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지성
1997년07월31일 제 168호 한겨레21

인간의 가슴에 돼지 심장이 뛴다

복제양 돌리를 만들어낸 유전공학의 발달은 인간이 동물의 심장이나 간, 신장 등으로도 생존할 수 있는 길을 열고 있다.

과학자들은 2000년대 초면 이런 동물장기이식(이종간 장기이식:Xenotrans plantation)이 인류의 가장 큰 현안의 하나로 떠오를 것이라고 말한다. 일본 과학기술청은 최근 발표한 ‘기술예측조사’에서 인류가 2005년께 인간 이식용 장기를 가진 양과 돼지를 복제할 수 있게 되고, 2013년에 이 르면 동물장기의 인간 이식이 실용단계에 들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의 유전공학의 발전 추세대로라면 동물 장기의 인간 이식 시대는 어 쩌면 인류가 화성에 가는 것보다 빨리 도래할지 모른다.


윤리문제와 전염병 등 우려도 높아

일부 과학자들은 동물장기 이식이 윤리적 문제와 함께 인류에게 치명적인 새로운 질병을 “만들어낼지” 모른다고 우려하지만, 동물장기이식에 찬 성하는 과학자·의사들은 이로 인해 인류가 질병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현실적 혜택을 강조한다. 이들은 “미국의 경우만 하더라도 제공 장기의 부족으로 환자 1천명중 불과 10명만이 장기이식을 받을 수 있을 뿐 나머 지는 제공자를 기다리는 사이에 죽어가는 실정”이라며 동물장기이식의 필연성을 강조한다.

미국의 과학전문지 <사이언티픽 어메리컨> 최근호는 이런 동물장기 이식 기술의 실태와 장래를 소개하고 있다.

장기이식 수술은 1954년 미국 보스톤 ‘피터 벤트 브리엄 병원’의 조셉 머레이 박사팀이 사상 최초로 쌍둥이 간의 신장이식수술을 시도한 이래 오늘날에는 심장과 신장을 비롯 폐와 간, 췌장 이식수술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수요자에 비해 제공 장기의 태부족으로 많은 문제들이 생겨났다. 이에 따라 1960년대부터 여러 과학자·의사들이 서로 다른 종(種)간의 장 기 이식 연구에 나섰다. 그러나 장기를 이식받을 사람의 항체가 기증자의 장기 세포를 급속하게 파괴해버리는 초급성- 수술후 몇 분 또는 몇시간 안에 일어나는- ‘면역적 거부반응’이 과학자들을 가로막고 있다. 하지 만 거듭된 연구들은 이런 벽을 조금씩 허물고 있다.


유전자 조작으로 환자 면역체계 변경

1992년 캠브리지대학의 데이비드 화이트 박사팀은 유전자조작을 통해 돼 지 태아에 인체에 필요한 단백질을 공급하도록 지시하는 인간 유전자를 심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유전공학으로 만든 돼지의 장기는 원숭이에게 이식돼 약 2달 이상 거부반응을 극복하고 정상적으로 기능했다. 과학자들 은 현재 이 돼지 조직을 인체에 안전하게 이식하는 방법을 연구중이다. 이에 앞서 1991년 과학자들은 인간의 항체를 공격하는 돼지 세포조직의 항원이 당(糖)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유전자 조작 으로 이 당분을 다른 탄수화물 구조로 대체시키는 데 성공했다.

거부반응을 억제하는 또다른 방법으로 과학자들은 인체가 이식 세포를 공 격하지 않도록 환자의 면역체계를 바꾸는 방법을 연구했다. 일부 과학자 들은 환자의 면역체계가 극도로 억제되어 있는 사이에 돼지 장기를 이식 할 경우 그 장기는 인체가 평상 수준을 되찾았을 때도 상당한 적응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장기를 제공하는 동물들에게 거부반 응을 극복할 수 있는 확실한 적응력을 배양시키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 다. 한편 인체의 거부반응을 지연시키려면 많은 약물 투여가 불가피한데 이는 약물 중독이나 감염 등 인체에 위험을 초래한다.

따라서 가장 바람직한 것은 인체가 약물 주입에 의한 거부반응의 억제없 이 이식장기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인데, 이는 어떻게 하면 이식 동물세포 의 면역적인 내성(耐性)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인가로 이어진다. 과학자들 에게 이 문제는 바로 동물장기이식연구의 최대 과제 중 하나이다.

이종간 장기 이식을 통해 내성을 키우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장기 수용자 의 면역체계를 동물 골수세포에 맞게 수정하는 방법이 있다. 미국 메사추 세츠 종합병원의 데이비드 사크스 박사 팀은 돼지 골수세포를 비비원숭 이에게 주입했다. 이 비비원숭이는 면역체계가 일시 정지되면서 돼지골수 세포에 대한 거부반응을 억제하는 방사선 및 약물이 투여됐다. 연구자들 은 또한 비비원숭이의 혈액에서 돼지세포를 공격하는 항체를 걸러내고 면 역억제제를 투약했다. 비록 이 비비원숭이의 면역체계는 돼지의 세포를 거의 대부분 죽이고 말았지만, 돼지세포의 일부 DNA는 거의 1년 동안 비 비원숭이 체내에서 기능했다. 이 비비원숭이의 ‘킬러 T세포’는 더이상 돼지세포를 외부의 적으로 간주해 공격하지 않았다.


세포캡슐 기술 간기능 장애 치료에 이용

또다른 내성 강화의 방법으로 과학자들은 ‘면역적 격리’(Immunoisolati on)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이 방법은 이식세포를 얇은 막으로 분리해 다 른 큰 세포나 백혈구의 접근을 차단하는 방식인데 이는 이식세포조직, 나 아가 장기 전체를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 또 의사들이 상대적으로 긴 시 간 동안 세포를 쉽게 비교 관찰하는 데 용이한 방법이다. 몇몇 의사들은 이처럼 격리시킨 돼지의 세포로 당뇨병을 치료할 수 있는지 연구하기도 한다. 1그램 미만의 피포성(캡슐화시킨) 돼지세포로부터 같은 양의 인슐 린을 환자에게 공급할 수 있다. 현재 이런 세포캡슐을 이용해 간기능장애 나 루게릭병의 치료가 시도되고 있다.

동물장기이식 기술은 이처럼 궁극적으로 인간의 몸에 적용될 날을 향해 발전하고 있지만 비판적인 목소리도 높다. 특히 많은 과학자들은 장기를 제공한 동물이 ‘에볼라 바이러스’나 ‘광우병’ 같은 질병을 가지고 있 을 가능성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이럴 경우 장기이식을 받은 사람을 통 해 그 병원체가 인간 속에 퍼져 무서운 전염병을 야기할지 모르기 때문이 다.

한편 과학자들은 전염병 발생 위험성이 높은 원숭이보다 돼지가 동물장기 이식에 가장 적합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이미 수천년 동안 돼지 를 사육하며 식량으로 사용해왔을 뿐 아니라, 돼지의 장기가 크기에서나 생리학적인 면에서 인간의 장기와 가장 비슷하기 때문에 인류에게 가장 적합한 장기 제공자라는 것이다.


FDA 동물장기이식 지침 이미 발표

이제 현대과학은 종의 진화라는 자연의 법칙마저 뛰어넘을지 모르는 문턱 에 서있다. <사이언티픽 어메리컨>은 앞으로 수년 이상이 더 걸리겠지만, 그리 먼 장래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한편 지난해 미국식품의약국(FDA)은 동물장기 이식의 인체이식 필요성이 갈수록 증가하는 데 따라 ‘동물장기이식 지침’을 제정해 발표했다. 이 지침은 동물장기이식에 따른 새로운 질병 발생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반영 하고 있다. 지침은 장기이식 동물의 사육에서부터 이식에 이르기까지 위 험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많은 준수의무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이인우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31일


커버스토리 포커스 문화시대 특집 지난호 전체보기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