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1997년07월31일 제 168호 한겨레21

권위주의와 전쟁을

임석훈/ 독일 바일슈타인 화학연구소 연구원

독일에서는 수개월 전 독일 총리와 퇴직하게 된 총리관저 수위와의 관계 가 보도됐다. 그 수위는 재직기간중 독일의 역대 총리나 외국총리들에게 까지 ‘작은 왕’이라 불릴 만큼 업무수행에서 당당한 위세를 과시했다고 한다. “그에게 먼저 인사를 하지 않는 정치가는 독일 총리가 될 수 없다 ”는 평이 나돌 정도였다. 콜 총리는 기자회견이 있기 전에 그와 악수를 나누며 한두마디씩 이야기 나누기를 빠뜨리지 않았다고 한다.


독일 총리관저 수위의 위세

그런데 얼마 전 독일 TV에 방영된 한국 정부 각료회의 장면은 이와 전적 으로 대조를 이룬다. 이 자리에 배석한 각료들이 부동자세로 앉아 있는 분위기는 마치 비석을 세워놓은 것으로 착각할 정도라는 것이 독일인의 평이었다. ‘명령수행자’의 역할만을 수행하는 전형적인 닫힌 사회의 모 습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정치가의 조그마한 태도의 차이에서도 우리 는 한국인의 지나친 권위주의를 확인하게 된다.

권위주의는 아시아에서만이 아니라 유럽에서도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유럽 역사는 권위에 대한 복종과 극복의 역사라 할 수 있으며 권위주의 탈피는 곧 민주주의 건립을 위한 필수적 요소였다. 이에 비해 한국에서는 유사 이래 현대의 군대식 권위의식에 이르기까지 여기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더욱이 지난 30여년 동안 한국인의 권위의식은 더욱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내의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절대다수는 현재의 문민정부가 5,6공의 권위적인 정치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또한 권위주의 일반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한 편으로 권위주의 청산을 갈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권위주의에 기대 어 자기 편익을 도모하려는 이중성이 현재 한국인의 일상적인 행동양식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요컨대 의식은 탈권위를 지지하면서도 행동은 친권위를 지향하는 자가당착적인 사회상이 전개되고 있다.

여기서 유럽, 특히 독일의 경우 어떻게 권위주의를 극복했는지 살펴보는 일은 우리의 진로설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서유럽 국가 가운데 특히 독일은 가장 오랫동안 권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국가였다. 프랑 스 대혁명의 이념이 유럽 전역에 전파됨에도 당시 프로이센 제국을 형성 한 독일에서는 국가에 대한 절대적 복종, 규율, 질서 등을 최고의 가치로 인정하였으며, 그뒤 민주적인 시민사회를 거의 겪지 못한 상태에서 히틀 러 독재와 두차례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독일이 이러한 정치적 권위의 사슬에서 벗어나 현재의 민주국가로 이행한 데에는 독일의 지식인, 학생 층을 중심으로 한 대대적인 시민사회운동이 결정적 몫을 했다. 이 개혁운 동은 1968년, 당시 미국과 프랑스에서도 거의 때를 같이하여 벌어진 ‘68 세대’의 항거였다.

문화, 사회면에서 뿐만이 아니라 정계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쳤 던 이 문화운동의 이념적 배경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이었 다. 그들의 관심은 자본주의적인 정치경제 체계의 이데올로기 비판에서 권위주의적인 사회의 문화비판으로 이어졌다. 당시 전후 서독은 경제복구 를 통하여 사회안정을 이루기는 했으나 나치독재 아래서 활약하던 인물들 이 아직도 구태의연하게 다수 사회요직을 맡고 있었으며 이들의 권위적인 행태는 사회 전 분야에 깊이 뿌리박혀 있었다.

학생들은 기성세대의 가치관과 윤리관을 거부하면서 무엇보다도 사회전반 에 깔려 있는 권위의식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새로운 민주문화를 건립하고 자 했다. 이 운동의 핵심은 “나이 30이 넘은 자는 신뢰하지 말라”는 대 표적 슬로건에서 잘 드러난다. 함부르크대학에서는 전통적 예복을 입고 거행된 총장 이·취임식이 학생들의 방해로 중단되어 조소거리가 되는 등 탈권위주의는 사회 전역에 퍼져갔다. 동시에 유치원을 위시한 각 교육기 관에서 탈권위 이념이 실행에 옮겨지면서 이러한 의식은 여권운동이나 언 어습관 뿐 아니라 사소한 일상행위에까지 큰 영향을 끼쳤다.


정치적 민주화와 탈권위

처음부터 강한 정치성을 띤 이 68운동은 당시 베트남전 반대와 국내 정치 문제에도 초점을 두어 나중에 적군파의 출현과 사민당의 출범으로 이어졌 다. 그러나 이 운동이 지닌 다양한 시대적 의의 가운데 기성세대의 권위 주의에 대한 항거를 우선적으로 꼽을 수 있으며, 이는 실제로 그 이후 독 일사회에 전면적인 민주화를 가능케 한 전환점이 되었다.

우리는 탈권위를 위해 이처럼 광범위한 문화운동이 선행해야 한다는 사실 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여기서 정치적 민주화와 탈권위는 상호의존적이 며 보완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참된 민주화는 권위주의의 극복 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나아가서 탈권위주의는 창의성 개발을 위한 열린 교육, 진정한 여권신장, 평등사회,기업운영의 능률화 등을 실현하기 위한 선결조건이라 할 수 있다. 현재 한국사회 앞에 놓인 ‘의식개혁’이 라는 큰 과제를 실현하는 데에서 권위주의 청산은 일차적 목표로 설정돼 야 할 것이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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