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997년07월31일 제 168호 한겨레21

이회창의 특급전략 “YS 그림자를 지워라”

‘당 총재인 김영삼 대통령의 모습을 지워라.’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가 된 이회창 대표쪽의 일차적인 대선 전략은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를 겨냥 하는 데 있지 않고 김 대통령과의 관계 정립이라는 대내 문제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즉, 대선 후보인 이 대표를 당 총재인 김 대통령으로부터 어떻게 ‘독립’시켜 차별적 이미지를 확실하게 창출해내고, 신한국당의 인기를 끌어올리느냐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다.


당명 개칭 목소리도 커

물론 민감한 사안의 성격 탓에 이 대표쪽의 어떤 관계자도 아직 공식적 또는 공개적으로 이 문제를 거론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이 대표쪽 사람들뿐 아니라 일반 의원들도 대부분 내심 공감하고 있다. 김 대통령의 국민 지지도가 회복 불능 상태에 빠져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

여권 안에서 ‘김 대통령 모습 지우기’는 이미 지난 96년 15대 총선 때 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 신한국당 후보들은 선거 팸플릿에 당 총재 인 김 대통령의 사진을 전혀 싣지 않았으며, 김 대통령의 텃밭인 부산 경 남 지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부산 출신의 한 의원은 “한보 사건과 김현철씨 구속 사태를 거치면서 김 대통령에 대한 부산 유권자들의 반응 은 냉담함을 넘어 ‘더이상 우리가 안달할 이유가 없다’는 무관심으로 바뀌었다”며 “이런 상태에서 만일 김 대통령이 부산시장 선거에 다시 출마한다 해도 당선을 장담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의 전통적인 표밭이자 올 연말 대선의 승부처인 대구 경북 지역의 사 정은 더하다. 대구의 한 지구당위원장은 “저녁 뉴스 시간에 김 대통령이 텔레비전에 등장하면 사람들이 채널을 돌리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면서 “어떤 사람들은 이제 ‘만년 여당’을 그만두고 차라리 김대중씨를 찍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닐 정도”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이 대표가 대선 후보로서 김 대통령과 가깝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그의 지 원을 받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면, 김 대통령과 함께 덩달아 추락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쪽은 일단 당 총재직을 이양받는 8월 말이나 9월 초쯤을 김 대통 령과의 차별화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할 시점으로 잡고 있다. 그때까지 는 일단 경선 과정의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김 대통령의 도움이 필요하 다는 판단이다. 경선 과정에서 빚어진 경쟁자와의 감정대립이나 당내 다 수파인 민주계의 ‘반이회창’ 정서를 되돌리는 데는 미우나 고우나 김 대통령의 협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당 총재직을 이양받는 대로 곧바로 신한국당에서 YS 그림자 지 우기 작업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주요 당직에도 김 대통령의 냄새가 적은 사람을 대거 발탁하는 등 당 쇄신작업에 착수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곧 ‘이회창당’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당내 일부에서는 이와 관련해 벌써 당명의 개칭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 오고 있다. 일반 국민들의 신한국당에 대한 부정적 정서를 되돌리기 위해 서는 우선 ‘김영삼당’이라는 느낌을 주는 당명부터 바꿔야 한다는 것이 다. 충청권 출신의 윤아무개 전 의원은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서는 무엇 보다 당 이름부터 고쳐야 한다”며 “그래야 그마나 유권자들에게 표를 달라고 선거운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일부에서는 지난 92년 노태우 전 대통령 때처럼 아예 김 대통령이 탈 당해주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당의 한 관계자는 “김 대통령이 당 후보를 위해 선거운동을 하겠느냐, 그렇다고 전임자들 처럼 대선자금을 모아서 도와주기를 하겠느냐”고 반문한 뒤 “올 연말까 지 김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 얘기가 계속 나올 텐데 차라리 김 대통령이 당을 떠나주는 게 후보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계와의 균열’ 고민거리

이 대표쪽은 물론 김 대통령과의 단절 작업을 과격하게 진행하지는 않는 다는 방침이다.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공경할 때 곳간 열쇠를 쉽게 넘겨받 듯이 오히려 김 대통령을 ‘모시는’ 자세를 견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 대통령도 기본적인 단절 개념에 대해서는 공감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이 대표의 후보 경선대책위의 한 고위관계자는 “김 대통령의 마지 막 남은 유일한 관심은 정권 재창출일 것”이라며 “이 목표 달성을 위해 서라면 김 대통령도 ‘필요하면 나를 밟고 가라’는 용단을 내리지 않겠 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김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추진하다 보면 민주계의 감정을 건드려 대선에서 내부 균열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 가 그것이다.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를 겨냥한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의 싸 움은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여권 안에서 시작되고 있다.

김종철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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