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
1997년07월31일 제 168호 한겨레21

LG야구단 내가 지킨다

프로야구 LG선수단 버스운전기사 원한식(52)씨. LG의 전신인 MBC 청룡 때 인 88년부터 핸들을 잡았다. 아우성을 치며 버스를 에워싸는 10대 소녀팬 들을 뚫고 선수들을 안전하게 빼돌려야 한다. 험악해진 원정구장 팬들이 던지는 물병사례를 피해 꽁무니를 잘 빼야 하는 것도 그의 임무다.

그러나 그가 걸어온 길에는 이런 일상과는 색깔이 다른 사건 하나가 있다 . 그래서 이번 대선 열풍을 지켜보는 마음이 남다르다.

지난 60년 4월 온나라가 4·19혁명으로 열병을 앓고 있을 때였다. 당시 그는 서대문구 북아현동에서 살았다. 자유당 부통령 이기붕씨의 사저가 그의 집 가까이에 있었다. 지금 강북삼성병원 근처 언덕빼기 어디쯤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는 18세였다. 후끈하게 달아오른 세상의 열기에 민감하 게 반응할 나이였다. 이 열기에 들뜬 그는 또래 고등학생 시위대를 따라 이씨의 집으로 쳐들어갔다.

“으리으리했어요. 부엌에는 5백ℓ가 넘는 대형 냉장고가 떡 하니 버티고 있었어요.” 그의 회상이다. 냉장고에는 풀죽으로 끼니를 때우던 때인 4 월에 서민들은 구경도 못할 수박과 참외가 그득했다. 장롱에는 상당량의 금붙이들도 있었다. 20여채의 비단이불도 가난한 학생시위대의 눈을 휘둥 그레하게 했다. 원씨 등 시위대는 이것들을 골목으로 끌어내 불살랐다. 이씨는 “글쎄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나이의 객기였을 수도 있구요. 하지만 답답하던 가슴이 후련해진 것 같았어요.”

“정치에 대해서는 할말이 없어요. 자기들끼리 치고박고 하는 싸움도 보 기 싫고요. 지금 대통령 돼보겠다고 나오는 사람들은 정치를 잘해서 이기 붕 같은 꼴을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강남규 기자/ 한겨레 스포츠레저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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