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1997년07월24일 제 167호 한겨레21

베트남도 지적재산 태풍권에 진입

‘불법복제의 왕국’ 베트남에 서서히 ‘저작권 바람’이 불고 있다. 무 역수지 개선을 노리는 미국쪽 ‘외압’과 국내 지식인들의 법정소송 등 ‘내압’이 이 ‘새로운 권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있는 것 이다.

베트남은 지난 5월 초 미국 소프트웨어 거래기구들이 뽑은 ‘세계에서 가 장 심각한’ 소프트웨어 불법복제국가다. 이들은 지난 96년 베트남에서 거래된 소프트웨어의 99%가 불법복제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수치 는 중국(96%), 오만(95%), 러시아(91%) 등 대표적 불법복제국을 앞지르는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베트남에는 각종 비디오테이프·음반 등도 불법복제의 굴 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국영문화사업 기관들에 의한 무단 복제행위도 보편화되어 있다. 당연히 시장에는 온갖 해적판들이 판을 친 다. 이런 현상은 시장경제체제 도입과 함께 불법복제물이 늘어나는 가운 데, 창작자들조차 ‘지적재산권’에 대한 인식이 미비한 과도기적 상황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올 들어 이런 상황을 변화시킬 만한 몇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저작권 주장한 작곡가의 의미있는 승리

“1백만동(약 1백달러) 혹은 1천만동이 한 예술가를 더 부자로 만들거나 가난하게 하지는 않는다. 내가 단지 원하는 것은 1동의 명예배상이다.” 지난 4월16일 저작권 침해 소송의 최종심에서 최후진술에 나선 베트남의 유명작곡가 천 티엔의 발언이다. 그는 1년여를 끌어온 긴 저작권 침해 소 송에서 이날 법원으로부터 승소판결을 받아냈다. 법원은 천의 작품을 무 단복제한 사이공비디오사에 배상금 지급과 대중매체를 통한 공개사과를 선고한 것이다.

사이공비디오사는 저자의 허락없이 천 티엔의 작품을 무단복제하여 판매 해왔으며, 일부 가사와 곡조를 수정해 자사의 작품인 것처럼 위장판매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법원의 판례는 저작권과 관련한 베트남 최초의 사법적 판결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베트남 지적재산권 문화를 바꿔놓는 또하나의 힘은 미국이다. 미국과 베 트남은 지난 6월27일 저작권 협정을 맺었다. 지난 4월16일 지적재산권 보 호협정을 맺은 지 약 두달 만의 일이다. 이 두 협정은 베트남이 자국의 지적재산권과 저작권 보호제도를 국제수준으로 정비한다는 내용을 뼈대로 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문학·예술작품, 영화, 특허나 상표, 컴퓨터 소프트웨어 등 광범위한 미국과의 지적재산권·저작권 논쟁이 일단락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이 협정은 민형사 절차, 벌금조처 협정내용의 이행 을 위한 효과적인 수단까지 마련하도록 강제하는 등 미국쪽 요구가 대부 분 수용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미국 지적재산권연맹(IIPA)은 본 협정 과 관련해 베트남에서의 미국 지적재산권 보호 미흡으로 인해 연간 5천만 달러 상당의 무역손실이 초래되고 있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런 안팎으로부터의 ‘압력’은 베트남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 로 보인다. 우선 상당수 물품의 가격인상이다. 예컨대 베트남산 개인용 컴퓨터는 소프트웨어를 ‘거의 100%’ 불법복제해 써온 게 사실이다. 그 런데 올 들어 나타난 여러 변화는 이런 ‘관행’에 상당한 제동을 걸 것 으로 예상된다. 그 결과는 가격인상이다.


미국의 입김에 굴복했다는 일부의 지적도

그러나 베트남 사회 일각에서는 ‘미국의 압력 부분’과 관련해, “그럼 과연 미국이 베트남에 준 것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베 트남은 저작권 문제뿐 아니라 그동안 미군포로와 실종자 문제 해결을 위 해 충분히 성의를 보인 바 있다. 또 최근에는 공산화 이전 옛 월남 정부 의 채무 1억4천5백만달러를 상환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했다. 이 모든 것은 미국으로부터 최혜국대우 지위를 받기 위한 노력이다. 그러나 지난 4월 베트남을 공식 방문한 루빈 미 재무부 장관은 최혜국대우 문제에 대 해서는 언급을 회피했다.

베트남 <노동자신문>은 이에 대한 한 논평에서 “지난 94년 2월 엠바 고 조처 해제 이후 베트남에는 4백여개의 미국기업이 활동하고 있다. 무 역거래량도 10억달러에 이르며 대베트남 투자국 중 미국이 제8위를 차지 하고 있다. 그런데도 최혜국 대우문제 등 그 어떤 무역협정도 체결하지 못하고 있다”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호치민=구수정 통신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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