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2
1997년07월03일 제 164호 한겨레21

개펄에서 추억을 건진다

(사진/문항마을은 꼬막 같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전형적인 갯마을이다.)


경남 남해 문항마을 쏙잡기

붓대롱에 걸린 구수한 국거리

아낙네와 아이들은 양재기를 하나씩 들고 갯가로 나간다. 양재기 안에는 주먹만한 된장이 한덩어리씩 들어 있다. 조금 물렁단단한 개펄에 올라서 면 발로 쓰윽 갯거죽을 훑어낸다. 거죽이 2∼3cm 정도 걷히면서 조그마한 구멍들이 드러난다. 개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게구멍같다.

사람들은 구멍 주변에 바닷물에 푼 된장을 슬슬 뿌린다. 그리곤 붓대롱을 구멍에 집어넣고 살살 흔들면서 천천히 들어 올린다. 붓 끄트머리가 구멍 밖으로 내비칠 무렵 커다란 집게다리가 붓 끄트머리를 꽉 쥐어잡는다. 이 때 잽싸게 붓대롱을 쏙 잡아뺀다.

새우와 가재의 중간… 술안주로도 좋아

경남 남해군 설천면 문항마을의 명물은 ‘쏙’이라는 갯것이다(붓대롱을 쏙 잡아빼 잡는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생김새는 새우와 가재의 중간 쯤 된다. 가재처럼 야무진 집게다리에 새우처럼 허리가 굽었다. 문항마을 사람들은 “쏙은 새우의 사돈네 팔촌보다는 가깝고 가재의 사촌보다는 멀 다”고 한다. 이 쏙을 잡는 재미는 여기서만 맛볼 수 있는 희한한 체험이 다.

쏙은 국으로 끓여 국물을 훌훌 마시거나, 왕건이를 따로 건져서 술안주로 먹기도 한다. 맛은 구수하면서 약간 단맛이 있다. 개펄 밑에 숨어 있다 짭짤한 된장맛을 보러 올라왔다가 구수한 국거리 신세가 돼버린 것이다. 국에 고추를 숭숭 썰어넣고 끓이면 껍질이 윤기나는 주황색으로 변하면서 제법 푸짐해 보인다.

특히 문항마을은 정이 뚝뚝 떨어지는 갯마을이다. 수평선이 보이는 아늑 한 대국산(해발 2백20m) 아래 꼬막 같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당 장 단잠부터 자고 싶을 만큼 아늑함이 흐른다. 마을 가운데에는 공동우물 인 ‘큰샘’이 있고, 요즘엔 사라져버린 우리밀의 원조 ‘앉은뱅이 밀’ 이 밭둑 옆 도랑가나 돌담 틈새에서 빠끔히 모가지를 내밀고 있다.

대개 살만한 갯마을은 앞에 작은 섬을 새끼처럼 거느린다. 문항마을도 저 만치 바다 한가운데에 ‘장도’라는 섬을 끼고 있다. 장도는 별다른 특색 은 없지만 소박한 품이 보는 이의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하루에 두차례 장도까지 이어지는 모래톱을 걸어 섬에 오를 수 있다. 일년 사시사철 모 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마을을 품은 남해군에는 이순신 장군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장군이 숨진 장소인 ‘이락사’와 가매장을 했던 ‘충렬사’가 유명하다. 상주, 송정해수욕장은 남쪽 바다의 정취가 묻어나는 아름다운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이렇게 가세요


남해대교를 건너자마자 남해일주도로로 좌회전한다. 5km 가량 동남쪽으로 내려가면 문항마을이 나온다. 남해까지는 서울 부산 순천 마산 등지에서 시외버스가 오간다. 서울에서는 사천까지 하루에 8차례 비행기가 뜬다. 마을에는 제대로 된 숙식시설이 없다. 인심좋은 이를 만나면 빈방을 얻을 수는 있으나 그런 행운을 보장하기는 힘들다. 마을 근처 풀밭에 텐트를 칠 수는 있다. 마을에서 한나절을 보내고 남해읍이나 근처 해수욕장으로 다시 나오는 게 좋다. 문의: 남해군청 기획감사실 정책공보계장 유광렬씨 (0594-64-7687, 0594- 60-3223).



전북 부안·고창 줄포만 바지락

(사진/줄포만 개펄은 조개밭을 이뤄 어디서든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다. 바지락을 캐는 하전마을 아낙네들.)

조개가 널려 있는 ‘잿빛바다’

전북 부안과 고창 사이의 갯가 줄포만엔 여느 해안과는 다른 찬란함과 풍 성함이 있다. 변산 격포에서 시작해 모항, 왕포, 곰소, 줄포로 이어지는 수려한 풍치도 그렇거니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고 토실토실한 개펄이 펼 쳐진다.

고창군 심원면 하전마을 개펄은 우리나라에서 바지락조개가 가장 많이 나 는 곳이다. 개펄은 그야말로 바지락조개를 따는 밭이나 다름없다. 갯바람 을 쐬며 바지락을 주워담는 재미는 여기서만 맛볼 수 있는 즐거운 경험이 다. 기름진 개펄의 기운을 흠뻑 뒤집어쓰고 자란 바지락조개는 맛도 일품 이다.

개펄에는 또 온갖 게와 짱뚱어들이 이방인을 무서워하지 않고 활보한다. 사람을 힐끗힐끗 바라보는 게 뭐하러 여기까지 왔느냐는 투다. 하지만 그 것들을 잡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두어발 앞에 있는 것도 달려가 손을 뻗칠라치면 잽싸게 제구멍으로 숨어버린다.

광활하게 펼쳐진 토실토실한 개펄

썰물 때 드러나는 하전마을 앞 개펄의 넓이는 줄잡아 수백만평이다. 개펄 이라기보다는 또다른 잿빛바다가 펼쳐져 있는 듯싶다. 개펄은 넓기만 한 게 아니다. 스펀지처럼 약간 폭신폭신할 뿐 전혀 발이 빠지지 않아 마치 질좋은 잔디구장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하전마을 앞 개펄에는 썰물 때 드러나는 개펄 끄트머리까지 약 2km에 이르는 드라이브길이 나 있다. 개 펄드라이브. 아마 우리나라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길이 펼 쳐져 있는 것이다. 여기에 차를 몰고 들어가서 시속 20∼30km 속도로 달 리다 보면 7∼10분 동안 바다를 정면으로 향해 돌진하는 듯한 스릴까지 맛볼 수 있다.

하전마을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장수강이 흘러 내려오는 곳에 선 운리가 있다. 서당몰, 신흥리, 안현, 질마재 등 4개의 마을로 이뤄진 갯 마을 선운리는 시인 서정주의 고향마을로 <질마재 신화>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서정주 시인이 질마재에서 일어났던 얘기들을 산문시로 엮은 이 책에는 줄포만의 개펄이 만들어내는 희귀한 물산 ‘침향’ 얘기가 나온다 . “침향을 만들려는 이들은 산골 물이 바다를 만나러 흘러내려가다가 바 로 따악 그 바닷물과 만나는 언저리에 굵직굵직한 참나무 토막들을 잠가 넣어둡니다. 침향은, 물론 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이 잠근 참나무 토 막들을 다시 건져 말려서 빠개어 쓰는 겁니다만, 아무리 짧아도 2백∼3백 년은 수저에 가라앉아 있는 것이라야 향내가 제대로 나기 비롯한다 합니 다.”

침향은 향불피우는 향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이라고 한다. 손바닥만한 것이 라도 수백만원은 간다고 하는데, 워낙 귀한 것이라서 구하기가 힘들다. 요즘 어쩌다가 선운리 앞 개펄에서 뽀글뽀글 물거품이 나는 곳을 파보면 나오는 경우가 있다고는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별로 믿는 기색이 아니다 .

#이렇게 가세요


고창읍에서 흥덕을 거쳐 종점인 선운리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선운리에 서 내리면 된다. 질마재 마을은 선운리의 네개 마을 중 하나이다. 승용차 로는 서울에서 호남고속도로를 거쳐 정읍인터체인지로 들어간다. 하전마 을은 선운리에서 남쪽으로 10분 거리에 있다. 선운리에는 숙식시설이 없 다. 15분 거리인 선운사 관광단지로 나오면 숙식이 편리하다. 문의: 심원 면 사무소 산업계원 손영국씨(0677-63-5019).




전남 신안 압해도 뻘낙지

(사진/육지에서 내려간 물이 바닷물과 엉겨 찰지고 기름진 옥토를 이룬 압해도의 개펄. )

부드런 육질, 넘치는 영향

서쪽 섬에는 걸쭉한 개펄이 있다. 개펄은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을 품어 맛깔스런 갯것들을 키운다. 물골을 따라 농어며 숭어가 들락거리고, 뻘 밑에선 낙지와 게가 꼼지락거린다. 육지에서 씻겨져내린 흙이 짭짤한 바 닷물에 절여지면서 찰지고 기름진 옥토를 이룬 게 개펄이다.

전남 신안군 압해도(면)는 우리나라 섬 가운데 가장 풍성한 개펄을 두르 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예부터 낙지, 짱뚱어, 숭어, 농어 같은 갯것이 많이 나는 것으로 이름높다. 특히 낙지는 다른 곳의 낙지에 비해 색깔과 맛이 전혀 다르다. 이곳의 낙지는 ‘뻘낙지’라고 해서 색깔이 꼭 개펄을 닮았다. 남쪽 바다에서 나는 낙지는 바위틈에 살아서인지 색깔이 불그죽 죽하다.

조금 때면 개펄에서 주워 담을 정도

맛의 차이는 더욱 뚜렷하다. 뻘낙지는 육질이 부드럽고, 쫄깃쫄깃한 맛이 온몸에 스며드는 듯하다. 압해도 사람들은 이 맛을 ‘개미’라고 부른다. 약효가 우러날 대로 우러난 한약을 재탕 삼탕 끓인 것 같은 바위낙지와는 천양지차다. 영양가도 높아 송아지를 낳은 어미소에게 산 채로 한마리만 던져주면, 소가 덥석 받아먹고 금방 기운을 차려 일어선다고 한다.

뻘낙지를 잡으려면 힘과 기술이 필요하다. 나무삽으로 개펄을 1m 가량 퍼 내면서 낙지를 추적해 들어간다. 낙지란 놈은 움직임이 재빨라 젖먹던 힘 까지 짜내지 않으면 개펄만 파다 끝날 수 있다. 그러나 조금 때는 낙지잡 기가 한결 수월하다. 바닷물이 발목께에서 찰랑대는 저녁녘, 횃불이나 랜 턴을 들고나가 개펄에 올라와 잠을 자는 낙지를 그냥 주워담으면 된다. 압해도 개펄에서는 자연산 굴도 많이 난다. 막 따온 굴을 넣고 끓인 굴죽 은 압해도에서만 먹어볼 수 있는 맛난 음식이다. 압해도에서는 또 ‘우럭 ’이라는 조개(생선이름과 같다)가 나는데, 이 조개는 기름기가 있는 곳 에서는 한시도 살지 못한다. 압해도가 아직까지는 청정해역임을 말해주는 징표인 셈이다.

압해도에는 섬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석기시대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 다. 동서리에는 ‘장군지팡이’로 불리는 높이 6m 둘레 3m의 거대한 선돌 이 바다를 굽어보고 있다. 먼 옛날 몸집이 산만한 장군이 섬들을 건너다 닐 때 짚던 지팡이라는 전설이 전해온다. 복룡리에는 갯가에 작은 돌멩이 로 담을 쌓아 밀물에 휩쓸려 들어왔다 썰물에 빠져나가지 못한 고기를 주 워담는 석기시대 유물 ‘독살’이 있다. 복룡리 사람들은 최근까지도 이 유서깊은 방법으로 고기를 잡았다고 한다.

#이렇게 가세요


압해도는 8백여개의 신안군 섬들 가운데 목포에서 가장 가깝다. 목포 북 항(뒷개)에서 도선(차를 싣고 가는 철부선)을 타면 10분밖에 안 걸린다. 도선은 아침 6시30부터 저녁 7시30분까지 20분 간격으로 뜬다. 선착장에 서 원복룡마을까지 하루 4차례 버스가 다닌다. 면사무소가 있는 학교리에 여인숙 한곳과 서너곳의 식당이 있다. 식당에서 민박도 가능하고 원복룡 갯가에서 캠핑을 할 수도 있다. 좀더 편한 숙식을 위해서는 목포로 나오 는 게 좋다. 문의: 압해면 사무소 총무복지계장 김상일씨(0631-71-0512).

유강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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