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97년07월31일 제 168호 한겨레21

<제5원소>

특히 영화에 관해 프랑스와 미국은 물과 기름이었다. 누벨바그류의 예술 적 영화가 주류를 형성해온 프랑스는 흥미 위주의 할리우드영화에 ‘단순 무식’(!)이라는 딱지를 붙였고, 미국영화는 흥행성적표로 반격했다. 그 럼 할리우드 스펙터클과 프랑스 예술적 심미안이 뭉쳐지면 어떤 효과가 나타날까?

칸영화제 개막작 <제5원소>는 고몽사 제작, 뤽 베송 감독, 세트 디자이너 장지로와 메지에, 의상 디자이어 고티에를 축으로 하는 프랑스 상표와 디 지털 도메인의 특수효과, 할리우드 스타 브루스 윌리스라는 미국 상표가 결합된 다국적 문화의 정점에 서 있다. 하지만 결말은 일단 할리우드의 판정승으로 난 것 같다. 볼거리는 풍성하지만 결국은 할리우드 아류작이 라는 혹평들이 쏟아지고 있는 것. 뤽 베송 감독이 16세에 구상한 시나리 오를 전혀 손질하지 않은 듯 내러티브의 일관성은 떨어지고, 기존 SF영화 를 뒤섞은 듯한 모습이 군데군데 보인다. 그렇지만 할리우드 상투성에서 는 어느 정도(!) 비껴가고 있다. <제5원소> 차별성의 선두는 화끈한 유럽 식의 감수성이다. 이것은 다분히 감독의 미래에 대한 스타일적 상상력과 프랑스의 세계적 디자이너들의 결합품에 의해 <제5원소>를 미래의 패션쇼 로 빚어냈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철학적 측면이다. ‘웬 철학? 뤽 베송이 칸영화제 인터뷰에서 그저 재미있는 영 화를 만들었다고 하지 않았던가?’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 다. 하지만 감독이 의도했든 않았든 <제5원소>는 유럽의 철학적 감수성이 무의식적으로 숨겨져 있다. 비록 23세기의 패션에, 날아다니는 자동차 등 의 스펙터클에 가려져 있더라도!

전쟁에 관한 자료를 보고 구원의 희망을 잃어버리는 요보비치의 절망은 쇼펜하우어의 페시미즘적 시각과 조우한다. 또 뤽 베송은 지구가 살아남 기 위해서는 유물론적인 4요소(불, 물, 바람, 흙)와 제5요소인 사랑이 조 화를 이뤄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것은 구원 방법상 유물론적 휴머니즘인 에릭 프롬 사상의 연장선에 있다. 역으로 추상적이고 논리적이지 않다는 반(反)프롬주의의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미래에 흑인 대통령을 설정한 것도 할리우드 정통 문법과는 떨어져 있다.

<제5원소>에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할리우드에 지레 겁먹은 뤽 베송의 자 기비하에 있다. ‘스펙터클’이란 할리우드 특허품은 얼마든지 빌릴 수 있다. 하지만 뤽 베송은 프랑스의 예술적 정신에 좀더 자신감을 가져야 했다. 문화적 자신감만이 할리우드 제국에 대항할 수 있는 트로이의 목마 다. 또 우리 영화의 대안이기도 하다.

허리우드, 명보프라자, 동아, 브로드웨이, 티파니, 녹색, 신촌아트홀, 화 양 등(이상 서울), 국도(부산), 만경관(대구), 대한(인천), 제일(광주), 중앙(대전), 코리아(제주)

김의수/ 영화평론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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