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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
1997년07월31일 제 1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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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록 공연이 펼쳐지는 카페도 갈 곳 없는 10대의 해방구다.)
지난 6월1일 서울 보라매청소년회관에서는 ‘공부만 하고는 못살아’란 이름의 별난 청소년문화제가 열렸다. 문화제 행사는 하나같이 어른들이 요구하는 것과 거리가 멀었다. 1백50여명의 청소년들은 영화와 촌극, 노 래 등의 형식을 빌려 학교에 얽매인 자신들의 모습을 한껏 풍자하고 야유 했다. 그때마다 쏟아지는 웃음과 함성. 한 중학생은 “학교는 얄팍한 한 줌의 지식을 주는 대신에 정작 내게 필요한 것은 모조리 빼앗아간다. 학 교가 없으면 좋겠다.”고 당당히 선언했다.
어른들의 짓거리를 모른다고? 천만에…
청소년들은 기성세대의 추태를 매섭게 꼬집기도 했다. 강남여중 청소년문 화연구반이 펼쳐보인 촌극 ‘은밀한 유혹’에서 어른들은 두 얼굴을 가진 사람으로 묘사된다. 청소년을 선도해야 한다며 목청을 높이면서도, 뒤돌 아서면 ‘영계’를 찾는. 촌극은 그런 어른들을 이렇게 비꼰다. “가출한 10대 소녀들이 돈을 벌기 위해 단란주점으로 진출했다. 술 취한 어른들의 더러운 요구. 우리들이 어른들의 짓거리를 모른다고? 천만의 말씀! 우리 가 이렇게 된 게 다 누구 때문인데.”
컴퓨터 가상공간에서는 이보다 더욱 날선 청소년들의 문화가 번지고 있다 . 이들은 10대에 10대에 의한 10대들의 문화를 자처한다. 기성세대의 접 근이 쉽지 않은 컴퓨터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신들의 해방구를 일구고 있 는 것이다. 그곳에선 어른들의 눈으로 규정된 10대의 모습이 들어설 자리 가 없다. 그건 어른들의 비뚤어진 관심과 기대가 투영된 거짓된 모습일 뿐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잡지 ‘Ch 10’(www.ch10.com)은 가상공간에 근거지를 튼 10대들의 ‘청석골’이다. 지난 5월 선보인 이 잡지의 ‘두령’들은 중학교 2학년 생부터 고등학교 3학년생까지 모두 15명이다. 미국과 홍콩, 캐나다의 청 소년들까지 제작에 참여한다. 그들의 공통점은 단 한가지. “지구의 20세 기말을 살아가고 있는 10대들”이라는 것뿐이다. 그들은 “말 안 되는 몽 상도 하고, 멋지게 시비를 걸어 재밌는 논쟁도 벌이고, 칭찬 혹은 야유도 하면서 뭔가를 만들어가자”고 외친다.
Ch10 제작진은 개성이 넘친다. 스스로를 폭탄머리라고 소개하는 김진홍(1 5)군은 중학교 3학년이다. 랩과 펑크를 좋아하는 그는 언더그라운드밴드 를 찾아다니며 인터뷰한 내용을 이곳에 띄운다. 이미 첫타자로 허벅지밴 드를 소개했다. 요즘은 아예 밴드를 만들기 위해 동지를 찾고 있다. “실 력을 다진 뒤 밴드를 결성하는 게 아니라 밴드로서 실력을 갈고 닦고픈 이들을 찾는다”고 한다. 최다운(18)군은 자신을 “학생수용소 2학년”이 라고 소개한다.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흉물을 없애기 위한 중대한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고 너스레를 떤다.
이들은 기성세대의 오해와 편견을 도마 위에 올린다. 대중매체의 인기가 요 순위를 뒤집어 만든 ‘워스트 텐’(Worst 10)을 발표하고, 칸영화제 대신 자신들의 눈으로 본 ‘꼰느’영화제를 연다. ‘워스트 텐’에는 현 재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는 10대 취향의 가요 대부분이 고스란히 상위권 에 올라 있다. 이런 노래들이 10대들의 생각을 담기보다는 오히려 왜곡하 고 있기 때문이란다. 요즘 유행하는 젝스키스의 노래를 올린 이는 이렇게 선정이유를 밝힌다. “정신없는 박자, 현란하기 짝이 없는 춤, 알아듣기 힘든 가사. 제발 설치지 말아다오.”
청소년 앞세운 대중문화 제발 설치지 마
지난 7월15일 첫선을 보인 인터넷잡지 네가진(www.sss.co.kr)도 청소년들 의 해방구임을 자처한다. 열여섯살 고등학교 자퇴생이 편집장을 맡고 있 는 이 잡지는 창간사로 ‘청소년 해방선언서’를 선포했다. “우리는 돈 없고 힘도 없다. 대학이란 쇠사슬에 손발 묶이고 입까지 틀어막혀 사고의 자유까지 제한당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장님, 귀머거리, 벙어리의 위 치에서 벗어날 것이다. 이제 더이상 생각이 굳어버린 그들의 손바닥 안에 서 놀아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전망을 확신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들 스스로도 이건 씨앗일 뿐이라고 말한다. “우리들은 어쩌면 막 뿌려진 한 점 씨앗인지 모른다. 앞으로 무슨 색깔 꽃이 필지, 어떤 열매를 맺을지 아무도 모르는. 하여간 아구아구 떠들고 꿈틀대다 보면 뭔가가 만들어질 것 같은 예감.” 지금 그런 예감을 가진 청소년들의 새로운 문화를 키워 가고 있다.
유강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