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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하는 재벌 |
1997년07월24일 제 1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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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주변의 반대를 무릅스고 롯데월드를 성공시킨 고집을 바탕으로 롯데를 세계 최고의 어뮤즈먼트그룹으로 만들기 위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이 서울 잠실 제1롯데월드 사업을 지시한 것은 지난 84년. 그러나 롯데그룹 임원들의 반응은 대부분 회의적이었다. 당시까지 일부 아파트를 제외하고는 허허벌판이었던 잠실벌에 대형 호텔과 백화점, 놀이시설(롯데어드벤처)을 짓는 것이 과연 사업성이 있겠느냐는 우려 때 문이었다. 하지만 신 회장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한술 더 떠 카지노(외 국인 전용)도 설치하고 성남이나 용인쪽에 골프장을 건설하라는 지시까지 했다. 호텔, 백화점, 놀이시설, 면세점에 골프장과 카지노를 연계시켜 외 국인 관광객, 특히 일본인들을 대거 유치하겠다는 게 그의 복안이었다. 엔화가치 상승으로 일본 국내보다 한국에서 관광하는 것이 비용면에서 적 게 든다는 점에 착안해 일본 손님 유치에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신 회장 나름의 계산에 따른 것이다. 그는 “내가 주말마다 일본에서 50 개 골프팀 정도는 책임지고 끌어오겠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강한 자신감 을 보이기까지 했다.
롯데월드 성공 신 회장 고집으로 탄생
롯데는 그러나 카지노는 물론 골프장 건설인가를 따내는 데 모두 실패했 다. 당시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수십개의 골프장 건설인가를 무더기로 내 줘 정치적 의혹까지 일던 시절이었다. 신 회장은 실무자들에게 “바보같 이…”라는 짤막한 말로 아쉬움을 달랬다고 한다. 하지만 제1롯데월드는 골프장과 카지노가 없이도 성공했다. 지난해 연간 이용자는 6백10만명에 달한다. 이중 외국인만 51만명이 넘는다. 89년 7월 개장 이후 올 상반기 까지 8년간 롯데월드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3백60만명으로, 같은 기간 중 관광 목적으로 입국한 전체 외국인의 21.3%에 달한다. 외국인 관광객 다섯명 중 한명 이상이 롯데월드를 거쳐간 셈이다. 신 회장의 예측력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신 회장은 제1롯데월드 옆에 제2롯데월드를 짓는 사업에 10년째 매달리고 있다. 송파대로 사이로 제1롯데월드와 마주보고 있는 제2롯데월드 부지(2 만6천6백50평)를 서울시로부터 8백19억원을 주고 사들인 것은 지난 88년 1월이었다. 롯데는 곧 1백8층 규모의 대규모 ‘복합 어뮤즈먼트센터’(종 합 위락시설)를 짓는 사업계획을 수립했다. 그러나 롯데의 제2롯데월드 사업 추진과정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롯데는 89년 11월을 시작으로 지난 해까지 총 8차례에 걸쳐 사업계획서를 서울시에 제출했으나 건물높이 제 한, 교통체증 유발 등의 이유로 모두 반려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 난 90년에는 부동산투기 억제를 위한 정부의 5·8 부동산 특별대책에 덜 미가 잡혔다. 이 터가 비업무용 토지 판정을 받으면서 취득세 중과, 법인 세, 토지초과이득세, 택지초과소유부담금 부과로 천문학적 규모의 세금을 내야 하는 위기에 몰렸다. 오랜 법정공방 끝에 취득세, 법인세, 토초세는 “서울시의 건축허가 제한으로 개발기한 안에 공사를 하지 못한 점이 인 정된다”는 대법원의 판결로 ‘없었던 일’이 됐다. 롯데는 지난해 4월 마지막 남은 택지초과소유부담금 소송에서도 고법에서 승소해 완승을 눈 앞에 두는 듯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원심을 뒤집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롯데는 92년 이후 지난해까지 부과된 부담금 1천9백여억원을 모두 내야 하는 부담에 직면해 있다.
엄청난 시간과 비용 손실을 감내하면서 롯데가 제2롯데월드 사업에 매달 릴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신 회장의 고집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신 회장은 원래 땅 매입비의 2배를 넘는 택지초과소유부담금까지 부담할 각 오가 돼 있다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롯데는 그동안 들어간 투자비 와 기회비용 상실, 부담금 등을 모두 합하면 유무형의 손실이 1조원에 육 박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롯데는 제2롯데월드 건설이 이미 70대 후반으로 들어선 신 회장(그는 1922년 생이다)의 ‘필생의 사업’이라고 말한다. 신 회장은 롯데월드 건설 아이디어를 세계 최대 관광단지인 미국 플로리 다의 올랜도와 캐나다 에드먼턴의 실내 테마파크를 직접 돌아보고 얻은 것으로 알려진다. 신 회장은 평소 연간 여행수지 흑자가 수백억달러에 달 하는 미국, 스페인 등을 예로 들면서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갈수록 준다고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부터 그들이 우리나라를 다 시 찾도록 만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투자를 해야 한다. 관광사업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말을 해왔다.
“관광사업 포기 못한다. 투자하라”
지난해 우리나라는 26억달러의 여행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올 들어서도 적자추세는 계속돼 지난 5월까지 12억2천만달러에 이르고 있다. 롯데는 정부가 국제수지 방어를 위해 국내 관광산업을 집중 육성한다고 하면서도 제2롯데월드 건설사업에 대해 지원은 못할 망정 가로막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특히 총 1조원 정도로 예상되는 제2롯데월드 투자비는 대부분 외국에서 투자형태로 들여올 계획이기 때문에 국내 금융기관으로 부터 대출을 받아 하는 사업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설명이다. 롯데그룹 기 조실의 오정환 상무는 “기업들이 앞다퉈 해외로 빠져나가는 실정에서 외 국자본을 들여와 국내 관광산업에 투자하겠다는 신 회장의 ‘관광보국’ 정신은 평가받을 일 아니냐”고 반문한다. 이와 관련 신 회장은 “내가 프랑스에서 롯데월드 사업을 한다고 했으면 프랑스 의회가 최고훈장을 주 었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지지부진하던 제2롯데월드 건설사업은 올 들어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롯데는 서울시 및 송파구청과의 협의과정이 순조로워 이르면 올 11월께는 착공에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롯데는 올해초 성남 서울 공항에 장애가 되기 때문에 40층 이상 건물은 곤란하다는 국방부의 입장 을 받아들여 사업계획을 애초보다 대폭 축소했다. 롯데는 건물층수를 1백 8층에서 36층으로 낮춘 새로운 사업계획서를 지난 2월 서울시에 제출했다 . 롯데는 이 땅에 연면적 17만6천평 규모의 ‘복합 어뮤즈먼트센터’를 짓는다는 계획이다. 센터 안에는 연면적 5만평 규모의 특급 관광호텔(객 실 7백2실)과 백화점(2만2천평), 쇼핑몰(2만평), 테마파크(2만8천평) 등 이 들어선다. 한마디로 먹고, 자고, 놀 수 있는 모든 시설이 들어서는 것 이다. 특히 바다를 주제로 한 테마파크는 신 회장의 꿈이 응축된 곳이다. 태평양관, 인도양관, 남극관 등 대양별로 대형수조가 들어서 해당 지역의 해양생물들로 가득 채워진다. 수조를 통과하는 수중터널이 설치돼 마치 바닷속을 걸어가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도록 꾸며지고 소형 잠수정 운행 도 계획하고 있다. 확정은 안 됐지만 실내 스키장을 설치하는 방안도 검 토중이다. 제2롯데월드는 육지를 테마로 한 제1롯데월드와는 지하통로로 연결된다. 그러면 제2롯데월드는 비슷한 규모의 제1롯데월드와 함께 실내 종합 어뮤즈먼트센터로는 세계 최대규모를 자랑하게 된다.
사마란치도 극찬한 부산 롯데호텔
종합 어뮤즈먼트센터 사업에 대한 신 회장의 꿈은 잠실 제2롯데월드에 국 한되지 않고 있다. 롯데는 올초 백화점과 호텔, 실내 놀이시설을 갖춘 부 산 롯데월드를 오픈했다. 5천억원이 넘는 투자비가 들어간 부산 롯데월드 의 호텔은 세계 최고급 수준이다. 부산 롯데월드의 한 관계자는 “지난 5 월 부산 동아시아경기대회 참석차 묵고 간 사마란치 IOC 위원장은 김용운 한국 IOC 위원에게 ‘세계에서 이처럼 훌륭한 호텔은 처음 봤다’며 감탄 했다”고 전한다. 또 지난해 9월 부산시로부터 8백80억원을 주고 사들인 부산 중앙동 부산시청 부지 1만1천평을 중심으로 1백여층 규모의 부산 제 2롯데월드를 건설할 계획이다. 롯데 임직원들은 “서울 잠실 제2롯데월드 건설계획을 축소할 수밖에 없게 된 신 회장이 자신의 고향인 부산에 그 꿈을 실현시키려 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부산 제2롯데월드 건설에 들 어가는 총투자비도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백화점과 호텔, 놀이 시설을 갖춘 울산 롯데월드 공사에 들어갔고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단지 인근 색달동의 50여만평 부지에도 특급호텔(5백실)과 36홀의 골프장을 갖 춘 제주 롯데월드를 지을 계획이다. 지난 5월에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인근에 현지 기업들과 함께 롯데월드를 건립하기로 하는 의향서를 교환해 롯데월드의 해외진출도 가시화될 전망이다. 롯데물산의 관계자는 “일본 도쿄 가사이지구의 6만여평 땅에 지으려는 일본 롯데월드 사업도 현재 설 계작업이 진행중”이라면서 “중국, 러시아 등에서도 롯데건설 건립 요청 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한다.
업계 전반적으로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는 백화점을 주력으로 삼고 있는 롯데로서는 종합 어뮤즈먼트센터 건립사업이 그룹 전체의 앞날에도 큰 영 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룹 안에서는 롯데월드 사업의 전망에 우려를 나타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룹의 한 임원은 “제1롯데월드도 간신히 수지타산을 맞추는 실적인데 비슷한 규모의 제2롯데월드를 지어 이익을 남기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부산 롯데월드의 호텔 부문만 해도 당분간 연간 3백억원 정도의 적자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롯데 백화점은 지난해 1조8천여억원의 매출과 3백60여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해 업계 1위를 고수했지만 올해 매출은 지난해 수준에서 정체상태를 보이고 있다. 전국적으로 백화점 체인망을 구축하는 다점포화 전략이 주춤한 것 도 이런 고민을 엿보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룹의 한축을 이루고 있는 제 과-식음료 부문도 부동의 정상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미래 유망사업으로 내세우기에는 아무래도 무리다. 지난해 미국 통신업체 GTE와 기술협력계 약을 체결하면서 향후 그룹의 주력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한 정보통신사업 도 국제전화 사업자로 선정된 온세통신의 지분율을 2% 확보하는 데 그치 면서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소프트웨어산업, 금융산업 등에도 눈길
롯데는 이미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할인점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늦었다 고 보고 지난 94년 인수한 편의점(코리아 세븐 일레븐) 사업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신 회장의 차남인 신동빈(42) 그룹 부회장의 주도하에 일본 미쓰이와 합작으로 물류 소프트웨어 회사인 롯데로지스틱스를 설립한 것 도 이와 관련된 포석이다. 금융산업에도 눈을 돌려 백화점과 연계한 카드 회사와 종합금융사 설립 등도 추진할 계획이다.
지난해 신 회장과 신준호 롯데햄·롯데우유 부회장간의 형제 갈등은 정리 단계로 들어갔지만 2세들 4명(2남2녀)의 후계구도 정리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장남 동주(43)씨가 일본 롯데의 전무를 맡고 있는 반면 동빈 씨가 그룹 부회장은 물론 호남석유화학 부사장, 코리아 세븐 일레븐 부사 장, 일본 롯데리아 전무, 일본 롯데마린즈 구단주 등 한국과 일본 양쪽의 경영에 폭넓게 참여하고 있는 것을 놓고 일부에서는 2남 승계를 점치기도 한다. 신 회장의 딸로 그동안 롯데백화점의 실세로 꼽혀 온 신영자 롯데 쇼핑 부사장이 지난 5월 인사에서 업무영역을 상품 외에 영업부문으로까 지 확대한 사실을 주목하며 새로운 대안의 가능성을 점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롯데의 한 임원은 “신 회장이 후계구도에 대해 전혀 언급을 않고 있고 본인의 건강이 좋은 상황에서 2세체제를 자꾸 언급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면서 “신 회장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앞으로도 10년 이상 경영을 직접 챙길 생각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품질 제일주의와 다른 데 한눈 팔지 않고 호텔-유통-식음료 등 자기가 아는 사업에만 심혈을 기 울여 온 신 회장이 그룹의 중장기 비전과 후계구도 정리라는 과제를 어떻 게 풀어 나갈지 주목된다.
곽정수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