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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
1997년07월24일 제 1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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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정부안에 들러리 서지 말라." 7월13일 금융개혁 관련 법령작업반 회의에 한은 대표들이 참석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한은 직원들이 사무실 복도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강경식 부총리는 지난 7월10일 중앙은행·금융감독 제도 개편에 관한 정 부의 수정안을 발표하면서 “더 이상의 수정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수 정안대로 입법화를 강행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들린다.
하지만 중앙은행 제도를 둘러싼 기나긴 논쟁의 역사를 아는 사람들은 강 부총리의 이런 의지표명식 어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정확히 말하면 이 쟁점은 현실적으로 더 이상의 절충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게 옳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직접 당사자로서 이번 중앙은행·금융감독제도 논쟁을 독점하다시피 해온 재정경제원의 금융관료들과 한국은행 사람들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골이 파여 있기 때문이다. 수십년간 싸우느라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고 말할 수 있고, 밥그릇 싸움인 데 타협이 되겠느냐는 비 아냥이 될 수도 있다.
통화신용분야는 한은쪽 입장 수용
그러나 두 집단간 절충을 불가능하게 하는 본질적인 원인은 중앙은행 제 도에 대해 갖고 있는 양쪽의 개념과 논리 차이에 있다. 금융관료들은 중 앙은행의 기능도 정부의 행정권에 속하는 것이 위임된 것일 뿐이라고 주 장한다. 통화신용정책이든 금융감독이든 원래 정부의 권한에 속하고 정부 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기에, 언제든 필요한 사유가 발생하면 정부가 도로 회수해 갈 수 있다는 논리다. 반면 한은 사람들은 중앙은행에는 역사적으 로 정립된 나름대로의 역할과 기능이 있다고 주장한다. 국민경제의 원활 한 작동과 발전을 위해 중앙은행이 해야할 몫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통 화신용정책과 금융감독기능에 정부가 개입할 수 있도록 해놓고는 관치금 융 청산이나 물가안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한은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
이번의 논쟁과정에서도 이런 법논리와 경제논리, 정부의 책임론과 관치금 융 청산론은 계속 평행선을 그었다. 정부 수정안도 평행선을 구부려 만나 게 하지는 못했다. 핵심적인 쟁점은 금융감독기능의 정부·한은간 조정문 제였지만, 기존의 정부안과 새로 발표된 수정안간에 변한 게 없기 때문이 다.
재경원은 은행 증권 보험 등 3대 금융분야의 감독기능을 통합 금융감독원 으로 합쳐야 하며, 이것이 바로 금융개혁이라는 입장을 여전히 지키고 있 다. 그러나 한은은 그렇지 않다고 맞선다. 금융업종간 겸업화작업이 아직 그 방향도 잡고 있지 못한 마당에 감독기능만 통합해봐야 ‘한지붕 세가 족’의 비효율만 낳는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한은은 3개 금융감독기구를 현재대로 놔둔 상태에서 감독기관간 협의체제를 도입하자는 대안을 처음 부터 내놓았다. 다만 대통령 직속의 금융개혁위원회에서 애써 만든 통합 금융감독원 신설방안을 실행할 수밖에 없다면, 기존 은행감독원 기능 가 운데 통화신용정책 집행에 필수불가결한 은행의 경영건전성 감독기능만은 한은에 남겨 달라는 절충적인 자세도 보였다. 그러나 재경원은 은행감독 원을 통째로 금융감독원으로 옮기고 한은에는 필요할 경우 특정분야에 대 한 감독이나 검사를 금융감독원에 요청할 수 있는 권한 정도만 인정한다 는 입장을 지키고 있다.
금융감독이 아닌 통화신용정책 분야에서는 이번 수정안이 기존의 정부안 보다 한은의 입장을 많이 수용했다고 말할 수 있다. 어음교환 등 지급결 제제도의 운영·관리업무가 한은의 몫으로 명시됐고, 물가목표를 못 지킬 경우 한은 총재와 금통위원들을 해임할 수 있도록 한 이른바 물가계약제 는 삭제됐다. 한은 사람들도 이런 대목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보쌈해법’법조문으로 안착될까
그러나 정부 수정안은 ‘한국은행’을 ‘한국중앙은행’으로 이름을 바꾸 도록 해, 새로운 논란의 불씨를 만들었다. 이것은 아무리 봐도 편법의 성 격이 짙다. 금통위를 집행부인 한은의 상부 정책결정기관으로 해야 한다 는 재경원의 주장과, 금통위를 한은의 내부 최고기관으로 명시해야 한다 는 한은의 주장을 적당히 얼버무린 것이다. ‘한국중앙은행’이라는 새로 운 보자기를 씌워, 양쪽의 주장을 그 안에 다 담겠다는 ‘보쌈해법’이다 . 그러나 앞으로 구체적인 법령화 단계에서 이런 절충이 과연 아무 문제 없이 법조문으로 안착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금통위와 한은의 관계 설정은 이런 보쌈과 상관없이 여전히 쟁점으로 남을 전망이다. 수정 안은 한은의 반발을 샀던 금통위 사무국 신설조항을 삭제했으나, 대신 금 통위원 보좌인력을 두도록 해 그 구성과 운영방식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정부의 수정안 발표를 계기로 지난 6월12일 금융수뇌 4인 밀실합 의 이후 불거졌던 이번 한은법 파동은 한 단락을 매듭지은 것으로 관측된 다. 앞으로는 재경원의 법조문화 작업과 국회의 법안심의 과정이 남아 있 다.
이주명 기자/ 한겨레 경제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