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1997년07월24일 제 167호 한겨레21

난장판 경선, 깨지느냐 마느냐

(사진/여권 주변에서는 7월21일 경선 전에 일부 후보가 뛰쳐 나갈 가능성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7월9일 대구에서 열린 신한국당 합동연설회.)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 경선전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후보간 우열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현재 각 언론사의 여론조사 등을 종합해볼 때 대 의원 지지도에서 이회창 후보가 여전히 선두를 지키고 있고, 세대교체 바 람을 몰고 온 이인제 후보가 상당한 차이로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뒤를 이어 이한동 김덕룡 이수성 후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2위 자리를 넘보고 있으며, 박찬종 후보는 대중적인 인기도와 달리 역시 대의원 지지 에서는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최병렬 후보는 대세에 별 영향을 끼치 지 못할 정도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경쟁’이 아닌 ‘전쟁’

지난 7월5일부터 시작된 시·도별 합동연설회는 당초 예상과 달리 판세에 그다지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남은 최 대의 변수는 후보간 합종연횡이다.

후보간 합종연횡은 현재 이수성 이한동 후보가 가장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자력으로는 2위 진입이 쉽지 않기 때문에 7월21일 전당대회 이전에 후보 단일화를 이뤄야 단숨에 현재의 경선 구도를 역전시킬 수 있기 때문 이다. 불안한 2위를 달리고 있는 이인제 후보도 박찬종 김덕룡 후보 등 다른 후보들과의 연대를 추진하고 있다. 이회창 후보도 1차 투표로 끝낸 다는 방침 아래 김덕룡 후보 등과의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어느 경우든 전당대회 이전에 합종연횡을 통한 후보단일화에 성공할 경우 경선 판도는 한차례 요동을 치면서 예측불허의 상황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수성 이한동 후보가 단일화 합의를 끌어내는 경우에는 갈 곳 없는 민주계의 선택과 맞물려 이회창 후보와 결과를 점치기 어려운 대 회전이 전개될 전망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누구로 후보단일화를 하느냐 하는 핵심적인 문제를 해결 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수성 이한동 후보간의 후보단일화 노력 도 주변의 활발한 움직임과 달리 서로 ‘내가 후보를 해야 한다’는 입장 을 고수하고 있어 1차 투표 이전에 성사될지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어쨌든 후보간 합종연횡은 그래도 경선이라는 경기장 안에서 이뤄지는 것 들이다. 신한국당 경선전에서 합종연횡의 성사여부보다 더욱 주목되는 부 분은 현재의 경선 틀이 끝까지 유지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즉, 경선 판을 팽개치는 후보가 나올 것인가가 앞으로 신한국당 경선전을 관전하는 중요 포인트가 되고 있다. 이는 여당 내부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연말 대 선 구도를 변화시키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되는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 경선전은 후보간 비방과 인신공격을 넘어서 ‘너죽고 나죽자’식의 행동도 서슴없이 나오는 등 막가고 있다. 한 정당 안에서의 경쟁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 는 것이다. 난장판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금품수수, 정치를 그만둬야 할지도

이런 상황이라면 경선전에 이탈자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설령 경선을 그럭저럭 치르더라도 경선후 일부 탈락자가 결과에 불복해 탈당하는 사태를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 다.

박찬종 후보와 이회창 후보간에 진행되고 있는 금품살포설을 둘러싼 전투 는 그 서막을 알리는 전주곡으로 비춰진다. 7월10일부터 “일부 후보가 지구당위원장에게 금품을 살포한 증거를 갖고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던 박 후보는 13일 드디어 ‘일요일 밤의 반란’을 감행했다. 그는 이날 저 녁 기자간담회에서 “돈을 뿌린 쪽은 이회창 후보”라고 구체적인 이름을 거명했다. 박 후보는 “이회창 후보쪽이 후보등록을 위한 대의원 추천을 받기 직전 2명 이상의 원외 지구당위원장에게 조직활동비 명목으로 5천만 원씩을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확보하고 있는 증거자료는 녹음테이프 나 문서”라면서 “검찰이 수사에 착수할 경우 이를 제출하겠다”고 덧붙 였다.

이회창 후보쪽은 즉각 반격에 나섰다. 이 후보 진영의 박성범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박 후보의 주장에 대해 한마디로 경악스럽고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면서 “박 후보는 자기 주장의 근거와 관련 자료를 즉각 공개 하라”고 요구했다. 박 대변인은 이날 저녁 세번째 성명을 통해 “박 후 보가 금품수수 제공을 주장하면서도 근거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국면을 전환시키기 위 한 옳치 못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한다”며 “박 후보는 자신의 거취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쪽 모두 물러설 수 없는 벼랑끝 싸움에 돌입한 것이다. 금품수수설의 진상이 어떻게 밝혀지는가에 따라 어느 한쪽은 정치를 그만둬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사실이라면 대쪽 이미지의 이회창 후보는 7월21일 전당 대회에서 후보로 당선되더라도 원인무효 시비에 휘말릴 것이며, 사실이 아니라면 박찬종 후보는 정치권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피비린내나는 보복?

통상 이러한 정치적 사건의 진상 규명이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물 론 시간이 지나면서 금품수수설은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당사 자인 박 후보는 당 선관위의 거듭된 자료 제출 요구에도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 검찰에 내겠다”고 버티고 있다. 박 후보쪽의 이러한 태도로 볼 때 끝까지 자료를 내놓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검찰도 “고소고발없이 주 장만 갖고는 수사할 수 없다”며 가능한 한 불개입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진상 확인에 상관없이 박 후보의 이회창 후보 공격만으로도 이미 양쪽은 회복하기 힘들 정도의 정치적인 상처를 입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 지적이다. 의도 했든 않았든 더이상 두 사람이 같은 당에 남아 있 기가 힘든 상황인 것이다. 민주계의 한 중진의원은 “이번 사태는 박 후 보가 이회창 후보와는 같이 가지 않겠다는 결심을 굳힌 것을 의미하지 않 겠느냐”며 “어떻게 결론이 나든 결국 어느 한쪽은 당을 떠나야 하는 사 태가 올 것 같다”고 말했다.

또다른 대결의 중심 축은 이회창 후보와 이수성 후보간에 형성되고 있다. 지난 7월11일 부산에서 열린 합동연설회는 두 사람의 틈이 어느 정도로 벌어져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실례였다. 이회창 후보에 대해 ‘수 구연합 세력’이라며 공격해온 이수성 후보는 이날 연설에서 “다음 대통 령이 어떤 사람이 되느냐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면서 “잘못되면 피비 린내 나는 보복과 새로운 분열이 시작될 우려가 있다”며 듣기만 해도 섬 뜩한 용어를 동원해 정치보복설을 제기했다. 이름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는 않았지만, 정치권에서는 최대의 라이벌인 이회창 후보를 겨냥한 것으 로 보고 있다. 이회창 후보가 민주계와 소원한 관계임을 감안해 민주계의 본거지에서 대의원들에게 ‘협박성’ 경고를 했다는 분석이다.

이회창 후보는 이에 대해 이날 “내가 대통령이 되면 민주계에 불이익을 제기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민주화 투 쟁을 이끈 이 나라 민주화 동지인데 누구를 구분하고 배척할 수 있느냐” 고 즉각 반박했다. 이회창 후보 진영의 박성범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 최근 모 후보가 민주산악회 회원들을 상대로 이회창 후보가 집권하면 정 치보복을 당할 것이라는 악성 음해를 계속하고 있는 데 대해 충격을 금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물론 박성범 대변인이 겨냥한 상대는 이수성 후보 였다.


‘중대결단’들먹이는 이수성

다음날인 7월12일 제주 연설회 직전 후보대기실에서 이수성 후보는 이회 창 후보에게 “어제 부산대회에서 이야기한 ‘피비린내 나는 정치보복’ 은 야당이 집권할 경우 그럴 수 있다는 말이었는데, 잘못 받아들여졌다” 고 한발 뒤로 뺐다. 이회창 후보도 이에 대해 “나도 야당이 집권할 경우 그렇게 될 것이라는 말로 들었다”고 응대했으나, 두 사람의 표정에는 싸 늘한 기운이 역력했다.

이회창-이수성 두 후보의 대립은 이수성 후보의 부친을 비난하는 내용의 괴문서를 둘러싸고도 여전하다. 지난 7월1, 2일에 ‘이수성 가계 특성’ 이라는 제목의 13쪽짜리 문서가 국회의원회관에 나돌자, 이수성 후보쪽은 이 유인물을 주간 내일신문에 제보한 이병하씨가 이회창 후보 진영에 가 담한 박우병 의원의 비서관인 점을 들어 이회창 후보쪽에 의심의 화살을 겨누고 있다. 이수성 후보쪽은 7월10일 “당이 괴문서 사건을 오는 21일 경선전까지 명백히 밝혀주지 않을 경우 심각한 경선 후유증이 예상된다” 고 공식적으로 경고했다. 이회창 후보쪽은 이에 대해 “이병하씨가 그 문 서를 외부에서 입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판국에 우리에게 혐의를 뒤집어씌우는 것은 정치적인 음해”라면서 “당 선관위나 검찰에서 진상 을 밝히라”며 맞받아쳤다.

경선 이후 어느 한쪽이 다른 쪽에 승복하기에는 감정의 골이 너무 깊어 보인다. 실제로 이수성 후보 진영에서는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경우 ‘중대 결단을 할 수도 있다’며 이탈 가능성을 언급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이수성 후보쪽의 한 핵심 관계자는 “민주계가 우리를 끝내 물먹여 이회 창 후보가 대통령 후보를 거머쥘 경우 우리가 당에 남아 있기 어려운 것 아니냐”고 실토했다. 이회창 후보쪽도 “일반 국민과 대의원들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주자가 탈락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다”면 서 “만일 이러한 대세가 뒤집힐 경우 이를 어떻게 수용할 수 있겠느냐” 고 반문했다.

박찬종 후보나 이수성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향해 공격의 칼날을 이처럼 예리하게 벼리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나를 밀어주지 않으면 당이 깨 질 것”이라는 벼랑끝 전술을 통해 민주계와 김 대통령을 압박함으로써 마지막 뒤집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이 후보는 여러 조건상 이회창 후보를 제치고 민주계의 지지를 받아 경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스스로 판단해왔던 만큼 현재의 열세 국면을 인정하거나 수용하기가 어렵기 때문 이다.


판 안 깨져도 후유증 심각할 듯

그러나 문제는 이 시도가 단순한 협박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영남 후보론이 양쪽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에서 보듯 탈당 이후 독자적인 세력화나 야권 후보와의 연대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핵심 당직자는 “김심이 중립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주자 들의 이탈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는 불공정성 시빗거리를 제공하지 않겠 다는 것”이라며 “그런데도 주자들간에 이런저런 이유를 내세워 싸우고 있는 것은 탈당하기 위한 명분을 쌓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고 우 려했다. 김 대통령의 한 핵심 측근 의원도 “지금 청와대의 관심은 누가 후보가 되느냐 하는 것보다는 경선 판이 깨지는 것 아니냐에 온통 쏠려 있다”며 “현재 상황으로 볼 때 자칫 판이 깨지거나 무사히 전당대회를 치르더라도 경선 후유증이 상당히 심각할 게 뻔하다”고 말했다.

여권 주변에서는 경선 이후에도 불복하는 주자보다 더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7월21일 경선 전에 판을 뛰쳐나가는 경우로, 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왕 딴 마음을 먹고 있는 경우라면 경선에 서 패배한 뒤 딴 살림을 차리는 것은 경선에 불참하는 것보다 명분에서 뒤지기 때문이다.

경선 전에 이탈하는 후보가 있을지 여부는 결국 합종연횡의 성공 여부와 직결된다. 경선의 마지막 최대 변수인 후보간 합종연횡이 성공할 경우 막 판 역전을 노리면서 끝까지 가겠지만, 1차 투표전 합종연횡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차라리 다른 선택을 감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경선전 이탈자는 후보 단일화 문제가 판가름날 것으로 보이는 7월17일쯤이면 좀 더 분명해질 전망이다.

김종철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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