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문 기자의 인물탐험
1997년07월24일 제 167호 한겨레21

쑥뜸에 취한 30년, 김진섭씨

에서 쑥내가 났다. 갓 쪄낸 쑥떡에서 나는 것 같은 보드랍고 연한 향이었 다. 방금 쑥뜸을 뜨고 왔다고 했다. 점심 때 먹은 짜장면이 얹혔는지 속 이 더부룩해 배에 한방 놓았다나. 땀이 번들거리는 얼굴로 씨익 웃는다. 그런데 쑥내가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일상은 온통 쑥, 쑥, 쑥 이었다. 쑥을 빻고, 그걸 심지처럼 말고, 그리고 그걸 쑥뜸기에 올려 태 우고. 머리와 손은 솜털 같은 쑥가루가 앉아 뿌유스름했다.


원자폭탄에도 솟아나는 생명력에 반해

김진섭(58). 30년 넘게 쑥뜸에 취했다. 불기운에 실린 쑥진으로 살갗을 태워 몸을 다스리는 쑥뜸의 신비를 찾아 헤맸다. 처음엔 그걸 과학으로 풀려고 했다. 그러나 터무니없는 결론. “쑥이 사람을 만들었다.” 달나 라에 사람의 발자국이 찍힌 지 이미 오래고, 소저너가 뒤뚱거리며 화성을 기어다니는 마당에 웬 허튼소리를 던지는 것일까. “환웅천왕이 태백산 신단수 밑에 신시를 열고 세상을 다스렸다잖아요. 그때 사람이 되고파 찾 아온 곰과 호랑이에게 준 게 뭡니까. 쑥과 마늘이지요. 그 쑥을 먹고 사 람이 된 웅녀가 단군을 낳았으니, 단군의 후손인 우리 몸에 쑥이 흐르고 있는 거죠.”

그의 쑥자랑은 무한대다. 역사책과 민간의 속설을 넘나들며 열을 올린다. 단오날이 되면 궁중에서 쑥으로 호랑이를 만들었는데, 그게 신령스러운 쑥의 힘으로 잡귀를 물리치려는 뜻이었단다. 백성들은 이사를 가면 짐을 들여놓기 전에 반드시 말린 쑥을 집 네 귀퉁이에 놓고 태웠으니, 이는 쑥 냄새로 악취를 쫓는 지혜였다는 것이고. 그뿐만이 아니다. 여름밤 불을 지핀 풀섶에 생쑥을 얹으면 오래도록 연기를 피워 모기를 쫓는 데 그만이 었다고. 쑥이 우리 민족을 살려온 먹거리였다는 대목에선 얼굴까지 빨개 진다. 보릿고개에 오르면 지겹도록 먹은 풀이 쑥이라는 것이다. 쑥으로 보리개떡을 해 먹기도 하고, 멀건 죽을 끓여먹기도 했단다.

그러나 그에게 쑥은 무엇보다 약이다. 그건 쑥의 놀라운 생명력에서 나온 다고 한다. 오죽하면 “쑥대밭이 됐다”는 말까지 나왔겠느냐는 거다. 그 건 폐허에서도 잡초처럼 살아남는 쑥의 질긴 생명력을 찬미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우리땅 어디에고 파란 쑥이 돋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쑥의 생명력은 바탕을 가리지 않는단다. “들에 제초제를 뿌려도 며칠 안 가 고개를 쑥 내미는 게 쑥입니다. 2차대전 당시 히로시마가 원자폭탄을 맞 고 잿더미로 변했다죠. 그때 잿더미를 뚫고 가장 먼저 녹색 이파리를 피 워올린 게 바로 쑥이에요.”

그는 애초 쑥과는 인연이 멀었다. 쑥은 오히려 두려움의 기억 속에 갇혀 있었다. 쑥뜸의 뜨거운 열기가 남긴 상처 때문이었다. 6·25전쟁 중에 파 편을 맞아 다리를 다쳤다. 변변한 치료약이 없던 때라 어른들 말만 듣고 쑥뜸을 놓았다가 된통 당했다. 살갗을 태우는 불기운에 혼비백산한 것이 다. 다리에는 금세 파편 자국 못지 않은 화상이 생겼다. 그후 오랫동안 쑥뜸 하면 불에 달군 쑥꼬챙이라는 생각부터 먼저 났다. 그러던 그가 지 금 쑥뜸에 미쳐 있으니 인생이란 알 수 없다고 여길 수밖에.

그의 발명품 ‘신기구’(神氣灸)는 그런 어릴 적 기억에서 아이디어를 길 어왔다. 뜨겁지 않고, 흉터도 생기지 않게 쑥뜸을 놓을 수는 없는 것일까 . 그런 의문을 풀기 위해 수만개의 쑥심지를 태웠다. 팔뚝이 시험관이었 고, 뱃거죽이 리트머스 시험지였다. 쑥뜸기 신기구는 그런 ‘자해’ 끝에 탄생했다. 쑥뜸의 불기운이 곧바로 살갗에 닿지 않도록 황토에 콩가루와 생약재를 섞어 뜸판을 만든 것이다. 뜸판에 쑥봉을 올려놓고 불을 붙인 다음 뚜껑을 덮으면, 일회용 뜸 50개에 해당하는 열량인데도 살갗을 해치 지 않았다.


5천년 내려온 부작용 없는 신약

쑥뜸의 효력은 무궁무진하다. 그건 스스로 체험한 신비이기도 하다. 지난 해 한가위 무렵이었다. 뜸판을 만들려고 금형을 짜다 엄지손가락이 뭉텅 잘려나갔다. 의사가 잘려나간 부분을 떼어버리자는 걸 부득부득 억지를 부려 붙이고 쑥뜸을 떴다. 1년이 채 안 돼 살이 붙고 감각이 되살아나고 있다. 얼마 전엔 공장을 지으려다 대못을 밟아 발등까지 뚫린 적도 있다. 보통 사람 같으면 파상풍약 바르고 항생제 치료를 받아야 할 몸인데도 뜸 을 떴다. 사흘 만에 거뜬하게 나아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는 이런 자 기 말이 믿기지 않으면 믿지 말라고 배짱을 부린다. “애가 넷인데 아직 까지 병원에 보내본 적이 없어요. 집에는 소화제나 위장약도 없죠.”

서양의학에는 믿음이 덜하다. 한때 만병통치약으로 불리던 페니실린도 이 제는 부작용이 우려돼 동물에게만 쓰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페니실린에 이어 스트렙토마이신 테라마이신 같은 항생제가 엄청나게 쏟아졌지만, 병 균은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는 것이다. 맷집 생기듯이 곧바로 내성을 만들 어내는 병균의 생명력에 비하면 사람의 공격은 무력하기 짝이 없단다. 그 는 ‘병균과의 끊임없는 전쟁’에서 서양의학에 판정패를 내린다. “동양 의학은 음양과 오행의 법칙에 따른 상생과 상극관계로 질병을 봅니다. 몸 에서 상생이 생겨날 때는 건강한 상태이고, 상극이 빚어지면 병에 걸린 상태로 보는 거죠. 그래서 동양의학은 몸의 실한 부분은 덜어내고, 허한 부분은 돋워주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병균이 아니라 몸 전체를 상대하는 거죠.”


집까지 팔아가며 쑥뜸기 개발에 몰두

그는 발명가임을 자처한다. 젊었을 때 보건소 공의로 있던 이모부를 도우 며 간단한 의학지식을 익혔지만, 수박 겉핥기였다는 것을 안다. 보건소를 관두고 침구학원도 다녔지만, 역시 그 깊은 세계를 다 알지 못한다. 그래 도 그런 게 쑥뜸기 발명의 길에선 고마운 동반자다. 보건소 일을 관두고 장사나 해볼까 해서 송추유원지 근처에 터를 잡았을 때였다. 의사고 병원 이고 없던 시절이었다. 보건소에서 일했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사람들 이 걸핏하면 찾았다. 치료에 자신이 없던 그에게 쑥뜸은 최고의 처방이었 다. “현대약품은 오랜 연구에 동물실험, 임상실험을 거쳤지만 부작용이 남습니다. 하지만 쑥뜸은 단군시절부터 5천년 동안 부작용없는 민간요법 으로 살아남았습니다. 아스피린 역사가 1백년에 불과하지만 뜸은 5천년 역사를 가진 겁니다.”

발명이란 게 갈수록 힘들단다. 처음엔 아이디어만 좋으면 됐는데, 지금은 신경쓸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송추에서 ‘아이디어맨 클럽’을 창설하고 , 연탄폐열을 이용한 난방장치를 고안했을 때만 해도 몰랐던 현실이었다. 쑥뜸기를 만드는 데만 벌써 집 몇채를 까먹었다. 보통 아이디어에서 생산 까지 2∼4년 걸린다고 한다. 해마다 1억원 가량이 들어간다. 그걸 모르고 무작정 달려들었다가 낭패를 많이 봤단다. 곶감 빼먹듯 재산 빼내다 결국 엔 집까지 팔아 치웠다. 지금은 판자로 지은 공장 하나가 전 재산이다. 가끔 속이 심란할 때 홀로 쑥을 태운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를 쫓 으며 사람이 되고자 했던 곰의 인내를 생각한단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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