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1997년07월24일 제 167호 한겨레21

언론이 만화를 들볶는다

이재현/ 우리만화연대모임 이사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청소년 폭력에 대한 발명, 혹은 발견이 열심히 진 행되고 있다. 여기서 발명이나 발견이란 말을 쓴 것은 결코 수사학이 아 니다. 청소년 하위문화에 관한 연구 중 일부는 바로 그 하위문화를 통합 해내려는 지배 제도의 노력에 관해서도 이루어져 왔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언론의 히스테리적 반응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연구에 의하면, 소위 일탈적 혹은 반사회적 행위들이 먼저 경찰, 법관, 언론에 의해서 ‘발견’되며, 당연하게도, 발견 직후 그 행위는 더 욱더 급증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의 사회적 실체로 청소년 폭력 자체도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문제에 대한 반 응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조작되는가 하는 점이다.


일본은 왜 난장판이 되지 않았는가

내가 보기에, 청소년 폭력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일진회를 구성한 것은 일간신문이며 공주파를 구성한 것은 TV뉴스이다. 언론은 청소년 폭력을 낳고 있는 배경과 원인의 구조적 복합성을 섬세하게 따져보려 하지 않고 마구잡이 마녀사냥에서 주동자로 나서고 있다. 80년대 용어로 하면 ‘동 뜨고 있는’ 것이다. 경찰과 검찰은 제도 언론의 선동에 넘어가서 대대적 단속에 들어갔다. 학교폭력에 대해 전쟁을 선포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폭 력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두환과 노태우에 대해서도 사면을 거론하면서 말이다.

특히, 어처구니없는 사실은 제도 언론의 이번 과잉 진압을 정당화하고 있 는 것이 일본만화라는 점이다. “폭력적이고 음란한 일본만화를 본 청소 년들이 모방 범죄에 나서고 있다”는 게 제도 언론의 일치된 목소리이다. 이런 논리라면, 그런 만화가 유통되고 있는 일본은 이미 난장판이 되었어 야 했다. 한마디로, 일본만화는 속죄양이 된 셈이다. 내 눈에는, 일본만 화가 한국 언론에 의해 교묘히 ‘이지메’ 당하고 있다. 일본만화를 송곳 으로 찌르고, 담뱃불로 지지고, 음모를 라이터불로 태우고, 경찰과 검찰 을 시켜서 집단으로 무차별 난타하게 하는 것은 바로 제도 언론이다. 심 지어 제도 언론은 일본만화를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살해하기까지 한다. 동기는 바로, 제도 언론이 청소년과의 동거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청소년 폭력의 문제는 사회 문제이고, 학교 문제이고, 가정 문제이다. 또 청소년 문제는 자본주의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귀결이기도 하다. 그리 고 청소년 문제는 90년대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의 일각에 불과하다. 대 통령 아들이 화장실 간 사이 벗어둔 옷에 돈을 넣는 현실 자체가 문제이 며, 그리고 그보다 앞서, 바로 그 대통령 아들의 문제에 관해 일관되게 침묵해왔던 제도 언론이야말로 문제 중의 문제이다.


앞가림도 못하는 무소불위의 해결사

제도 언론은 청소년들을 모조리 사회에 통합시키고 싶어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무제한의 절대 권력을 누리고 있는 것은 바로 제도 언론이다. 현실의 정치적, 사회적 쟁점에 관한 언론의 개입과 간섭은 용납될 수 있 는 수준을 넘어섰다. 언론은 스스로를 무소불위의 만능해결사로 상상하고 있다. 그런 제도 언론은 청소년들을 모두 순치시켜 사회에 통합시키고 싶 은 것이다. 즉 속으론 폭력 청소년과도 동거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개판인 현실에서 청소년들이 남김없이 통합되지는 않는다. 결국 제도 언론은 일본만화라는 엉터리 원인을 찾아내고는 이를 희생양으로 삼 아 조져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청소년이 보호되어야 하는 것은 일본만화 로부터가 아니다. 이미 ‘갈 데로 간’ 제도 언론이 청소년과 일본만화에 대해 휘두르는 폭력을 멈추지 않는 한, 청소년이나 일본만화도 자신의 폭 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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