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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
1997년07월31일 제 1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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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거리의 10대 이야기를 그린 `나쁜영화'. 빠른 신체적 성숙만큼 10대의 성도 앞서가고 있다.)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래요. 애들이 자기들끼리 놀다 찍은 게 밖으로 새 나가서 그렇지 ‘콩까는(성관계 갖는) 게’ 어디 걔들 뿐이에요?”
7월18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만난 여고 2년생의 말이다. 10대 청소년들 의 음란 테이프 사건에 대해 기성세대와 언론들이 떠들썩한 반응을 보인 것에 비하면 ‘웬 호들갑이냐’는 투다. 함께 있던 또다른 여고생은 “신 문·방송에서 너무 크게 다루는 것 같아요. 성문제를 쉬쉬하다가 그런 사 건이 터지니까 흥밋거리로 막 보도하고, 물론 하는 애들도 있지만 안 하 는 애들이 훨씬 많잖아요”라고 말한다.
어른들 호기심이 오히려 부채질
강남의 한 고등학교 학생은 “이번에 문제가 된 ‘빨간 마후라’의 경우 지난해부터 학생들 사이에 돌았으며 학교보다는 주로 독서실 등에서 은밀 히 빌려보는 애들이 많았다”면서 “빨간 마후라말고 이와 비슷한 종류의 비디오 테이프도 많이 나돌고 있다”고 귀띔했다.
기성세대가 10대의 성을 ‘가당치 않은 것’으로 금기시하는 동안 정작 당사자들인 10대들은 저만치 앞서 가고 있다. 10대의 성은 더이상 쉬쉬하 거나 무조건 막는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닐 정도로 일반화되고 있는 것 이다.
서울 화양리나 돈암동 신촌 대학로 등 10대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는 교 복 차림에 손을 맞잡고 걷는 청소년들의 모습이 더이상 낯설지 않다. 밤 이 되면 대학로 벤치에선 서로 껴안거나 입맞춤 하는 10대들도 많이 볼 수 있다. 10대들은 이런 행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어른들의 시선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중학교 3학년인 혜미(16·가명)는 현재 고1 남학생과 사귀고 있다. 지난 겨울방학 동안 돈암동에서 삐끼생활을 하면서 우연히 만난 오빠다. 혜미 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이면 남자친구 집으로 놀러간다. 그는 그 방에서 가 끔 관계를 갖는다.
“오빠와 엄마는 우리가 그러는 것을 아세요. 오빠한테 뭐라 그러는지는 모르지만 저한테는 별말씀을 안 해요. 얼마 전에는 ‘둘다 학생이니 조심 하라’고만 하세요. 임신되지 않도록 하라는 말이죠.” 정양은 이미 중1 학년 때 동네 아는 오빠와 처음 관계를 가졌다. “동네에서 좀 무서운 중 학생 오빠였는데 그땐 정말 무서워서 고분고분 말을 들었죠. 나쁜 오빠는 아니었어요.”
그는 “저번 방학 때 삐끼를 할 때 ‘돈을 줄 테니 같이 가자’며 추근대 는 아저씨들도 많았다”면서 “어른들이 딸 같은 ‘미짜’(미성년자)를 찾으면서도 우리들끼리 그러는 것에 대해 말세라느니, 도덕 운운하는 것 을 보면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고 말한다.
대학로에서 만난 여상 2학년 김아무개(17)양은 아직은 ‘반콩’ 경험밖에 는 없단다. “손해볼 짓을 왜 해요. 그러면 여자만 나쁜 애 되잖아요.” 김양은 “주변 친구들도 남자친구를 가진 애가 많은데 내숭 같은 것은 떨 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런 현상을 반영하듯 10대들의 은어에도 성에 관련된 말들이 널리 퍼져 있다. ‘콩깐다’는 성관계를 갖는다는 말이며 ‘반콩’이면 키스나 애무 까지 한 것을 뜻한다. ‘아다’가 성경험이 전혀 없는 애라면 ‘후다’는 콩을 많이 까본 애다. ‘한코 나간다’는 겁탈당한다는 뜻이다.
기성세대에 비해 육체적 성숙이 빠른 요즘 청소년들은 성에도 일찍 눈을 뜬다. 각종 오락 대중매체와 향락적 사회풍조 또한 10대들의 성적 호기심 과 욕구를 부추긴다. 요즘 10대들의 성의식은 기성세대에게는 방만한 것 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이성교제를 성관계와 연관시키지 말라
지난 4월 현대리서치가 청소년 1천여명을 대상으로 성의식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27.1%가 인습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만나 성관계를 갖는 프 리섹스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난해 에이즈연맹이 고교생 3천 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남학생 가운데 17%, 여고생은 5.3 %가 성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첫경험의 시기도 점차 낮아지고 있 다. 고려대 의대 구병삼·홍명호 교수팀이 13∼19세 여성 1만1천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유경험자의 첫경험 시기가 15∼16세 47%, 17 세 이상은 11.5%, 13세가 무려 22.8%로 10대들의 성은 급격히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10대들은 그러나 기성세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성문제가 위험수위에 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성교제를 성관계와 결부시키는 어른들의 생 각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최근 남녀공학이 부쩍 늘면서 남학생과 여학생이 어울리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 됐다. 선생님 앞에서도 서로 잡은 손은 놓지 않아 교사가 오히려 무안해 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10대들은 이성간의 감정표현을 자연스 럽게 받아들인다. 따라서 10대들은 이성친구를 사귀는 것이 탈선이나 비 행의 하나인 것처럼 생각하는 데 반발한다. 이성에 부쩍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하는 10대들에게 성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남녀공학고교 1학년인 윤아무개(17)군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남녀공학 에 다녔다. 같은반 여자친구들이 이성이라기보다는 그냥 친구라는 감정이 앞선다. 좋아하는 애가 있으면 좋다고 말하고 공원이나 영화관에 같이 놀 러가기도 한다. 그걸 가지고 어른들이 ‘애들이 까졌다’는 식으로 보는 것은 낡은 사고방식”이라고 단호히 말한다.
요즘 10대들은 또 스스로 “알만한 것은 다 안다”고 자처한다. 이런 눈 으로 보는 학교 성교육은 불만스럽기만 하다.
교육부는 초등학교 1∼4년생은 수시교육, 초등 5년∼고교 1년생은 연간 1 0시간, 고교 2·3년생은 연간 5시간씩 성교육을 실시하도록 일선 학교에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학교에서 별도의 성교육시간을 편성하지 않은 채 생물·가정·교련 시간에 성과 관련된 부분이 나올 때마다 해부 학적 지식만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학교에서 하 는 성교육은 다 아는 것이라 학생들은 흥미를 잃고 오히려 성교육하는 선 생님이 낯을 붉히기도 한다는 것이다.
한 고3 남학생은 “어른들은 10대들이 아직 육체적으로 어리고 정신적으 로도 자기 행동에 책임지지 못하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하는데, 10대 때가 가장 이성에 호기심이 많다. 그러면 애들이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능력 을 키워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애들은 몰라도 돼”는 없다
최근 학교에서 성교육을 받았다는 중3 박아무개(15)양은 “어른들은 자기 들이 마치 10대를 거치지 않고 어른이 된 것처럼 행동합니다. ‘애들은 몰라도 된다. 애들은 무조건 하면 안 된다’로 일관하죠. 그러다 보니 애 들도 하소연할 사람이 없어 임신 사실을 숨기게 되고 화장실에서 애낳고 그러는 거죠”라고 항변한다.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란이 되고, 성은 고귀하고 깨끗한 것이라는 원론적 얘기만 하지 말고 피임방법같이 실제적 으로 도움이 되는 성교육을 해야죠. 미국 고교에선 콘돔을 나눠준다면서 요.”
지창은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