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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1997년07월24일 제 1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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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이로 서른일곱이다. 삼십대 중반을 넘긴 나이지만 그의 얼굴에서 세월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겉으로 보아서는 신촌 주변에서 음악을 하는 젊은이들이 조금 나이를 먹은 모습일 뿐이었다. ‘체제의 차이’는 서로를 가르는 장벽이 아니었다. 일상에서 오로지 음악만을 생각한다는 최건을 지난 7월10일 오전 김포공항 출국장에서 만났다. 그 정도의 명성 이라면 법석을 떠는 출국장을 떠올리겠지만 초라해 보일 정도로 조용했다 . 그는 음악밖의 질문은 대답하고 싶지 않은 태도였다. 13명의 일행 가운 데는 네살짜리 딸 ‘써니’가 있었지만 함께 사는 것으로 알려진 미국인 여성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었다.
- 내한 공연을 성공리에 마쳤는데.
= 몇차례 공연이 무산되어 걱정이 많았는데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환대를 받아 좋은 시작이라 생각한다. 이번 공연은 다음 공연을 위한 전초전의 성격이었다. 방송 공연말고 다른 무대에서도 한국의 팬들과 만나고 싶었 는데 성사되지 못해 안타깝다. 베이징에 사무실까지 마련하며 공연을 준 비한 ‘세계채널’쪽이 고생했다.
- 공연일정 이외에는 무엇을 하며 지냈는가.
= 서울은 꼭 오고 싶은 곳이었다. 남대문시장, 대학로, 세운상가 등 말로 만 들었던 서울의 이곳저곳을 살펴봤고 통일전망대에도 가봤다. 대학로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젊은이들의 자유로운 개성이 드러나는 곳이라고 느꼈 다. 세운상가에서는 악기를 구입하기도 했다.
- 내한 공연에서 강산에와 공연했는데 한국의 록에 대한 견해는.
= 강산에와는 방송사가 계획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어로 부른 <에루랄라>와 <미인>은 중국에서 CD를 들으며 알파벳으로 가사를 익혔다. 강산에는 음악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가수였 다. 개인적으로 상업적인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정통 록을 추구하는 로커들과 함께 공연하고 싶다. 그리고 한국은 음악적 인 기술이 많이 발달한 것 같다.
- 당신을 두고 중국의 록을 토착화한 인물이라고 평가하는데.
= 80년대 초반에 록을 접했는데 처음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듣다 보 니 차츰 록의 세계에 빠져들게 됐다. 중국 악기를 사용하며 연주를 하는 게 그런 평가를 하는 이유가 된 것 같다. 서구에서 말하는 정통 록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사회환경에 따라 음악의 형식은 달라질 수 있다고 생 각한다. 한국에서도 사물놀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이다.
- 일반적으로 당신에 대해 ‘반체제 가수’로 알고 있다.
= 록은 기본적으로 비판정신을 담고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중국인은 정 치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상생활도 어찌보면 정치의 연속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유’ ‘인권’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는 것은 사실이다. 음악은 나의 의사를 표현하는 훌륭한 언어이기에 가사를 쓸 때 여러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애쓴다. 정치적인 편견을 버리고 음악 자체만 으로 나를 이해했으면 좋겠다.
- 중국의 개혁·개방 과정에 나타나는 후유증이 당신의 음악에 드러난다 고도 하는데.
= 경제적으로 대단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러 가지로 어려운 점도 있지 만 크게 우려할 바는 아니다. 점차 좋은 방향으로 나가는 것은 사실이다. 내 노래의 메시지는 사회의 변화 속에서 각자의 개성을 잃어버리지 않기 를 바란다는 것이다.
- 중국에서 활동은 어떤 식으로 하며 음악적 경쟁자들은 없는가.
= ‘즉흥공연(라이브 공연)’에 비중을 두고 있다. 방송 출연에는 관심이 없다. 많은 록 밴드들이 활동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나에게 힘이 있다. 서로 추구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뭐라 평가할 수 없다. 나로선 억지로 상업성을 좇아가지 않으려 한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