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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지성 |
1997년07월24일 제 1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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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한국 지식인 사회를 풍미했던 사회구성체 논쟁에서 이른바 ‘PD’ (민중민주주의)진영의 대표적 이론가 중 한 사람이었던 윤소영 교수(한신 대 국제경제학 교수·경제학)가 ‘음악의 헤겔’ 베토벤에 대한 이론적 연구에 나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는 이와 관련해 최근 마르크스와 프 로이트적 시각에서 베토벤의 삶과 음악세계를 조명한 책 <베토벤>(매 이너드 솔로몬 외 지음)을 편역하기도 했다. 그를 만나 베토벤 음악에 대 한 좌파 이론가들의 관점을 들어보았다. 그는 베토벤의 마르크스주의적 해석이야말로 90년대 한국의 ‘하급문화’에 대한 “발본적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경제학자가 갑자기 베토벤을 들고 나온 이유는 무엇인가.
=80년대 사회과학계에서 전개됐던 한국 사회성격 논쟁에 대한 회고를 통 해 약간 우회해 보자. 당시 논쟁에 개입하면서 내가 제시했던 ‘피디’라 는 입장은 알튀세르적인 마르크스주의를 이론적 근거로 하는 것이었다. 이번에 롤랑이나 솔로몬의 베토벤 해석을 재구성하면서도 나는 알튀세르 의 마르크스 해석 중 ‘토픽’이나 ‘절단’ 같은 특징적인 개념에 크게 의존했다. 이를 통해 마르크스와 베토벤 사이의 철학적 친화성에 주목하 면서 일체의 반동에 반역하여 근대의 이상을 포기하지 않았던 프로메테우 스적인 베토벤상(像)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이런 관점이 80년대 문예운 동의 주류였던 인민주의적 ‘민족음악’이나 90년대 들어 운동권 출신 포 스트주의 평론가들에 의해 복권된 록이나 재즈 같은 ‘하급문화’에 대한 발본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체의 반동에 반역하여 근대의 이상 추구
-베토벤과 마르크스, 또는 당신이 강조하는 스피노자-마르크스주의의 관 계는 무엇인가.
=온갖 포스트주의 증후군으로 특징지어지는 ‘문명의 불안’이라는 세기 말적 상황과 대결하기 위해서는 마르크스의 경제 비판을 스피노자의 이데 올로기 비판과 결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베토벤 음악을 이러한 스피노자-마르크스주의에 적합한 정동(情動)의 치료, 즉 이성으로서의 ‘ 로고스’와 접합되는 정념(情念)으로서의 ‘미토스’로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베토벤은 칸트나 헤겔의 딜레탕트적 예술관에 반대하여, 예술 과 과학만이 더 높은 삶에 대한 암시와 희망을 줌으로써 인간을 신의 수 준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베토벤의 ‘지혜/지식’(Witz )은 칸트를 전도하는 괴테(<파우스트>)가 아니라 오히려 헤겔을 전도 하는 마르크스(<자본>)나 스피노자(<윤리학>)의 그것과 비교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자 가운데 베토벤에게 주목한 사람이 있었나.
=누구보다도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아도르노를 꼽을 수 있다. 그렇지만 먼 저 레닌과 베토벤이라는 화두를 숙고해 보는 것도 좋다. 레닌의 아내 크 룹스카야의 회고에 의하면, 일찍부터 베토벤의 열렬한 애호가였던 레닌은 1913년 어느 음악회에서 현악 4중주를 듣고난 뒤 아주 깊은 파토스에 빠 졌다. 스토아주의적 금욕과 칸트주의적 숭고에 철저했던 그는 이후 베토 벤을 더이상 듣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만일 포스트나폴레옹적 반동에 대한 반역을 상징하는 <함머클라비어>소나타나 <합창>교향곡을 듣고 정동의 치료를 경험할 수 있었다면 레닌은 무어라고 말했을까. 솔직 히 <인터내셔널>가(歌)보다는 흔히 ‘환희의 송가’로 불리는 <합 창>교향곡의 피날레 ‘기쁨의 노래’가 더 ‘인류 보편의 라 마르세예 즈’ 가 아닐까?
-<함머클라비어>소나타나 <합창>교향곡을 그렇게 강조하는 특별 한 이유라도 있나.
=베토벤의 후기 음악을 대표하는 이 작품들은 말하자면 그의 ‘한계양식 ’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포스트민족적 국제주의를 상징하는 ‘기쁨의 노래’는 화가 클림트가 <기쁨이라는 신들의 아름다운 불꽃, 온 세상에 보내는 이 키스>라는 그림에서 잘 표현하고 있듯이 ‘승화된 에로스의 윤리적 미’를 의미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들은 19세기 내내 아주 난해한 음악으로 간주됐다. 이러한 몰인식은 결국 ‘기쁨의 노래’ 에 대한 아도르노의 고통스러운 부정으로 이어졌다. 그가 말하는 음악의 미학적 자율성 또는 고유성이란 ‘초개인성의 음악’이라는 이상을 포기 한 대가라고 하겠다.
-음악가 베토벤은 역시 음악가 베토벤이다. 그를 음악사 속에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맞다. 그렇지만 베토벤은 음악사에서 이례적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동시에 불레즈가 지적했듯이 베토벤을 ‘착취’했던 사례에 대해 서도 주의해야만 한다. 특히 베토벤을 ‘순수음악’이라는 자신들의 관점 에서 해석한 슈만-멘델스존-브람스의 낭만주의 음악이라든지 이것과 친화 성을 갖는 리츨러의 베토벤 비평을 지적하고 싶다. 그들의 아전인수식 해 석은 2차세계대전 와중에 히틀러의 생일을 축하하며 <합창>교향곡을 연주한 푸르트벵글러의 비극으로 이어지고, 베를린 장벽에서 <합창> 교향곡으로 사회주의 패망을 기념한 번스타인의 소극(笑劇)으로 되풀이된 바 있다.
베토벤의 백미는 반역적 사상에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베토벤 해석에 반대한 조류는 없었나.
=물론 있었다. 리스트-바그너-슈트라우스-말러의 낭만주의 음악, 베커-아 도르노의 베토벤 비평, 클렘페러-뵘-바렌보임의 <합창>교향곡 연주가 바로 그것이다. 그들의 해석은 베토벤 음악에서 쇤베르크의 포스트바그너 주의적인 음악을 예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 경우에도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도르노 미학의 결함에 대해서는 앞에서 말한대로 다. 게다가 쇤베르크의 모더니즘 음악과 스트라빈스키의 신고전주의 음악 사이의 대결이 있었고, 음악의 사회적 유용성을 거부하는 쇤베르크에 대 한 아이슬러의 이의제기가 있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우선 베토벤 자 신에게서 음악의 전화(轉化) 가능성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베토벤 음악의 한국적 수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번에 솔로몬의 평전을 번역하면서 베토벤을 좌파적으로 해석한 점에 대해 항의한 어떤 음악 애호가를 떠올렸다. 단지 베토벤의 경우에만 국한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로서는 그의 음악을 딜레탕트적 취미판단을 넘 어 근대사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음악을 손쉬운 오락이 아니라 연구해야 마땅한 고귀하고 승화된 예술이라고 생각했던 베 토벤이 자신의 음악에 내포된 반역적 사상에는 전혀 무관심한 채 오히려 유명 연주자나 희귀 음반에만 열광하는 음악 애호가들을 본다면 무어라고 말했을까. 마르크스나 스피노자가 갈파한 대로 ‘무지’가 역사에 도움이 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