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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
1997년07월31일 제 1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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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우음분교를 외롭게 지키던 혜진이는 학교의 공주였다. 동생과 함께 닫힌 교문을 바라보고 있다.)
“선생님, 정말 방학해요?” “그럼, 방학하지.” “방학하면 선생님 안 오세요?” “자주 오지는 못하지.” “선생님, 내일 또 나오세요. 저도 학교 올게요.” “내일은 못 나오고 모레 올게.”
지난 7월16일 오전 9시 경기도 화성군 죽산면 고정리 고정초등학교 우음 분교. 교사 한명에 학생이 한명인 시골분교의 방학식은 그렇게 시작됐다. 방학식이라지만 여느 초등학교에서 찾아볼 수 있는 아이들의 웅성거림이 나 환호성은 없다. 행여 방학중에 학교에 나오랄까봐 걱정스런 눈망울을 굴리는 아이들도 없다. 오히려 선생님과 헤어지기가 못내 아쉬운 여섯살 소녀의 응석만이 있을 뿐이다.
“통학용 지프차가 있어도 싫어요”
우음분교는 이번 학기를 끝으로 교문을 닫는다. 학생이 계속 줄어 더이상 학교를 운영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썰물처럼 아이들이 떠났다 . 학교는 썰물에 드러나는 황량한 개펄처럼 쓸쓸히 그들을 배웅했다. 올 해 들어서도 학기가 시작된 지 엿새 만에 5학년 경진이(11)와 3학년 석인 이(9)가 안양으로 전학을 갔다. 그뒤로 1학년 혜진이(6)만이 홀로 남아 오늘까지 학교를 지켰다. 그러나 이제 혜진이도 학교를 떠나야 한다.
혜진이는 학교의 공주였다. 교실이며 운동장이며, 화단이 모두 혜진이를 위한 거였다. 한명 남은 이강석(45) 선생님은 혜진이의 개인교수였고, 학 교는 혜진이의 전용 놀이터였다. 초등학생 한명당 연간 교육비가 평균 1 백만원인데, 우음분교는 그보다 50배가 많은 5천여만원이 들었다. 학교를 운영하는 비용이 그만큼 컸던 것이다. 덕분에 혜진이는 피아노에서 그림, 컴퓨터까지 독선생을 모시고 공부했다. 오늘은 학교문이 닫히기 전에 하 는 마지막 수업날이기도 하다.
선생님은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한다. 선생님의 눈치를 살피던 혜진이가 “ 선생님, 방학 끝나면 학교 없어져요?” 한다. 믿을 수가 없다는 투다. 선 생님은 바로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린다. “대신 고정초등학교로 통학하잖 아. 너, 그곳에 전학간 짝궁 진환이를 좋아한다고 했잖아” 하며 얼버무 리는 게 고작이다. 선생님은 얼른 “교육청에서 9월부터 혜진이가 타고 다닐 1천4백만원짜리 지프차도 마련해놨다”며 말을 돌린다. 혜진이는 “ 거짓말이에요” 하며 혀를 쑥 내민다.
학교 뒷산에서는 뻐꾸기와 산까치가 울어댄다. 학교는 뒤쪽으로는 산이, 앞쪽으로는 바다가 보이는 곳에 사뿐히 앉아 있다. 매립지가 생기기 전에 는 경치가 빼어난 섬마을이었고, 학교는 그런 풍경속의 가장 아름다운 자 리를 차지했다. 5m 안팎으로 높게 자란 측백나무들이 학교를 병풍처럼 둘 러싸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사나운 바람을 막아줬다. 지난 65년 개교 때 심은 것이 이렇게 높게 자랐다고 한다. 수십살은 족히 되어 보이는 가죽 나무는 교정을 푸근하게 감싼다.
그러나 학교는 그동안 날로 쇠락해갔다. 그네며 미끄럼틀, 구름사다리는 페인트칠이 뱀허물처럼 벗겨졌다. 운동장 구석의 우물을 덮고 있는 양철 지붕은 빨갛게 녹이 슬었다. 교실과 교무실, 교재실 등이 들어선 본관 건 물에는 피아노, 풍금, 실로폰 등이 놓여 있고 번듯한 칠판도 걸려 있지만 종일 한적하기만 하다. 운동장에 하얗게 흩어져 있는 조개껍데기들이 이 곳이 예전에 섬이었다는 사실을 소리없이 증언하고 있을 뿐이다.
매립지 조성으로 섬사람들은 떠나고…
지난 87년까지만 해도 우음분교는 섬 안에 있었다. 주변에 개펄이 펼쳐진 전형적인 서해 섬마을 학교였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딴판으로 변했다. 한화그룹이 방위산업시험장용으로 시화매립지를 메우기 시작하면서 닥친 변화다. 매립 10년째 되는 지난해 말에는 섬을 감싸고 있던 1백50만평의 개펄이 사라졌다. 예전에 개펄이었던 곳은 이제 완전히 메워져 잡초가 듬 성듬성 자라고 있다. 매립지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비포장도로가 배를 대 신해 방문객들을 실어나른다.
개펄이 사라지면서 사람들도 하나둘씩 섬을 떠났다. 몇천만원씩의 보상금 을 들고서 한때 삶을 기댔던 섬을 뒤로 했다. 50가구가 넘던 마을에는 이 제 9가구만이 남아 더이상 섬이 아닌 우음도를 지키고 있다. 그나마 남아 있는 이들도 대부분 자식들이 도시로 나간 늙은 부부들이다. 우음분교도 그렇게 학생들을 떠나보냈다. 2년 전 7명이었던 학생이 지난해엔 6명으로 줄었다. 이제 1명 그리고 폐교다.
보상이 마무리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육지로 나가 살 궁리를 했다. 가까운 안양, 안산, 수원으로 나가 살길을 찾았다. 아이들은 이런 어른들에 업혀 섬을 떠났다. 그러나 섬사람들이 도시생활을 자기 삶으로 받아들이기란 너무 힘들다는 게 이들 주민들의 고백이다. 개펄과 바다에서 철따라 나는 것들을 채취해 살던 그들이 도시의 꽉 짜인 노동자생활을 견뎌내지 못하 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상처만을 입고 돌아왔다가 다시 도 시로 떠나는 이웃을 목격해야 하는 이곳 주민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시화 매립지를 만든 재벌회사는 1조원이 넘는 자산가치를 가진 땅이 생겼다고 좋아하지만, 섬사람들은 보상금 몇푼에 삶의 둥지를 잃어버린 셈이다.
우음도는 매립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발전을 멈췄다. 아직까지 전기를 마 음대로 쓸 수 없고, 상수도도 없다. 발전기를 돌려 가정마다 제한적으로 전기를 나눠준다. 그래서 대낮에는 텔레비전을 보기도 힘들다. 우음도는 그때 이미 버림받은 땅이었던 것이다. 요즘 매립지 주변으로 시화신도시 아파트가 들어서고 경인고속도로가 매립지를 관통한다는 계획이 발표돼 땅값이 들썩이고 있지만, 보상이 끝난 우음도 주민들에겐 별로 인연이 없 어 보인다.
혜진이는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첫 방학이 무척 못마땅한 표정이다 .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고 따로 놀 방법이 뾰족하게 떠오르지 않기 때문 이다. 게다가 유일한 친구인 선생님은 수원으로 나갈지도 모르고 하나밖 에 없는 동생 한석이(5)는 같이 놀기에는 너무 어리다. 개펄이 완전히 메 워지지 않았을 때만 해도 게도 잡고 조개도 주울 수 있었지만, 지금은 개 펄에 나가다가 어른들께 들키기만 해도 혼쭐이 난다. 수도권의 산업쓰레 기로 가득 메워진 개펄이 가끔 아이들을 꿀꺽 삼켜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선생님도 “개펄에 들어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학교가 유일한 놀이터였는데…
선생님과 함께 학교를 돌보는 기능직 조병혁(44)씨가 검은 비닐봉투를 건 넨다. 혜진이를 제치고 한석이가 나섰다. 아이스크림이다. 앉은 자리에서 3개의 아이스크림을 연거푸 먹어치우는 한석이는 혜진이와 한살 차이다. 학교 가는 누나를 무작정 따라나섰다가 이제는 선생님한테서도 정식 유치 원생 대접을 받는다. 자기 이름이 박힌 책상과 사물함까지 생겼다. 한석 이는 말 그대로 개구쟁이다. 풀독에 쏘이고 모기에 물려 다리 곳곳에 흉 터가 남았다. 그림을 그리다가 피아노를 치기도 하고 의자를 뒤집어 앉기 도 하는 등 내키는 대로 행동한다. 그래도 선생님과 혜진이는 신경쓰지 않는다. 한석이도 2학기 때부터는 누나를 따라 읍내 유치원을 다닐 것이 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아이들을 향해 선생님이 묻는다. “방학 때 제일 먹고 싶은 게 뭐니?” 둘이 동시에 “피자!” 하고 외친다. “제일 가고 싶은 곳은?” 아이들이 또 외친다. “엄마한테요. 그리고 놀이공산요.” 육지 이모집에 있다는 엄마는 아이들에게는 가장 큰 그리움의 대상이다. 놀이 동산을 ‘놀이공산’이라고 기억할 만큼 아이들의 놀이문화는 갯벌이 전 부였다.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그림일기책과 국어공책을 나눠준다. ‘ 탐구생활’이라고 불리는 방학숙제책이 사라진 뒤에는 선생님이 알아서 방학과제물을 내줘야 한다. 선생님은 공책을 사비로 직접 샀다. 간단한 문구용품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직접 사다 준다.
선생님은 지난해 초 이 학교로 옮겨왔다. 집이 있는 수원에는 주말에만 간다. 그나마도 매립지를 관통하는 비포장도로가 비를 맞아 질척거릴 때 면 주말이라도 우음도에 머물러야 했다. 인천교대를 졸업하고 만19세 때 부터 교직에 들어선 뒤, 올해로 27년째 아이들만을 가르쳐온 선생님은 이 런 환경이 낯설지 않다. 20대에 전기나 수돗물이 들어오지 않는 아산만 일대 평택 포승면 신영리라는 오지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다. 지금까지 한 자취생활만도 10년이 넘는다.
이곳에서도 선생님은 나름의 삶에 익숙하다 못해 달관했다. 혼자 밥을 해 먹다보니 음식만드는 솜씨가 보통이 넘는다. 이곳에서는 차 트렁크에 못 쓰는 책과 삽을 항상 가지고 다녀야 한다. 자칫 차가 갯바닥에 빠지면 책 을 바퀴 밑에 넣고 빠져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삽도 마찬가지 쓰임새다. 학교 뒷동산에 여러 가지 풀과 채소를 길러 먹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근 대, 고추, 무, 배추, 쑥갓, 상추, 호박, 케일까지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약쑥 등 약초도 있다. ‘안빈낙도’(安貧樂道: 구차한 중에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김)가 따로 없다는 게 선생님의 자랑이다.
선생님은 매립을 반대한다. 그것은 그의 경험에서 나오는 선견지명이라고 한다. “아산만과 삽교천 사이 서당벌 모래밭은 아산만을 막기 전까지만 해도 대합이 많이 나와 일본에 계속 수출했는데 만이 막히고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대합은 다 죽고 소라만 나왔다”는 게 선생님의 기억이다. 물길 하나 막아도 환경은 파괴된다는 사실은 경험으로도 쉽게 알 수 있다 는 것이다.
산업폐기물로 뒤덮인 그들의 보금자리
선생님의 말대로 이제는 관광객들도 이 지역 횟집을 찾지 않는다. 싱싱한 횟감을 찾는 도시인들에게 이곳 바닷가는 더이상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섬의 땅만큼은 도시인들의 관심대상이다. 이 섬도 3분의 1 가량은 서울사람들이 사놓았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우음도 주민 모두는 이런 말 을 입버릇처럼 한다. “물 안 막히고 조개잡을 때가 좋았죠, 사람두 많고 . 지금은 도회사람들만 신나게 됐다니까.”
혜진이의 아버지 박정길(23)씨는 매립지가 다른 용도로 쓰이기 전에 논농 사라도 지어보려고 요즘 동네 형님들과 준비에 바쁘다. 보상비를 몽땅 쏟 아붓는 이 농사가 얼마나 잘될지 모르지만 그래도 앉아서 돈을 쓰는 것보 다는 낫지 싶어서다. 그러나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매립된 땅에 들 어가는 흙이 엄청난 데다 매립지가 산업폐기물로 뒤덮여 있어 생산된 쌀 이 건강에 해로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혜진이는 아빠의 사업을 모른다. 9월부터 자가용으로 쓰인다는 지프차에 도 관심이 없다. 혜진이가 꾸는 꿈은 아마도 늦잠을 자서 지각이라도 하 는 날이면, 큰소리로 일어나라고 깨워주시던 선생님의 목소리를 다시 듣 는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김창석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