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1997년07월31일 제 168호 한겨레21

동심의 무대 활짝 열렸다

(사진/<톰 소여의 모험>)

지난 7월20일 오후 2시. 대학로 바탕골 소극장 앞은 엄마 아빠 손을 잡은 아이들로 바글거렸다. “얘들아, 공연시간중엔 밖에 못 나오니까 화장실 에 먼저 들르렴.” “아이들과 함께 입장하시는 부모님께서는 뒷자리에 따로 앉아주세요.” 폭염도 아랑곳없이 극단 사람들의 안내를 받아 줄을 서 있던 부모들은 부모들대로 정보를 교환하느라 바빴다. “예술의 전당 에서 하는 <미녀와 야수>는 영어 대사라면서요?” “8월엔 외국 어린이 전문극단 공연도 몇편 있대요.”


10여편 공연해도 지방 관객은 소외

어린이 연극 관람이 요즘 ‘좋은 부모 되기’의 한 품목으로 떠올랐다. 학기중에 시간을 내기 힘들던 아이들을 데리고 방학 특수를 맞아 각 어린 이 극단들이 마련한 공연장을 찾는 부모들 마음은 한결같다. 건희 엄마( 강북구 수유1동)는 “평소엔 학교 수업과 이어지는 피아노 학원, 태권도 장 순례로 짬을 내기 어려워 방학 때면 꼭 1∼2편씩 골라 연극을 보게 한 다”고 말했다. 텔레비전이나 비디오, 컴퓨터 게임 등에만 익숙한 아이들 에게 연극 보기에 눈뜨게 함으로써 좀더 다양한 문화 감각을 갖추게 하겠 다는 것이 요즈음 부모들의 욕심이다.

현재 공연중이거나 공연 예정인 어린이 연극은 얼추 10여편. 모두 서울과 인근 도시에서만 열려 서울에만 몰려 있는 어린이 극단과 공연장의 현실 을 읽게 해준다.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지역 어린이들도 문화 수혜에서 소 외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방증하듯, 지난 18∼20일 서울에 앞서 청주 예술의 전당에서 먼저 공연을 가진 <베짱이의 모험>은 8회 공연 모두 객 석 점유율 100%를 기록했다.

올 어린이 연극의 흐름은 크게 두 가지. △우리 옛 것을 되살려 현대적으 로 응용한 전통 놀이극 형태와 △외국 동화를 소재로 한 뮤지컬로 나눌 수 있다. 아이들과 가볼 만한 연극은?

<꼭두 꼭두>: 한국의 전통 꼭두극(인형극) 원형에서 이미지를 빌려왔다. 사물을 중심으로 한 악사들이 한켠에 자리잡고 전면에 포장막을 친 무대 에 손꼭두를 중심으로 하면서 탈놀이와 춤과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인 꼭 두각시놀음까지 흐드러지게 펼쳐놓았다. 말 안 듣는 어린이 민주를 주인 공으로 해 복제인간처럼 자기 생각과 꿈을 갖지 못한 어린 ‘꼭두’들이 스스로 자신의 생활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한 교훈적인 내용도 좋다. 86년 부터 대학로에서 어린이 연극 1번지로 터를 닦아온 바탕골예술관 ‘흐름 만들기’ 기획의 26번째 가족극장이다.

<뒷동산의 할미꽃>: 올해 열린 제6회 서울 어린이 연극상에서 우수작품상 과 극본상을 받은 노래극이다. 우리 전래 동화인 ‘할미꽃 전설’을 소재 로 잡아 전통 놀이와 소리들 속에 풀어놓았다. 자식이 원하는 건 목숨과 바꿔서라도 해 주려는 부모의 사랑이 춤과 노래로 객석에 날아든다. 자기 밖에 모르는 외동이들이 많은 요즘, 전통 사상인 효를 자연스레 깨우쳐주 는 효과가 있다. <번쩍이전> <혹부리전> <꺼꿀이전> 등 우리 전통에 바탕 을 둔 어린이극 만들기로 이름이 난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작품이다.

<베짱이의 모험> : 협력 관계에 있는 한국 예술의 전당과 호주 시드니 오 페라 하우스가 공동제작했다. 호주 렘극단의 배우들이 한국 공연을 위해 1년 전부터 한국어를 배워 우리말로 공연하며, 베짱이의 날개소리를 가야 금과 해금으로 연주하는 등 이야깃거리가 풍성하다. 소년 에릭이 마법사 의 마술로 베짱이로 변한 뒤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으로부터 시작해 “나는 베짱이다”라는 자기 정체성 확인의 대답을 내릴 때까지를 다룬 이 연극은 어린이극이 발달한 호주의 극 수준을 엿볼 수 있는 뮤지 컬이다. 요란법석을 떠는 극 형식에, 교훈적인 주제로 일관하는 우리 어 린이극들과 비교하면 한수 배울 수 있는 기회다.

<어린 왕자>: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프랑스 작가 생 텍쥐베리의 <어 린 왕자>를 인형극으로 풀었다. 흔히 볼 수 있는 줄인형이나 막대인형이 아니라 검은 옷을 입은 마이미스트(무언극 배우) 3명이 인형의 손, 발, 허리를 잡고 한몸처럼 움직여 만드는 독특한 무대다. 어린이극을 정성껏 만들어온 극단 사다리의 단원들이 프랑스에서 마임을 공부하고 돌아온 임 도완씨의 지도로 넉달의 훈련을 거쳐 창조한 ‘어린 왕자’는 겅중겅중 걷거나 날아다니는 그 모습만으로 어린이들에게 큰 상상력을 준다.

<눈물 상자>: 덴마크 우산극단은 어린이극들이 다루기엔 좀 무거운 공포 와 분노, 죽음과 슬픔, 권력과 권위 등을 대담하게 재해석해 아이들에겐 금기인 이 영역을 오히려 개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에 한국에 오는 <눈물 상자>도 장례식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죽은 이들에 대한 그리움과 이를 통해 눈물의 가치를 깨닫게 하는 1인극이다. 시적인 분위기, 풍부한 상징과 은유를 담은 <눈물 상자>는 한번쯤 아이들이 관극 체험해 볼 가치 가 있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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