, 우리 몸 곳곳에 가려져 있는 염증 과 노폐물을 말끔히 제거해 준다는 특효를 지닌 신비의 약초다.
멀리 점봉산 아래 점봉산쉼터(0365-461-1858)에서도 최근 심심치 않게 거 론되는 음양곽(淫羊藿)채취가 시작됐다고 한다. 세개의 가지 끝에 잎이 셋씩 돋아나 삼지구엽초라고도 하는데, 양과 음을 동시에 보하는 진귀한 약초다.
이것을 차로 꾸준히 마시면 남자는 정력이 왕성해지고, 여자는 분비액이 충만해진다고 한다. 분비액이 메말라 성생활에 고통을 겪는 주부들에게는 비방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나이 70세에도 아이를 출산할 수 있다는 영 약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의들도 음양곽이 산삼처럼 그 신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단순한 최음효과보다는 신체기능의 퇴화와 기억력 저하, 치매를 예방하는 탁월한 약재임에 틀림없다고 한다.
어성초는 찻집에서 직접 시음하며 찻거리를 준비할 수 있고, 음약곽은 전 화로 주문해 받을 수 있어 구입하는 데 어려움도 없다.
10년 동안 찻값 한번도 안 올려
청진동 의전방은 이미 10년째를 맞는 한방찻집이다. 이 찻집은 어성초집 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주인인 조씨 할머니(68)의 운영방법이 또한 특이하다. 10년동안 찻값을 한번도 올리지 않았다. 그래서 어성초탕은 지금도 한 잔에 천원, 쌍화차 는 천오백원, 인삼즙 천오백원, 영지탕은 천원이다.
말린 어성초잎은 2백g에 2천5백원(1주일분), 어성초탕은 2ℓ용기에 8천원 한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14일 제 170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