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단 |
1997년07월24일 제 167호
|
|---|
지난해 5월15일 청주시 사창동 박아무개(26·여)씨 집에 흉기를 든 2명의 괴한이 미리 뜯어놓은 화장실 방범창으로 들어와 박씨를 다섯차례에 걸쳐 잔혹하게 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들은 성폭행 전 박씨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플래시를 비추었고, 나이·이름·직장 등을 일일이 물어 확인했다. 범인들은 또 증거를 없애기 위해 성폭행 뒤 박씨에게 목욕을 강요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사건이 단순 성폭행범에 의한 짓이 아니라는 의혹은 무엇보다 도 범인들이 한국타이어 해고자로 당시 경찰 수배를 받고 있던 박응용(34 )씨의 소재를 박씨에게 물었다는 점과, “함부로 까불고 다니면 좋지 않 다”고 협박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피해자 박씨는 알고 지내던 박응용씨가 95년 말 해고되자 이들 부부의 생 계를 돕기 위해 박응용씨의 부인에게 분식점을 열도록 자금 일부를 대줬 다고 한다. 박씨는 이와 관련해 사건 얼마 전부터 집과 직장에는 수십차 례에 걸쳐 “**가 맞느냐. 가만두지 않겠다”는 등의 괴전화가 걸려오기 도 했다고 전했다.
한국타이어 노조민주화추진위쪽은 이런 정황으로 미뤄 박씨 성폭행 사건 이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폭력배에 의해 노민추탄압의 일환으로 저질러졌 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건의 진상은 1년2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규명되지 않고 있다. 박씨는 현장을 그대로 보존한 채 병원을 전전하다 결국 5개월 뒤 경찰에 진정서를 냈다. 그러나 경찰은 범인들이 마시고 남겨놓은 음료수 병과 담배꽁초 등이 그대로 남아 있는 데도, “사건발생 뒤 시간이 많이 지나 지문감식이나 타액채취 등에 한계가 있다”며 사실상 사건을 종결한 상태다.
한편 이 사건과 관련해 한국타어어 노조 간부를 지낸 김아무개씨는 최근 “분식점을 개업한 지난해 1월부터 사건 한달 전까지 분식점 자금이 어디 서 나왔는지를 회사쪽이 계속 물어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회사쪽은 이 런 의혹제기에 대해 “이 사건은 회사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며,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박씨라는 사람이 있는지도 뒤늦게 알았다”고 밝혔다.
한국타이어 사태는 지난 90년 ‘한울회’라는 모임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이서광(37)씨 등 4명의 노동자가 해고되면서 시작됐다. 이어 95년부터는 노동조합을 민주화하기 위한 조직적인 움직임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어진 것은 테러였다. 95년 9월에는 대의원으로 뽑혀 부당징계철회를 위한 노동 조합 점거농성을 벌였던 박희태(28)씨가 작업반장에게 흉기로 뒷머리를 얻어맏고, 전구완씨가 가스총을 맞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해 한국타이어 는 노동부 특별감사에서 근로기준법, 노사협의회법,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 무려 32건에 대한 시정명령과 함께 홍건희 사장이 입건되기도 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지금도 산재신청은 낼 엄두를 내지 못하고 기숙사에 감시카메라까지 설치돼 있는 등 변한 것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간접선 거로 위원장을 뽑는 한국타이어노조를 민주화하는 싸움 과정에서 지금까 지 15명이 해고됐고, 수십명이 지점으로 쫓겨났다. 그러나 노동부는 올해 초 한국타이어를 96년의 노사협력우량기업으로 선정했다.
민주노총 여성위원회는 최근 경찰과 검찰에 이 사건에 대한 철저한 재수 사를 촉구하기로 하는 한편, 여성인권단체들과 함께 진상조사위원회를 꾸 리기로 결정했다. 한국타이어 해고노동자들이 대전시 목상동 회사 앞에서 지난 6월16일부터 복직 등을 요구하며 벌이고 있는 한달 가까운 단식농성 이 이제 사람들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