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1997년07월24일 제 167호 한겨레21

성난 화산이 멕시코 바꾼다

“이제 포포카테페틀의 화가 풀릴까?”

지난 7월6일 멕시코시티시장 및 상하원의원·주지사 선거로 집권 제도혁 명당(PRI)의 68년간 독주가 무너지자 멕시코 원주민들 사이에 나돈 말이 다. “화가 났다”는 포포카테페틀(이하 포포·‘연기를 뿜는 화산’이란 뜻)은 멕시코 중앙고원 지역에 위치한 해발 5,452m 높이의 화산이다. 지 난 6월14일 2년 반 만에 처음으로 수증기와 화산재를 2km 높이까지 토해 낸 이 ‘휴화산’에 대해 원주민들은 “포포가 우리를 꾸짖기 위해 성을 낸다”고 수군거렸다. 원주민들은 또 “우리가 행동을 올바르게 하면 포 포가 화를 푼다”고 굳게 믿어왔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선 여당이 창당 이래 최대의 패배를 기록함으로써 화난 포포가 진정하게 될 지 관심거리 가 된 것이다.


국민들 변화에 대한 두려움 걷어찼다

집권 제도혁명당의 패배는 선거 전부터 예견된 것이지만, 결과는 예상 이 상이었다. 물론 현상적으로 볼 때 여당의 ‘참담한 패배’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원의 지역구에서는 과반수를 넘는 1백61석을 획득했고, 멕시코시 티와 2개 주를 상실했지만 4개 주에서 승리를 했다. 또 상원에서도 35.8% 를 기록했다. 그러나 멕시코의 정치사를 돌아볼 때 이는 틀림없이 참패다 . 지금까지 멕시코 정치는 제도혁명당 일당 중심으로 유지돼왔기 때문이 다. 오늘날까지 모든 선거에서 승리의 잔을 높이 들 수 있었던 당은 오직 제도혁명당뿐이었다. 제도혁명당이 전국 어디에서나 70% 이상의 득표율을 얻는 것은 ‘누워서 떡먹기’였다. 멕시코인 중 프리스타(제도혁명당 지 지자)가 아닌 사람이 없다는 표현은 그간의 정치적 분위기를 잘 대변하는 말이다.

그러나 제도혁명당은 멕시코를 옭아매고 있는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정 체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 “제일 먼저 개혁해야 할 것은 제도혁명당 과 멕시코노동조합연맹이다”라는 지적대로 국민들로부터 점차 멀어져갔 다. 그리고 7월6일 마침내 ‘선거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항상 변화의 두려움 앞에 무릎을 꿇어온” 멕시코 국민들이 과감히 변 화를 선택하게 만든 요인으로는 우선 전 대통령 살리나스로 대표되는 정 부 여당의 부정부패를 꼽을 수 있다. 국민들의 입에서 가장 쉽게 나오는 말들이 “제도혁명당은 날치기다”는 한마디였다. 극에 이른 정부 여당의 부정부패는 국민들로부터 한가닥 남은 희망마저 앗아가버렸다. 특히 살리 나스 전 정부에 이르러 최고점을 달렸던 성장일변도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의해 국민들의 삶은 빈곤의 구렁텅이로 하락할 뿐이었다. 말하자면 멕시 코 국민들은 이번 선거에서 ‘빈곤한 국민, 부유한 정부’를 거부한 셈이 다. 원주민들도 그래서 포포도 화가 났다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정치변화를 화산과 연결시키는 원주민들이 언뜻 보기에 미개(?)해 보일는 지 모른다. 그러나 포포와 원주민들의 삶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런 비난이 섣부른 것임을 곧 알게 된다. 포포는 원주민들의 일상의 삶 속에서 함께 살아 숨쉬며, 이들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고귀하고 성스러운 존재였다. 그리고 멕시코인들은 신화·종교의례 등을 통해 포포와 기나긴 인연의 끈 을 이어왔다.

포포는 지리적으로도 멕시코 고대문화의 중심지였던 멕시코 중앙고원에 위치해 항상 멕시코인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원주민들은 자신 들의 눈에 보이는 그대로 화산 포포를 바라본 것이 아니라, 화산 포포를 통해 세계와 우주를 해석하고 거기에 질서를 부여해왔다. 원주민들의 포 포에 대한 믿음은 그레고리오 성인의 날인 3월12일과 십자가의 날인 5월2 일에 인근 마을들이 함께 성대한 의례를 행하는 데서도 확인된다. 그리고 이런 기원에 대한 화답으로 포포는 비가 필요할 때 비를 주고, 농사 등에 해로운 거센 바람과 우박 등을 제거해주면서 이들과 함께 한다고 믿는다.

멕시코시티를 중심으로 멕시코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중앙지역 중에서도 중앙에 위치한 포포는 약 1억3천만년 전에 형성되었다. 포포는 ‘그의 생 애’ 동안 2만3천년 전, 1만5천년 전, 그리고 1만4천년 전 등 3번 커다란 폭발을 했다. 그러나 현재는 ‘연기를 뿜는 화산’이라는 지명이 보여주 듯 오랜 세월 동안 연기만 뿜어냈다. 포포의 옛날 이름은 ‘재를 내뿜는 곳’이라는 뜻의 살들리케우악이다.

이렇게 연기만 뿜던 포포가 2년6개월 전부터 종종 대규모의 화산재를 인 근지역에 내뿜어왔다. 마치 정치경제적 위기 속에 신음하는 멕시코인들의 타는 가슴을 대변하는 듯했다. 지난 94년 12월엔 멕시코시티와 더불어 준 위험지역에 위치한 공업도시인 푸에블라가 화산재로 뒤덮였고, 최고 위험 지역에 위치한 3백50여 마을의 7백50만명의 주민들이 안전지대로 긴급 대 피했다. 올 들어서도 포포는 활동을 중단하지 않았고, 지난 5월 중순에 화산 내부에서 커다란 폭발이 감지되었다. 화산재를 뿜는 횟수가 점차 늘 어나고 있다. 그러다 선거를 20일 정도 앞둔 지난 6월14일엔 2년반 만에 처음으로 수증기와 화산재가 2km 이상 치솟기까지 한 것이다.


치솟는 화산재, 분노는 “이제 그만”

그러나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화산 주변에 사는 원주민들은 ‘화가난 포 포’에 대해 끊임없이 기도를 올리면서도, 포포의 곁을 떠나라는 정부의 권고에 따르지 않았다. 이들은 “포포는 단지 화가 났을 뿐”이라면서 “ 포포가 피난할 필요가 있다면 우리에게 계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리고 선거가 집권 제도혁명당의 오랜 독주의 끝으로 결론지어짐에 따라 이제 ‘포포의 화’가 풀릴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물론 이번 선거에서 민심을 움직인 것이 이런 ‘미신적 요소’일 수만은 없다. 이번 선거는 68년간 독재에 대한 거부이며, 민주적 2000년대를 맞 으려는 멕시코 민중들의 소망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원주민이 아닌 멕 시코 민중들도 화산 포포의 지속적인 화산재분출 등으로 잔뜩 찌뿌린 하 늘이 이제는 맑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다. 새로운 희망에 부푼 멕시코 민중의 기쁨에 화답하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은 우리는 멕시코인이라는 동질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멕시코시티=김세건 통신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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