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1997년07월03일 제 164호 한겨레21

`산'의 고난이 서글프다

(사진/산악인의 야심찬 도전과 운명적 사랑을 화면에 담은 휴먼드라마 <산>.)

악인의 도전과 좌절, 극복 그리고 그들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최초의 전 문 산악드라마.’ 문화방송이 드라마 <산>을 띄우면서 내논 일성이다. 제 작기간 2년, 해외로케 6개월, 제작비용 32억 등 대작다운 면모를 갖춘 < 산>은 50년대부터 80년대 후반까지의 한국 등반사를 골격으로 2대에 걸친 산사람들의 파란만장한 가족사를 그렸다.

<산>은 우선 땀냄새가 물씬하다. 96년 4월 캐스팅이 확정된 뒤 6개월 가 량 연기자와 스태프들은 전문 등산학교에 입학해 암벽, 빙벽타기 훈련을 받았다. 96년 7월 도봉산을 시작으로 대장정에 올라 흑산도, 독도를 거쳐 96년 10월 에베레스트, 안나푸르나, 티베트에서 40여일을, 97년 1월에는 알프스에서 30일간을 눈밭에서 굴렀다.


감동과 재미가 빠진 파란만장한 가족사

해발 4천∼5천m의 히말라야. 고산증으로 자다가 일어나 비명을 지르는 연 기자. 3천m 고산지대를 4일이나 걸어 올라간 뒤 촬영한 것은 베이스 캠프 장면뿐. 내려오는 데 다시 3일. 국내 촬영에도 2시간 준비, 5분 촬영이 보통이었다.

김상중은 히말라야 랑탕에서 눈사태를 맞아 구르는 연기를 하다 일시적 기억상실증에 걸리기도 했고 박세준도 람체봉에서 고소증에 걸려 실신했 다. 스위스 루체른에서는 감우성, 김현아가 헬기를 타고 정상에 올라갔다 가 기상악화로 한시간 반 동안 단 둘이 정상에 갇히는 아찔한 경험을 겪 기도 했다. 결혼한달 보름을 앞두고 네팔촬영을 했던 김성령은 4천8백m의 네팔 고지를 낡고 무거운 티베트 승복차림으로 올랐다. 티베트 자유운동 장면 촬영 땐 중국, 인도, 네팔 등 어느 곳에서도 허가를 받지 못해 현지 관계자들을 속여가며 찍어야 했다.

이런 눈물겨운 고생을 거친 뒤 5월12일 <산>은 안방에 공수됐다. 그런데 처음 20.8%로 시작한 시청률이 18.2, 15.8, 14.4 등 계속 하락하더니 지 난 16일엔 11.8%까지 떨어졌다. 연속편성을 한 이날 다행히 12부는 17.7% 로 부상하긴 했다. 첫날 시청률이 한달이 지난 지금까지 최고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6월19일 홍리나(29)의 추락사고마저 일어났다. 홍리 나는 30여m 아래 절벽으로 굴러 떨어져 척추가 골절되고 양발 뒤꿈치가 으스러지는 등 최소 18개월간 입원치료를 받아야 하는 중상을 입었다. 분 위기가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고 급히 대본수정 작업도 이뤄져야 했다.

시청자들은 왜 <산>을 외면할까? 일주일에 TV 3사에서 쏟아내는 정규 드 라마는 모두 32편. 복고풍, 뻔한 멜로, 과부와 홀아비가 나오는 청승맞은 아침드라마의 공해 속에 <산>이 ‘산소 같은 드라마’라는 점엔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하지만 공부하기 위해 드라마를 보는 사람은 없다. 이 점에서 <산>은 몇 가지 결함을 지니고 있다.

산악인들에겐 익숙할지 모르나 일반인들, 특히 드라마의 주시청층이 주부 인 점을 감안할 때, ‘산’이라는 주제에 대한 표현이 약했다. “왜 산에 오르는가”라는 것에 대한 설명이 좀더 분명해야 했고, 최소한 궁금증이 라도 불러일으켜야 했다.

또 <산>은 마치 시추에이션 단막극처럼 이야기 흐름이 단절되고 있다. 삼 촌, 아버지, 아들 등으로 매번 주인공이 달라지면서 흐름이 뚝뚝 끊어진 다. 드라마를 몇번 건너뛰면 스토리 흐름을 따라잡느라 애를 먹는다. 그 리고 카리스마를 풍기는 매력적인 히어로나 히로인이 없다. 주인공인 감 우성은 이전 드라마에서처럼 이번에도 얌전한 모범생일 뿐이다. 안재욱 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김승우 정도는 되야 하는 것 아닌가? 주인공이 이렇게 밋밋하니 극이 자연히 김빠질 수밖에(물론 이는 연기자의 잘못은 아니다). 이외에도 산에서 너무 힘을 뺀 때문인지 산 아래 장면이 너무 초라하다. 산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산보다는 산 밑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 낸다는 점을 감안할 때 산 아래 장면에 과감수를 던져봤으면 어떠했을까? 그리고 멜로가 어중간하게 가미돼 애틋한 사랑이야기라고 하기엔 뭔가 부 족하고, 반대로 주제를 흐리게 하는 아쉬움도 남겼다. 드라마 박사가 천 지인데, 박찬환, 천호진, 김미숙의 희뿌연 삼각관계에 감동받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왕 엄청난 돈을 들인 이상, 자극적이진 않더라도, 최대 한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는 초반에 기선을 잡 아야 한다는 드라마의 경험적 진리도 너무 무시한 건 아닌지.

현장제작진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인간과 산이라는 형이상학적(?) 주제를 한번에 표현하기란 어려웠다. 그래서 초반부에 대부분을 설정하고 설명하는 일반적인 흐름과 달리 전체를 다 보고 난 뒤에 주제를 자연스럽 게 느껴 감동을 주려 했던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드라마가 미흡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의 말 처럼 국내 드라마 역사에 한 전환을 기록할 수도 있었을 <산>을 결과적으 로 외면받게 한 제작진의 책임은 적지 않다.

누구도 미워할 수 없는 장대한 휴먼드라마

그럼 <산>은 실패한 드라마? 절대 아니다. 거대한 산야, 절벽, 설원, 강 등 미지의 세계에 대한 웅대함과 아름다움을 화면에 담았고 인간의 근원 을 되짚은 휴먼드라마였다. <산>을 언급하면서 가끔씩 이야기하는 <K2>나 <클리프 행어>와 비교할 때도 20부작임을 감안하면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배경음악 또한 영상과 상승작용을 일으킬 만큼 훌륭했다. 그럼 시청자들의 수준이 문제? 글쎄. 원죄는 방송에 둬야 할 것이다. 시 청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별은 내 가슴에> >신데렐라>류의 이야기 구조와 인물설정이 간단한 가벼운 드라마에 중독되고 있음을 <산>은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그리고 15%대의 시청률이면 된 것 아닌가? 지구상 어느 나라에 50∼60%대의 시청률 경쟁에 온 국민을 대상화시키는 곳이 있는가? 그 엄 청난 사람들이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프로그램에 빠져 있다는 건 복제인 간의 양산만큼이나 끔찍한 일이다. <신데렐라>도 있어야 하고 <산>도 있 어야 한다.

다양성 존중을 위해서라도 <산>과 같은 드라마는 방송국의 의지를 실어 계속 보장돼야 한다. <산>이 <신데렐라> 사태에 휩싸여 조난당한다면 우 리 드라마, 시청자 모두가 30m 아래로 추락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신데 렐라>와 ‘그의 친구들’이 지금 날선 칼로 자일을 자꾸 내리치고 있다. <산>! S.O.S.

권태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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