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1997년07월24일 제 167호 한겨레21

주인없는 '자원의 보고'

남극 과학기지인 세종기지가 준공된 것은 지난 88년 2월. 이때부터 우리 나라는 1년 단위로 월동연구단을 15명씩 파견하고 있다. 또 남극의 여름 에 해당하는 12월과 1월에는 하계연구단이라는 이름으로 2달 동안 50여명 에 이르는 대규모 연구인력을 파견한다. 남극기지에 1년 동안 대원들을 파견하는 일차적 목적은 남극의 자연환경에 대한 연구다. 남극의 해양지 질이나 생태계 등에 대한 연구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 면을 보면 단지 연구만이 목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현재 남극대륙에는 세종기지를 비롯해 18개국에서 42개의 기지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와 오스트레일리아처럼 2개 이상의 기지를 확 보하고 있는 나라도 10여개국에 이른다. 이웃 일본도 2개의 기지를 운영 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이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기지는 한곳뿐이다. 나 머지 한곳은 막대한 운영비를 투자하고 있으면서도 개점휴업 상태다. 이 처럼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여러 개의 기지를 경쟁적으로 운영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미래에 있을 남극분쟁에 대비해 기득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 다.

61년 남극조약이 발효되기 전까지 남극은 국가간의 무혈 전쟁터였다. 현 재 세종기지가 위치한 킹조지섬만 해도 영국, 칠레, 아르헨티나 등 3개국 이 서로 영토소유권을 주장하던 곳이어서 3개의 이름을 갖고 있을 정도다 . 이런 영토싸움은 61년 당시 남극에서 과학활동을 벌이던 미국, 일본 등 12개국이 남극조약을 맺으면서 일단 중단된다. 남극조약에 따라 주변해역 과 대륙붕에 풍부하게 매장돼 있는 석유와 천연가스, 기타 광물자원에 대 한 개발도 앞으로 50년 동안 금지돼 있다.

하지만 국가간 힘의 균형이 깨지게 되면 남극조약은 금방 휴짓조각이 되 기 쉽다. 설령 조약이 깨지지 않더라도 50년 뒤 지금 조약의 효력이 종료 되면, 남극에 대한 국가간 힘겨루기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때 기득권을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남극에 대한 자료수집과 연구성과뿐이다. 남극 탐사활동은 사실상 총성없는 전쟁인 셈이다.

한국도 세종기지를 세운 직후인 89년 남극조약협의당사국 지위를 획득해 남극에 관한 중요결정에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과학기지 설치 또는 과학탐사대 파견과 같은 실질적 과학활동을 수행하고 있는” 나라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남극에서의 ‘과학활동’이 단순한 과학활동에만 그 치지 않는다는 실례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남극에 또하나의 기지를 건 설하는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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