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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
1997년07월24일 제 1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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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7월9일 새벽. 파업시한을 넘긴 협상 끝에 파업 위기를 넘겼지만 전국지역의료보험조합은 이날 해고자 복직과 전임자 축소 분쇄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개정노동법의 실질적인 적용을 둘러싸고 또 한차례 총파업의 회오리를 불 러일으킬 것으로 우려되던 올해 노사협상이 일단은 한 고비를 넘겼다. 지 난 7월9일 새벽, 예고했던 파업시한을 1시간이나 넘겨가면서까지 계속된 마라톤협상 끝에 서울지하철의 노사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것을 계기로, 부산지하철과 한국통신 등 주요 공공부문 사업장의 임단협이 비교적 순조 롭게 마무리된 것이다. 이에 따라, 공공부문 사업장을 시작으로 16일부터 병원노련과 금속연맹, 7월 하순에는 현총련과 나머지 제조업체들이 집중 적으로 파업에 들어간다는 민주노총의 3단계 파업 구상은 어느 정도 수정 이 불가피해졌다.
공공부문 타결되자마자 찬물
이번 협상타결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면, 노동계가 거둔 성과는 일부의 비 판적 평가에도 결코 적지 않다. 무엇보다 올해 임단협의 최대쟁점이 돼온 노조전임자 축소와 고용안정 보장, 해고자 복직 등의 문제에서 사용자쪽 의 상당한 양보를 얻어냄으로써 협상의 주도권을 사실상 노동계가 쥐게 된 것이다.
우선 서울지하철노조는 이번 협상에서 회사쪽의 노조전임자 축소와 변형 근로제 도입계획을 결국 철회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또 해고자 복직 문제 에서도 이면계약을 통해 일부 복직을 약속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통 신 노사도 지난 95년 직권중재를 통해 87명에서 37명으로 대폭 축소된 노 조전임자 수를 74명으로 다시 늘리고, 회사가 출자기관으로 전환될 경우 예상되는 고용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노사동수로 구성된 고용안정위원회를 설치한다는 데 합의했다. 이는 물론 노조쪽이 각각 5%와 4.6%라는 비교적 낮은 수준의 임금인상을 감수한 결과였다.
노동계에서는 이같은 협상결과에 대해 “비록 큰폭의 양보를 하긴 했지만 , 극심한 경기침체 때문에 파업에 돌입할 경우 여론의 따가운 질책이 우 려됐던 데다가, 노동부의 직권중재 선언으로 지하철의 파업강행이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었음을 감안하면 특별히 불만스런 것은 아니다”고 평가 했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나아가 이번 협상타결이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임단협에 새로운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레 나오 고 있다.
실제로 민주노총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단체협약 갱신을 위해 교섭을 벌 이고 있는 노조 가운데 36%에 이르는 1백51개 노조가 “정리해고를 할 경 우 노조와 합의를 하거나, 고용안정위원회의 설치를 단협에 명시하라”고 요구하고 있을 정도로 노동자들에게는 고용불안 해소가 올해 단협에서 무 엇보다 중요한 과제가 돼왔다. 그럼에도 사용자쪽은 “고용보장과 관련한 내용을 단협안에 명시하는 것은 경영권 침해”라는 이유로 교섭자체를 아 예 거부함으로써 그동안 노사간 갈등만 계속 키워왔다.
노조전임자 문제도 그렇다. 개정노동법이 노조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을 5년 뒤부터 금지하도록 규정하고 있음에도 경영자총협회가 “당장 올해부 터 전임자를 단계적으로 축소하라”는 지침을 소속 회원사에 일찌감치 내 려보냄으로써 전임자 문제는 그동안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해왔다. 이 로 인해 한국조폐공사 등 일부 노조는 이미 파업에 들어갔고, 7월 중순까 지 협상이 완전타결된 사업장이 전체의 20%에 불과할 정도로 임단협은 지 지부진했다.
해고자 복직 문제 역시 올해도 노사간 첨예한 대립을 불러일으키는 쟁점 사안이다. 전국해고자 복직투쟁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89년부터 96년 말 까지 전국에서 해고된 노동자는 총 5천1백6명이다. 그러나 이중 복직된 노동자는 93년에 2백26명, 94년 1백7명, 95년 8명, 96년 99명 등 지금까 지 모두 4백여명에 불과했다. 올 단협에서도 대우캐리어, 대우자동차, 엘 지화학, 영남대 노조 등 20개 사업장이 해고자 복직 문제로 교섭에 난항 을 겪고 있지만, 지금까지 해고자 복직에 합의한 곳은 대우캐리어(6명)가 유일하다. 노사간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수수방관하고 있는 정부와, 경영 권 문제라며 해고자 복직에 소극적인 사업주에 대해 노동자들이 행정소송 과 임금인상 연계로 맞서는 악순환은 올해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지 금까지 해고는 정부의 잘못된 노동정책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새로운 노 사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화합차원에서라도 해고자 복직이 반드시 필 요하다.” 노동자들의 이같은 주장은 올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해도 내 년 임단투에서 다시 고개를 들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파업일보 전까지 가는 극심한 대립 속에서 처음으로 노사간에 합 의점을 찾아낸 지하철 등 공공부문의 이런 협상결과가 다른 사업장에도 적용되리라 기대하기는 아직 이르다. 무엇보다 경총이 10일 개정노동법의 부작용을 거론하고 나선 것이 앞으로의 협상전망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
노동계,“협상분위기 흐리지 말라”
경총은 이날 진념 노동부 장관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확대회장단 회의에 서, 이번 노동법 개정으로 제3자개입 금지조항이 사라진 것과 관련해 “ 제3자의 지원행위는 법률자문, 상담·조언 등으로만 한정해야 한다”면서 , 특히 “단위사업장의 교섭권 위임에 대해서도 일정한 제한을 둬야 한다 ”고 촉구했다. 그동안 합법적인 상급단체를 갖고 있던 노조에서만 가능 했던 교섭권 위임이 이번 노동법 개정으로 폭이 넓어지면서, 금속연맹과 자동차연맹 등 제조업체 사업장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데 대해 새롭게 딴죽을 걸고 나선 것이다.
노동계는 경총이 공공부문의 노사협상이 가까스로 타결된 직후, 갑작스레 이런 주장을 들고 나온 것은 “협상 분위기를 다시 한번 흐리려는 것 아 니냐”고 의심의 눈길을 던지고 있다. 민주노총의 한 관계자는 “교섭권 위임은 단위노조의 교섭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매년 수천개 의 단위노조가 따로따로 교섭을 벌임으로써 생기는 엄청난 생산의 낭비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도 국가적으로도 절실한 과제”라며 “경총의 주장은 가뜩이나 사용자쪽에 유리한 개정노동법을 더 개악시키라는 것” 이라고 비난했다.
사실 노동계는 지난 3월 노동법이 재개정된 직후 “올 임단투를 통해 개 정노동법의 독소조항을 무력화시키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개정노동법 을 둘러싼 본격적인 공방은 어차피 내년으로 미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었다. 개정노동법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단체협약을 올해 갱신하는 노조가 전체 노조의 20%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 80%는 내년에 갱신하기 때문이다.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면 노동계로서는 서로에게 상처 를 입히는 총파업이라는 무리수를 둘 이유가 많지 않은 것이다.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은 최근 “파업에 돌입해야만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노 동조합은 파업 자체를 위해 싸우는 조직이 결코 아니다”고 강조했다.
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도 노동계의 총파업을 원하지 않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진단했다. 개정노동법의 조항과 관련해 정부가 그동안 노동 자편에 계속 불리한 해석을 내려오긴 했지만, 대통령 선거를 불과 5개월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노사분규가 크게 확산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 이라는 점 때문이다. 서울지하철이 노동자들을 파업으로 내몰기보다는 협 상쪽으로 적극 끌어들인 것이나, 진념 노동부 장관이 경총의 노동법 보완 요구에 대해 “노사관계가 안정을 보이고 있고, 새 노동법의 부작용도 그 리 심각하지 않다”고 일축한 것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협력이냐 갈등이냐, 공은 사업주에게로
그러나 민주노총의 2단계 집중투쟁 지침에 따라 오는 16일 이후 최종협상 에 들어갈 계획인 금속연맹의 한 관계자는 “사업주들이 임단협에서 개악 안을 계속 고집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교섭이 순탄치 않을 경우 우리 로서는 파업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15일로 조정기간 이 끝나는 병원노련도 일단 파업에는 최대한 신중을 기할 계획이지만, 서 울대병원 등 서울지역 3개 사업장과 전북, 전남지역의 일부 노조에서는 파업을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또한번 노동계의 파업이 뜨거운 여름 을 더욱 뜨겁게 달굴 것인가? 각계의 시선은 사용자쪽의 선택으로 모아지 고 있다.
정남구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