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지성
1997년07월24일 제 167호 한겨레21

패권의 선봉장 ‘미임계 핵실험’

(사진/1952년 10월31일에 실시된 핵실험. 미임계 핵실험이 실시된 네바다 핵실험장의 오른쪽 철탑 밑에 지하핵실험장으로 통하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세계의 눈이 온통 화성탐사선 패스파인더에 쏠려 있던 틈을 타(?) 미국은 지구촌 패권을 겨냥한 또 하나의 ‘첨단기술’을 선보였다. 이름하여 ‘ 미임계 핵실험’. 미국은 지난 7월2일 미국 서남부의 사막지역에서 이 핵 실험을 성공리에 끝냈다.

이 실험이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핵폭발이 없기 때문이다. ‘미임계 핵실 험’이란 핵물질이 연쇄반응을 일으켜 폭발하기 직전의 상태에서 행해지 는 실험이다. 즉 핵폭발 없는 핵실험을 말한다.


교묘한 틈새 노려 세계 패권 꾀한다

어쨌든 일명 ‘리바운드’로 불린 이 실험은 미국 슈퍼컴퓨터 기술의 승 리이다. 미임계 핵실험을 위해서는 슈퍼컴퓨터를 동원한 정밀한 실험이 필요하다. 이미 미국은 이런 시대를 예상해 모의실험을 위한 기술을 축적 해 왔다. 모의실험을 규제하지 않은 것도 사실 따지고 보면 모의실험에 대한 미국의 자신감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사상 처음으로 모의실험이 행해진 실험장소는 네바다주의 환락도시 라스 베이거스에서 북서쪽으로 약 1백50㎞ 떨어져 있는 핵실험장이다. 3천5백 ㎢ 크기로 1951년부터 92년까지 미국이 실시한 1천30회의 핵실험 가운데 9백28회의 핵실험이 실시된 곳이다. 한해 운영비가 1억달러에 이르는 이 실험장에서 미국은 그동안 지하핵실험 8백28회, 대기권핵실험 1백회를 실 시했다. 이번 실험에 든 비용은 2천만달러.

일반적으로 핵폭탄은 고성능 화약의 폭발력으로 플루토늄을 압축해 연쇄 적으로 핵분열반응을 일으키는 ‘폭축형기폭방식’이 주류다. 플루토늄을 공모양으로 배치하고 그 주위에 화약을 붙여 동시에 폭발시키면 공의 중 심을 향해 플루토늄이 압축되면서 연쇄적으로 핵분열반응이 일어난다. 이 에너지로 삼중수소 등을 고온·고밀도로 닫아 태양에서 일어나는 것과 똑 같은 핵융합반응에 의해 거대한 폭발을 일으킨다. 미임계 실험은 이 연쇄 핵분열반응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까지만 플루토늄을 압축한다.

플루토늄 1.5㎏, 화약 75㎏이 사용된 모의실험은 이렇게 진행됐다. 우선 핵무기의 원료인 플루토늄을 고성능 화약과 함께 지름 30㎝의 원통형 분 석장치에 넣고 지하 3백m 지점에 있는 터널에 설치했다. 터널의 크기는 길이 9m, 너비 4.5m, 높이 3m. 그런 다음 화약을 폭발시켜 초고압 상태를 만들고, 이때 생긴 충격파로 플루토늄을 때려 화약의 성능과 핵물질의 상 태를 점검했다. 이번 실험의 폭발 규모는 TNT화약 30∼40㎏에 상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통상 이뤄지는 핵실험의 1천분의 1이다. 실험에 걸린 시간은 불과 몇 밀리초. 이 짧은 순간에 4백여가지의 관측장치들이 일시에 움직이면서 방대한 핵자료를 축적한 것이다.

미국이 이번 실험을 실시한 것은 현재 보유중인 핵무기의 안전성과 신뢰 성을 점검하기 위해서다. 핵무기는 수명이 20년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 기간이 지난 핵무기는 계속 쓸 수 있는지를 점검해야 할 필요성이 생 긴다. 플루토늄은 반감기가 2만년 이상이기 때문에 오래된 핵무기라 하더 라도 성질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문제는 화약이다. 화약은 화학적으로 불안정해 장기간 방치해두면 연소하는 데 문제가 생기거나, 저절로 폭발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오래된 화약이 설계대로 압축될 수 있는지, 안전하 게 유지관리할 수 있는지 알아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미국과 러시아에는 아직도 각각 1만발 이상의 핵폭탄이 있는 것으로 알려 졌다. 핵무기가 남아 있는 한 이들은 지속적으로 핵무기의 성능을 점검하 려 할 것이다. 실제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핵실험금지시대에서도 미 국의 핵우위를 유지할 수 있는 과학적 핵무기유지계획(SBSS)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실험도 이 계획에 따른 것이다. 반핵단체들의 추정에 따르면 미국 에너지부가 이 계획에 들이는 돈은 98년의 경우 4억달러나 된다.


변형된 형태의 핵 실험은 계속된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뒤를 이어 다른 핵강국들도 핵기술 유지·개발을 위해 잇따라 모의 핵실험을 실시할 것으로 내다본다. 프랑스가 지난 95년과 96 년에 세계의 비난을 무릅쓰고 남태평양 뮈뤼로아환초에서 핵실험에 강행 한 것도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이 발효되기 전에 이 기술을 확보하기 위 해서다. 프랑스는 이때의 실험을 통해 기폭에서 핵폭발까지의 반응을 일 으키는 고온·고밀도 상태를 슈퍼컴퓨터로 재현하는 기술을 거의 습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이번 실험을 통해 핵실험금지시대에도 불구하고 핵무기개발능력을 유지한다고 하는 21세기 핵억지 전략을 확고하게 보여줬다. 과거 지하핵 실험이 실시되던 네바다 핵실험장에서 종전과 같은 규모인 4백여명이 실 험에 참여한 것은 바로 미국의 의도를 숨김없이 드러내준다. 이런 전략 아래 미국은 오는 가을 ‘홀로그’란 이름으로 두번째 실험을 하는 것을 비롯해 98년까지 6번의 미임계 실험을 할 예정이다.

인류는 공멸을 피하기 위해 핵실험금지조약을 성사시켰다. 그러나 강대국 패권논리와 결합한 첨단기술 앞에서 이 소중한 성과는 빛을 잃어가고 있 다.

곽노필 기자/ 한겨레 생활과학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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