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1997년07월24일 제 167호 한겨레21

“크메르 루즈를 쳐라”

(사진/93년 총선 뒤 `제1총리와 제2총리'라는 특이한 권력구조를 만들어낸 시아누크 국왕(가운데)과 함께 손을 들어 미소짓는 훈센(오른쪽)과 라나리드.)

“이제는 크메르 루주다.”

지난 7월12일 내전의 총성이 한바탕 휩쓸고간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는 상황을 장악한 훈센 제2총리의 다음 행동이 어디로 향할 것인지 관심 이 쏠려 있었다. 초점은 국제사회의 잇따른 제재를 훈센이 어떤 카드로 돌파할 것인가였다. 아세안과 미국 등 국제사회는 지난 7월2일 시작된 내 전이 훈센쪽의 공격으로 시작된 점을 중시해 각종 제재안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훈센의 카드가 ‘크메르 루주 격퇴’일 것이란 전망이 조 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폴 포트, 매력적인 사냥감

지난 7월2일 제2총리 훈센 진영의 제1총리 노르돔 라나리드 진영에 대한 공격으로 지난 93년 총선 이후의 불안한 동거는 깨어졌다. 당시 선거에서 훈센의 캄보디아 인민당(CPP)은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의 아들 라나리드가 이끄는 푼신펙(민족연합전선)에 57석 대 52석으로 패했다. 그러나 훈센쪽 은 강력한 무력을 바탕으로 ‘제1총리와 제2총리’라는 기묘한 권력구조 를 만들어냈다. 이 불안한 동거가 라나리드쪽이 내년 5월로 다가온 총선 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크메르 루주와 연대를 추진할 조짐을 보이면 서 파경을 맞은 것이다. 크메르 루주와 라나리드가 결합하면 훈센쪽에 대 한 확고한 우세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지난 7월2일 5번 국도 프놈펜 기점 27km 지점의 무력대결은 캄보디아 정 세를 충돌국면으로 몰아가는 예광탄이 되었다. 7월5일 오후에 외신들 사 이에는 ‘프놈펜 작전설’이 나돌기 시작했고, 때맞춰 라나리드 총리는 파리로 떠났다. 그뒤 바탐방과 시엠렌 지역의 전투를 거쳐 훈센 총리는 거의 모든 전략거점을 장악했고, 프놈펜은 7월8일부터 일상을 찾아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밖으로부터 불거져 나왔다. 우선 7월10일 동남아국가연합( 아세안)은 캄보디아의 아세안 가입을 무기연기시켰다. 또 같은날 미국이 캄보디아에 대한 3천5백만달러의 원조 집행을 한 달간 동결하기로 결정하 고, 다음날인 7월11일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성명을 통해 캄보디아 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 사태에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훈센 총리로서는 이런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력을 뚫으면서 정권의 ‘정통 성’을 세우는 게 시급한 과제로 다가온 상태다. 그리고 아마도 이 과제 를 ‘골칫거리’의 하나인 크메르 루주를 통해 해결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 것이다. 크메르 루주의 폴 포트를 오랏줄로 묶어 끌고 나오는 일만 큼 국제사회에 매력적인 대안이 따로 없다는 분석인 것이다.

이미 양쪽은 화해할 수 없는 상태다. 지난 76년 폴 포트 정권의 킬링필드 에 반대해 숙청될 뻔했던 훈센은 지난 78년 베트남세력을 끌어들여 폴 포 트 정권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잡았다. 크메르 루주도 훈센에 대해 베트남 을 끌어들여 혁명을 좌절시킨 장본인으로 꼽고 있다. 따라서 훈센 총리 입장에서 보면 ‘크메르 루주’ 카드는 긴장유발로 국내 문제를 잠재우고 , 국제사회의 비난을 돌리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전쟁 못한다면 차선의 카드는…

그러나 훈센 총리가 이 ‘최고의 카드’를 당장 사용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훈센은 당분간 반대 세력들과 국제사회를 오가며 말싸움을 통 한 시간벌이에 주력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당장 크메르 루주와 정면대결을 망설이게 하는 몇가지 요인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내부적으로 군부통합이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표면상 라 나리드파의 항복을 받아냈고 무장해제를 시켰지만, 라나리드파는 조직 여 하에 따라 다시 총부리를 들 수 있는 상태다. 실제로 이번 쿠데타에서 정 부군의 약 40%에 이르렀던 라나리드파가 훈센 총리 진영에 맥없이 굴복한 까닭은 지도력 부재 탓이었다. 훈센 총리파에 저항해 군사작전을 이끌 사 령탑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라나리드파에서는 공공연하게 “만약 우리쪽에 사령관이 나온다면 우린 다시 저항할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나 돌고 있다. 따라서 적전 분열의 위험을 안고있는 훈센 총리로서는 선뜻 크메르 루주에 대한 선제공격을 가하기 힘든 실정이다.

둘째는 타이와 국경을 접한 현 크메르 루주의 거점 안롱벵이 지닌 군사· 지형적 험난함 때문이다. 안롱벵을 공격하려면 훈센의 정부군은 초원에서 무방비 상태로 벼랑을 오르는 어려움을 감수해야 한다. 특히 이미 장마철 에 접어든 상태에서 이런 지형에선 전투는 고사하고 보급로 확보마저 불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크메르 루주의 내부 상황도 현 시점에서는 전쟁을 수행할 만한 상황 이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 크메르 루주쪽은 현 상황이 민중봉기의 적기라고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폴 포트의 몰락 등 권력 내부가 극심하 게 요동하고 있는 크메르 루주로서도 전면적 전투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현재 폴 포트를 연금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되는 최고의 강경파인 외발이 타목 장군은 크메르 루주의 주력 약 1천명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 져 있다. 그러나 2백명의 폴 포트 충성파들은 안롱벵 남부지역에 주둔한 채 별개의 조직을 꾸려가고 있다. 크메르 루주가 라나리드쪽과 ‘협상’ 에 나선 것도 아마도 이런 상황이 크게 작용했으리라는 판단이다.

프놈펜의 정황과 크메르 루주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볼 때, 훈센은 국제사회의 압력 속에서도 ‘크메르 루주’ 카드를 오는 겨울까지는 사용 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따라서 이들의 전투는 오는 98년 5 월로 예정된 총선정국과 맞물려서야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시기는 바로 훈센 총리나 크메르 루주의 운명을 가름할 캄보디아 현대사 의 최고 고비가 될 것같다. 하지만 이번 겨울까지 ‘크메르 루주’ 카드 를 사용하지 못한다면 훈센은 무엇으로 국제사회의 압력을 피할 수 있을 까. 프놈펜의 외신기자들은 훈센이 ‘차선의 카드’로 무엇을 제시할 것 인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프놈펜=정문태/프론트라인뉴스서비스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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