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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
1997년07월31일 제 1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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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름없는 가수의 노래에 맞춰 환호하는 10대들.)
“불량만화 압수하고 삐삐 빼앗는다고 학원폭력이 없어지나요. 그래도 애 들 때릴 놈들은 애들 때리고 공부할 놈들은 공부하는 거죠.”
“학교폭력이다 10대 포르노다 해서 마치 우리들이 모두 나쁜 애들인 것 처럼 떠드는데 실제론 어른들이 더 문제잖아요.”
지난 7월16일 밤 서울 신촌의 한 공원에서 만난 남자 고교생 3명과 여고 생 2명의 화제는 점차 자신들을 향한 기성세대들의 ‘위선’으로 모아졌 다. 인문계고 2학년 학생들인 이들 10대들은 어른들이 자신들을 폭력만화 와 포르노 비디오에 빠져드는 철부지로만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한다.
삐삐 찬다고 문제아되나요
“요즘 신세대들 사이에서 삐삐가 거의 필수품이잖아요. 선생님들은 ‘공 부에 방해되고 놀 궁리하기 위해 삐삐 차고 다닌다’고 말하는데 완전 헛 소리죠. 애들이라고 친구 만나고 연락할 일 없겠어요? 선생들이 차면 업 무연락용이고 학생이 차면 탈선용입니까? 삐삐있어도 공부할 애들은 잘만 하잖아요.” 한 남학생은 요즘 자기네 학교에서 소지품 검사를 해 몇몇 친구들이 삐삐를 압수당한 것이 억울한 듯 땅바닥에 침을 내뱉는다.
“만화나 삐삐나 모두 어른들이 만들어 팔아먹는 거잖아요. 실제로 우리 들이 놀 곳이 어디 있어요? 기껏해야 노래방이나 만화방인데 못 가게 하 려면 대신 갈 곳을 만들어놓고 못 가게 해야죠. 청소년 보호법인가 뭔가 내용은 잘 모르겠는데 그거 청소년 말살법 아닌가요.” 교복차림에 책가 방을 멘 한 여고생이 거든다.
이들의 항변은 학교와 교사와 사회와 언론으로 이어진다.
“선생들이 삐삐 뺏는 것이 애들 삥뜯는 것(돈을 빼앗는 것)과 뭐가 달라 요. 선생들도 애들 무조건 패잖아요. 신문·방송에서도 애들을 못된 놈으 로 엄청 조지고, 우리가 뭐 동네북이에요?”
기성세대에 대한 10대들의 반발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거세고 직 설적이다. 특히 최근 학교폭력 문제가 사회문제로 비화하고, 이어 10대 음란비디오 사건이 터진 이후 돌아가는 상황은 10대들의 ‘답답함’을 더 욱 증폭시킨다.
정부는 학원폭력을 2학기 전까지 근절한다는 방침 아래 대대적인 학교폭 력 단속에 나섰다. 경찰은 등하교길 아이들을 붙잡아 연행한 뒤 조직폭력 배로까지 몰아붙이고 있다. 당국은 또 수백만권의 만화에 불량딱지를 붙 여 대대적인 추방운동을 벌이고 있다. 학교에서도 포르노테이프와 불량만 화를 단속한다며 책가방 검사를 실시한다. 몇몇 학교에서는 무선호출기도 압수목록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대부분의 10대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폭력과 음란만화에 찌들어가 는 철없는 아이들로 치부되는 데 대해 결코 수긍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 신들을 울타리에 가두고 길들여져야 하는 존재로만 보는 기성세대들에게 할 말이 많다. 10대들은 기성세대가 문제의 본질은 외면한 채 권위와 위 선을 앞세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어른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으 려고도 하지 않거나 또는 듣고도 짐짓 모른 체한다는 생각은 10대들의 목 소리를 더욱 날카롭게 만든다. 물론 모든 10대 청소년들이 이런 생각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10대들은 이제 자신들의 주장에 도 기성세대가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공감을 나타낸다.
교사폭력은 왜 안 잡아가요
학교폭력 문제만 해도 그렇다. 10대들의 가시돋힌 항변은 학교에서 교사 들의 지나친 체벌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얼마 전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인데요. 한 학생이 볼펜으로 딱딱 소리를 냈다고 선생이 불러내 ‘안경을 벗어라’ 하더니 손으로 따귀를 때리고 주먹으로 가슴을 치고, 발로 가슴팍을 찼어요. 다시 발로 그 애의 입부분 을 차서 입에 피가 맺혔어요. 나중에 선생이 우리에게 ‘오늘 안 그래도 기쁜이 나쁜데 쟤가 걸린 거다’ 하잖아요.” 고교 1년생인 김아무개(17) 군은 “학교폭력 문제는 학생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며 “그 일 이후 그 선생을 선생으로 보지 않기로 했다”고 말한다.
한 남녀공학고 2학년 여학생은 “지난해 학급 실장들이 모이는 데 늦게 왔다고 교무실 앞 복도에서 한 선생님에게 밟혀서 허리를 다쳐 그뒤 허리 디스크 수술을 두번이나 했다”면서 “여학생들을 하키 스틱으로 패고 검 은 테이프를 감은 쇠파이프로 머리를 때리는 선생님들도 있다”고 털어놨 다.
서울 ㅂ중 3학년 손아무개(16)군 얼마 전 친구들과 길을 가다가 형사로 보이는 아저씨들이 서로 다투고 있던 여자아이들을 연행하려는 모습을 우 연히 보게 됐다. 그런데 한 아이가 뭔가 설명을 하려 하자 한 아저씨가 교복 아래로 맨살이 드러난 정강이를 구두 앞꿈치로 걷어차고, 맞아 쓰러 진 친구를 부축하려 허리를 굽히는 다른 아이의 정강이를 옆에 있던 또다 른 아저씨가 걷어차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손군은 “그 아 이들을 폭행이라는 죄목 아래 잡아가면서 그 어른들은 그 아이들에게 폭 행을 가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학교와 가정은 또 많은 학생들에게 자신의 꿈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비쳐 지기도 한다. 서울 ㅁ고 3학년 이아무개(18)군은 전교에서 1∼2등을 하는 그야말로 ‘범생이’다. 그는 공부뿐만 아니라 교내 영화동아리 활동도 열심이고 회지에 페미니즘에 관한 글을 쓸 만큼 사회문화 전반에 대해 관 심이 많다. 그의 꿈은 뜻밖에도 세계 패션계를 주름잡는 일류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꿈이 순탄히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학교에서는 ‘전교 일등이니 당연히 서울대를 가야 한다’고 말한다. 공무원인 아버 지는 아들이 법대에 진학하기를 원한다. 이군은 “ㅇ대 의상학과에 진학 하고 싶지만 학교와 집안에서 그렇게 반대가 심하니 고민”이라면서 “차 선책으로 서울대 불문과에 들어간 뒤 프랑스로 디자인 유학을 가는 것도 고려중”이라고 말했다.
한 고교생은 “우리나라 학교교육은 모두 대학진학만을 목표로 하고 이를 위해 틀에 박힌 교육을 하고 있다. 거기에다 똑같은 교복을 입힌다. 이건 수용소에 집어넣고 교육하는 거나 같다. 교육방식도 주입식이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 아니면 독서실에 가서 공부를 한다. 이런 건 모두 다 부모들 의 교육열이 낳은 우리에 대한 큰 범죄이다. 우리의 자유를 짓밟는 범죄 다”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청소년 보호법은 ‘청소년 말살법’
(사진/대학로에서 벌어진 즉흥무대. 청소년 보호법은 갈 곳 없는 청소년들의 발길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는 게 10대들의 생각이다. )
방학을 맞아도 아이들은 자유롭지 못하다. 보충수업이 기다리고 있다. 방 학중 보충수업에 대해서도 10대들은 할 말이 많다.
“어떤 반에서는 1등부터 25등까지 전부 다 시키고 어떤 반에서는 희망자 와 선생님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하게 됩니다. 모두 8개반 중 4개반을 만 드는데 원하든 원하지 않든 무조건 숫자를 채웁니다. 그 더운 여름날 선 풍기 한대 없는 교실에서 50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수업을 하고 있다고 생 각해 보세요.”
“보충수업을 실시하기 전에 희망원이라는 것을 나눠주는데 거의 강제로 희망에 동그라미 표시를 하게 합니다. 비희망에 표시하는 학생은 교무실 로 끌고가서 교감이 패고 결국 희망원을 내지 않은 학생도 방학 때 학교 에 와야 합니다. 가끔 학교를 감시하러 오는 장학사들에게는 방과후 교육 활동이랍시고 선전을 해댑니다.”
지난 7월부터 시행된 청소년 보호법에 대해 10대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청소년들이 제대로 놀고 쉴 공간은 마련하지 않은 채 노래방 비디오방 만 화방 등을 유해업소로 몰아붙여 출입을 규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복 입고 놀 곳을 한번 찾아보세요. 길거리말고는 제대로 들어갈 곳이 없어요. 아파트 놀이터에 가면 경비 아저씨들이 뭐라 그러고, 오락실 가 면 깡패 자주 만나고, 수영장 같은 운동시설은 돈도 많이 들고, 그렇다고 변변한 공원이나 체육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눈치 보면서라도 노래방이나 당구장에 갈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10대들은 또 기성세대들의 가식적인 청소년 보호 구호나 획일적 규제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한다. 10대들의 속내를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은 채 ‘이건 나쁘니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싹쓸이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고2인 배아무개군은 “우리 학교는 두발단속이 특히 심해요. 군대 같은 수직체계 사회에서라면 몰라도 학교는 조금이라도 학생의 생각을 틔워 줘 야 할 곳 아닌가요”라고 반문하면서 “힙합바지가 보기 싫다고 금지시키 고 얼마 전에는 다마고치가 애들 공부 못하게 한다고 또 금지시키고, 그 럼 말많은 컴퓨터통신도 금지시키면 되겠네요”라고 꼬집는다.
“금지 만화 목록을 보면 정말 황당한 것들이 많아요. <이웃의 토토로>는 괴물이 나와서 나쁜 만화, <아기와 나>는 동네여자들이 다 애기아빠를 좋 아하니까 나쁜 만화, 이러다 보면 한정이 없지요. 만화보는 애들이 ‘만 화에 이런 것이 나왔으니 나도 한번 해보자’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파 란 하늘에 비둘기 날아가는 것 이외에 보여줄 게 뭐가 있습니까. 만화를 금지한 분들을 보는 느낌은 영화 <시네마천국>에서 ‘동네 사람들을 위해 서’ 키스장면을 삭제하는 신부님을 보는 느낌과 다름이 없습니다.”
영계 찾는 어른들… “너나 잘해”
컴퓨터 세대답게 사이버공간에서 이들의 소리는 더욱 거침이 없다. 컴퓨 터통신 토론란에는 여과되지 않은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가득하다. 이들의 주장은 일면 과격하면서도 거침이 없다. 우리의 10대들은 현실세계보다도 오히려 사이버공간에서 훨씬 더 자유를 느끼기 때문일까.
“너나 잘해! 만날 보여주는 모습은 사기치고, 폭력 휘두르고, 힘없는 사 람들 짓밟고, 영계나 찾고, 선정적인 광고가 있어야 팔린다고 생각하고… .”
“목소리만 큰 교감 선생님, 말도 안 되는 소리만 하는 교장 선생님, 그 런 보수파 멍청이 개굴딱지 같은 사람들에게 아부하는 몇몇 선생님, 예쁜 애들만 좋아하는 남자 선생님들, 착한(선생님말에 오직 순종하는) 애들만 좋아하는 마귀 여선생님….”
“행동으로 보여주자. 교무실 창문을 부수고 신문지에 휘발유를 묻혀 불 을 붙이고 집어 넣어버려.” 우리의 교육이 그리고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 면 멀잖아 그런 날이 닥칠지도 모른다.
지창은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