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1997년07월24일 제 167호 한겨레21

왜 여자귀신인가

김정란/ 시인·상지대 교수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이제 또 한동안 괴기물들이 판을 칠 것이다. 여름만 되면,예외없이 ‘납량특집물’들이 텔레비전 화면을 장식 한다. 이 관행은 너무나 익숙해서, 텔레비전에서 으스스한 괴기물 방영 안내광고가 나오면 ‘아, 이제 정말 여름이 왔구나’ 하고 생각할 지경이 되었다. 올해도 예외없이 ‘구미호’ 안내방송이 나왔다. 푸르죽죽한 기 분 나쁜 어둠을 가르는 구미호의 비명. 구미호에게 잡아먹히는 아름답고 젊은 선비. 정말 여름이 온 것이다!


‘귀신’에 달라붙은 대중적 욕망

프로그램 제작 담당자들이나 시청자들은 여름이면 으레껏 만들어지는 그 런 종류의 프로그램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는다. 모두들 더우니까 좀 으스스하게 떨자는 거지 하고 가볍게 생각한다.

우리 사회처럼 천지사방에 귀신들이 떠다니는 사회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사회, 정치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여기선 피하기로 하자. 다만, 한 가지 점만 지적 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그 귀신들은 왜 거의 한결같이 ‘여자’일까? 그 리고 왜 하필 그 여자귀신은 한결같이 젊고 아름다운 ‘선비’를 노리는 것일까? 어째서 이런 종류의 이야기 안에서 결론은 늘 귀신의 실패로 끝 나는 것일까? 왜 하필 그녀들은 ‘사또’를 괴롭히는 것일까? 그리고 그 런 괴기담들은 하필 ‘여학생 기숙사’를 중심으로 기승을 부리는 것일까 ?

귀신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귀신의 계보학’이라도 만들어보고 싶은 생 각이 들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모든 괴기담에 등장 하는 귀신들은 여자들이다. 가끔 남자귀신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극히 예외적 경우일 뿐, 거의 대부분의 귀신들은 여자다. 이러한 패턴은 한번도 분석대상이 되어본 적이 없다. 아무도 깊이 생각해 보지 않는다. 해마다 ‘구미호’가 만들어지고, 구미호 출신의 아름다운 여배우들이 등 장한다.

우리 사회에서 ‘귀신’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그 자체로 매우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그 의미를 밝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작업이 될 것이다. 우 리 문화가 진정한 의미에서 형이상학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 가 ‘귀신’을 둘러싸고 있는 문화적 의미의 외연은 대단히 복잡하고 동 시에 조잡하다. 논의 방향과 층위를 결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온갖 종류의 대중적 욕망이 ‘귀신’ 주위에 덕지덕지 엉겨붙어 있다. 그러나 귀신들 이 대체로 ‘여자’라는 사실은 일정한 방향의 설명을 가능하게 만든다. 우리 사회의 여자귀신 괴기담은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무지막지하고 조잡하고 잔인하다. 그 기괴성에 관한 한, 한국의 괴기영화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 까? 그것은 결국, 우리 사회에서 ‘여자귀신’이 남성중심사회가 생산해 낸 타자성의 몫을 ‘몽땅’ 떠맡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무섭고, 사악 하고, 잔인하고, 더럽고, 추악하다. 그녀는 반(反)세계의 모든 부정적인 의미를 짊어지고, 세계를 대표하는 ‘남성’, 가장 아름답고 순결한, 가 장 탁월한 의미에서의 ‘세계적’인 존재, 즉 최적 상태의 남성적 자아 동일성의 상징인 ‘아름답고 젊은 선비’를 꼬드기는 나쁜 타자로 등장한 다. 그리고 언제나 세계의 권력 앞에 무릎을 꿇는다. 즉 ‘사또’에게 투 항하는 것이다.

한국 남성들은 ‘여성’이라는 타자를 한옆에 세워놓고, 마음놓고 아름다 워질 수 있었다. 그녀에게 모든 타자의 자질을 떠넘길 수 있었기 때문이 다. 얼마 전에 나는 개인적으로 깊은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한국을 떠 나고 싶다고 말하면서 한 젊은 유망한 남성작가는 ‘다 좋은데 여자들이 싫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선배의 견해라는 단서를 달아서 한국 여자들은 ‘똥통’이라고 말했다. 똥통. 즉, 타자성의 집적지. 그 말을 듣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말.도.하.지.않.았.다.말.하.고 .싶.지.않.았.다. 내 가슴 깊은 곳에 칼이 꽂혔다. 나는, 많이, 많이 아 팠다.


추악하더라도 나 자신이고 싶다

한국의 여자귀신들이 그토록 추악한 것은, 그녀들이 그렇게 한국남성들의 타자성의 투사대상이었기 때문이다. 한국남성들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 하는 여성은, 남편이 죽은 뒤 “지아비 잡아먹은 년, 제가 죄인이어요. 살 자격이 없어요”라고 말하며 동구 밖 큰 나무에 목을 매달고 죽는 ‘ 열녀’이다. 그 큰 나무의 직립성과 열녀문의 직립성은, 긴 머리카락을 풀고 수부(水夫)들을 꼬드기는 사이렌에게 저항하기 위해서 오디세우스가 자기의 몸을 칭칭 감았던 돛대의 직립성과 다른가, 같은가. 그 당당한 남 성성의 아름다움을 위해 여자들은 얼마나 추악함의 지옥을 헤매고 다녔던 것일까.

나는 귀신처럼 어두움 속에 가만히 앉아 있다. 나는 남자들을 위해서 아 름답고 싶지 않다. 추악하더라도 나 자신이고 싶다. 나는 여자귀신들을 가만히 껴안는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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