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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
1997년07월24일 제 1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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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의 목을 학교 앞에 전시하고 입안에 “경찰이여 살인을 멈춰보라 ”는 도전장을 남긴 엽기적 살인사건의 범인이 중학 3년생으로 밝혀지면 서 일본이 발칵 뒤집혔다. 도대체 그 어린 소년이 어떻게 이렇게 잔인한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는지 원인분석할 때마다 그 주범의 하나로 떠오르는 게 만화다. 만화왕국 일본도 결코 유해만화 논쟁에서 자유롭지는 못한 것 이다.
일본에서도 유해만화 논쟁은 10년 주기로 꾸준히 반복돼 왔다. 그러나 지 난 90년 다시 촉발된 유해만화 논쟁은 조금 사정이 달랐다. 청소년보호육 성조례 제정에 따라 유해도서로 지정된 만화를 청소년에게 판매한 사람을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기 때문이었다. 그전까지는 법적 근 거가 없었으므로 단순논쟁에 그쳤다.
90년 유해만화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은 와가야마현의 한 지방신문에 실린 ‘소년소녀만화-과격한 성묘사에 대한 비판’이라는 독자의 기고문이었다 . 이를 계기로 주부들을 중심으로 ‘만화로부터 어린이를 지키는 모임’ 이 결성돼 유해만화 추방 서명운동에 들어갔고, 이 움직임은 금방 도쿄, 오사카, 요코하마 등 다른 현으로 순식간에 확산됐다. 이런 사회 분위기 탓에 유해도서지정 조항에 만화를 포함시키기 시작한 지방자치단체 수가 갈수록 늘어났다.
화들짝 놀란 일본의 만화출판사들은 자율규제를 선언하고 청소년에게 유 해하다고 판단되는 만화에 스스로 ‘성인만화’ 표시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 91년 2월 청소년에게 유해만화를 판 혐의로 도쿄 서점 주인 3명이 체포됐다. 약식기소돼 모두 벌금형으로 풀려나기는 했지만 그 런 혐의로 체포된 것은 처음이었던 만큼 만화계의 충격은 컸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확산되자 만화가들은 물론 만화출판사들도 적극적으로 반대투 쟁에 나섰다. 유해만화 지정은 헌법상에 보장된 출판·언론·표현의 자유 를 침해하는 것이고 권력에 의한 표현의 침해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반론 요지였다. 만화가들은 ‘만화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모임’을 결 성해 선봉에 섰다.
여기까지만 보면 청소년보호법이 막 시행된 우리와 현상적으로는 비슷하 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 보면 엄청난 차이가 있다. 먼저 일본에는 우리 와 같은 심의제도가 없다. 지자체에서 스스로 판단해 유해만화로 지정, 고시하면 그 만화는 청소년에게 팔지 않으면 그뿐이다. 만화가는 오직 창 작에만 전념하면 된다. 우리도 형식적으로는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나 유해만화 여부의 판단에 자신이 없을 경우에는 청소년보호위원회나 간행 물윤리위원회에 자문을 구할 수 있도록 돼있는 게 덫이다. 유해만화로 지 정될 경우 판매에 결정적 타격을 입게 되는 만큼 누구나 미리 자문을 구 하려 들게 아닌가? 말이 좋아 자문이지, 사실상의 사전심의다. 또한 일본 의 경우는 유해만화 지정의 주체가 정부가 아니라 각 도·부·현이라는 지방자치단체다. 지자체마다 판정기준이 조금씩 달라 지자체의 유해만화 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그중에는 주민들과 협의해 스스 로 유해만화 지정을 하지 않는 지자체도 더러 있다.
더 중요한 건 일본과 우리나라의 유해만화는 천양지차란 점이다. 일본은 문화적으로 성과 폭력에 대단히 관대한 나라다. 일본에서 청소년 유해만 화로 지정된 만화는 우리 기준으로 본다면 ‘포르노 만화’다. 그렇게 관 대한 기준에도 일본 만화가들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난리를 친다. 한·일간의 유해만화 판정 기준의 차를 예로 들어본다면 일본에서는 청소 년만화도 아닌 아동만화에 불과한 <드래곤볼>도 우리나라 청소년보호 법상으로는 유해만화로 지정되기 십상이다. 또 일본의 유해만화 판정기준 은 대부분 성표현과 관련된 것이지 폭력은 거의 문제삼지 않는다. 우리 만화가들이 얼마나 극심한 표현의 제약을 받고 있는지 대비되는 단적인 예다.
김이랑/ 만화평론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