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지성
1997년07월31일 제 168호 한겨레21

목판인쇄 원조는 역시 신라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인쇄본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 大陀羅尼經)은 서기 706년 이전에 신라에서 제작된 한국 문화재가 틀림없 다.”

문화재관리국은 1966년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 경의 제작주체와 제작연대에 관해 서지학자 김성수 교수(청주대 문헌정보 학과)에게 의뢰한 1차 연구결과를 최근 이같이 발표했다.

당나라 서체보다 남북조시대 서체와 유사

이런 연구결과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하 무구정경)이 “신라에서 제작 된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제작된 것을 수입해간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중 국 문화재”라는 중국쪽 주장을 정면에서 뒤집는 것이다. 중국은 지난해 12월 우리나라의 문화재관리국에 해당하는 국가문물국을 중심으로 한국학 계에 “성전”을 선포하고 무구정경이 중국에서 제작된 것임을 입증하기 위한 전면적인 연구에 착수한 바 있어(<한겨레21> 97년 1월30일자 보도) 이번 문화재관리국의 발표에 대한 중국쪽의 반응이 주목된다.

김성수 교수와 문화재관리국은 이번 1차 연구결과에서 △경주 구황동삼층 석탑(일명 황복사탑)에서 발굴된 사리함 명문(제작연도 706년)과 무구정 경이 동일인의 각자(刻字)로 추정될 만큼 매우 흡사한 점 △이에 따라 무 구정경의 제작연대는 기존의 통설인 750년께가 아니라 706년 이전으로 소 급될 수 있는 점 △무구정경의 서체가 중국의 서체와 뚜렷이 구별되는 반 면 신라 비문과는 같은 맥을 잇는 점 등을 들어 신라 제작설을 재차 확인 하고 있다.

특히 이번 연구에서 주목되는 것은 서기 706년에 제작된 것으로 확인된 황복사탑 사리함 명문에 새겨진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라는 아홉글자 와 무구정경의 자체가 거의 흡사해 동일인의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 이다. 이와 관련해 김 교수가 컴퓨터(파워매킨토시7500/100 기종)로 두 유물의 글자체를 비교 분석한 결과에서도 두 서체는 양식뿐 아니라 운필 법상의 특징 등이 거의 일치하고 있다. 이런 사실은 무구정경이 신라인에 의해 제작되었을 뿐 아니라 제작연대도 최소한 706년으로 앞당길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중국이 주장하고 있는 “서기 702년 중국제작”설을 일축하 는 핵심적인 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이 두 서체는 같은 시기인 중 국 당나라 때의 서체를 따르지 않고 오히려 중국 고서풍인 남북조시대의 북방지역 서체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무구정 경과 황복사탑 사리함의 서체는 남북조시대의 서체와 확연히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이미 오랜 기간을 거쳐 신라화된 서체임을 보여준다고 문화 재관리국은 밝혔다.

신라 금석문과 중국 서예양식을 비교해 볼 때도 무구정경은 중국이 아니 라 신라양식에 훨씬 가깝다는 사실도 나타났다. 즉 신라 전통의 금석문은 울진 봉평비문(524년 건립, 국보 242호)에서도 보이듯이 자체나 장법의 형태와 배열이 정연함보다는 자유스러움을 채택하고 있는데 이런 특징은 무구정경에서도 그대로 계승되어 있다. 반면 중국은 이미 3세기부터 각자 나 필사에 있어 균정한 비례와 배열의 정연함을 지키고 있어, 신라와는 현저한 형식상의 차이를 보여준다. 그러나 8세기 이후부터 통일신라시대 에 들어서면 당나라 문화의 영향으로 점차 서각예술이 품격을 중시하는 중국화의 영향을 강하게 띠게 되는데, 이런 경향은 황복사 사리함 명문에 서도 보인다. 문화재관리국은 이에 대해 “무구정경과 동시대 동일인의 서각으로 추정됨에도 불구하고 황복사 사리함 명문이 장법상 무구정경보 다 엄정한 격식을 보이는 것은 무구정경이 주술적이고 신비적 사조에 치 우친 반면 사리함 명문은 신라왕족인 발원자가 망자의 명복을 비는 엄숙 한 경지에서 제작되었기 때문”으로 보았다.

김 교수는 이와 관련해 “서예가 여초 김응현씨와 문화재연구가 최완수씨 등이 두 서체를 검토한 결과 무구정경이 사리함 명문보다 시대가 앞선다 는 점을 검증했다”며 이는 무구정경의 제작연대가 706년 이전일 수 있 음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네스코 세계 기록 문화유산 등록 서둘러야

결국 무구정경은 사리함 명문과 최소한 동일하거나 다소 이른 시기에 제 작되었으며, 여기서 인출(印出)된 다라니경들이 이후 신라불탑의 ‘납탑 공양물’(공양물로 탑 속에 넣은 것)로 보급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관리국과 김 교수는 이상의 연구결과를 종합해볼 때 “현재까지의 연구결과만으로도 무구정경이 분명한 신라의 인쇄문화유산임을 증명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김 교수는 또 “무구정경이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본임이 더욱 확실해진 만큼 정부는 조속히 무구정경을 유네스코 세계 기록문화유산으로 등록을 신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화재관리국은 앞으로 “당나라 측천무후 신자의 사용례(중국은 무구정 경에 이 글씨체가 사용된 점을 중국제작설의 주요 근거로 삼고 있다)와 서각 예술의 추이를 비롯 다른 신라시대 인쇄물과 묵서편 등에 대한 연구 등을 벌여 무구정경이 신라에서 제작된 분명한 우리 문화재임을 학문적으 로 확고히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인우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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